4. 다이빙벨: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기억
4월 16일 인천항에서 출발하여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진도 부근 맹골수도에서 급변침急變針을 하며 침몰했다. 그 여객선의 승객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객이 대부분이었기에 단재 아이들도 술렁이기 시작했지만,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새벽에 벌어진 일이라면 모를까, 환한 대낮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며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기에 당국이 온 역량을 결집하여 보란 듯이 구조작업을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의 술렁임을 멈추게 하고 계속 수업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오후 3시 30분에 체육을 하러 헬스장에 가서야 화면을 통해 침몰하는 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 기사로 볼 때와 영상으로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은 180° 달랐다. 아무래도 문자로 보면 감성보다는 이성이 작용하여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보게 되기에 감정의 동요는 일어나지 않는데 반해, 영상으로 보면 압도적인 현장감으로 온갖 감정이 들끓어 오르니 말이다. 그건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고,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하는 착잡한 심경이었다.
▲ 2014년 4월 16일에 모든 일이 시작됐지만, 정작 문제는 이후에 있었다.
4월 16일 골든타임을 허비하다
그때 화면에는 노란옷을 입은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과 무언가를 발표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관계 기관이 빠르게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회의를 통해 협조하는 것은 맞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방송으로 회의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건 실제적인 방법을 강구한다기보다, 보여주기에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가 막혔던 것은 회의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노란색 점퍼를 맞춰 입고 회의를 하자는 것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일까. 일분일초도 귀중한 사고 당일에 그런 식의 색깔 맞춤이나 하며 뭔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나 보다.
‘하는 것’과 ‘하는 척만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하는 것’은 실제적인 행동으로 그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면, ‘하는 척만 하는 것’은 곁에서 볼 땐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하는 척만 했다’해서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예 안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는 척만 하는 것’은 오히려 아무 것도 안 한 것보다 훨씬 나쁜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임지지도 않을뿐더러, 결과적으로 어떤 일에 도움조차 되지 않으니 말이다.
4월 16일에 구조당국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원과 장비를 동원하여 실제적으로 일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점퍼만 맞춰 입고 회의하기에만 바빴지, 실제적인 실종자수의 집계랄지, 현장상황의 파악이랄지, 효율적인 구조 환경의 구축이랄지 이러한 모든 것에는 어설펐다. 그래서 골든타임이던 그 순간이 그렇게 흘러가며 배와 함께 수중에 갇힌 302명의 실종자들은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이다.
▲ 오후 5시에야 보고를 받았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라는 말을 했다.
하는 척만 하는 구조기관
하루 이틀은 사람이 살아 있을 확률이 높기에 구조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에어포켓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실낱같은 가능성을 믿고자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가족이 아닌 나조차 이런 기대를 하고 있는데 막상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런 기대감에 부응이라도 하듯 뉴스에선 육해공군의 최첨단 장비들이 급파됐다고 보도했고, 해경청장은 “잠수사 500명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습니다”라고 진도체육관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고했다. 그 말만 믿고 보면, ‘정말 정부는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그 말조차 거짓이었다. 실제로 작업에 투입된 인원은 20명도 채 되지 않았으며, 그들이 수중작업을 한 시간도 침몰 후 15시간 동안 겨우 3차례(한 번 잠수했을 때 30분씩만 작업함)만 했을 뿐이다. 언론 플레이만 하며, 황금 같은 시간을 그렇게 흘러 보냈다.
▲ 하는 척을 할 것이 아니라, 언론플레이를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했다면 어땠을까?
두 눈 뜨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다
그렇게 정부의 뻔뻔한 거짓과 무능함으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던 어느 날, 세월호 안에서 학생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이 공개됐다. 구명조끼를 입고 기울어져 가는 배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진과 “나 나 살고 싶어. 구명조끼 입었어요”, “지금 구조대가 오고 있대요.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살고 싶은데!”라는 말을 하며 두려움에 떨며 절망하고 있는 학생들의 영상이었다.
그와 같은 사진과 영상을 보던 부모님들의 속은 한없이 썩어갔을 것이다. 더욱이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배에서 딸과 아들이 보내온 문자를 보며 자식들의 마지막을 지켜봐야만 했으니 말이다.
▲ 두려움에 떨며 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
자식을 잃은 부모의 속이 어떤지는 ‘단장斷腸’이란 고사성어에 잘 나타나 있다. 단장이란 자식을 잃은 한이 사무쳐서 창자가 파열되었다는 뜻으로, 부모의 자식을 잃은 한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어미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가 사람에게 잡혀 가는 데도 어떻게 할 수 없이 지켜봐야만 했다는 점이다. 두 눈 뜨고 자식을 잃게 된 것이니, 그때의 한과 울분은 밖으로 표출되기보다 안으로 응집되어 내장에 쌓이게 된다. 그래서 창자가 바스러지듯 조각조각 끊어지는 고통 속에 죽어갔던 것이다.
‘단장’의 뜻을 현대적으로 잘 계승하여 영화로 만든 작품이 바로 『괴물』(감독 봉준호, 2006년작)이다. 박강두는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괴물에게 딸 현서를 납치당하게 된다. 경찰은 딸을 찾아줄 생각은 하지 않고 박강두를 정신병자 취급하자, 박강두의 일가족이 모두 나서 딸을 찾아다니는 내용으로 세월호 부모들의 절박한 심정과 닮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중반에 박강두의 아버지가 자고 있는 박강두를 타박하는 동생들에게 “너희들 그 냄새 맡아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를 맡아 본 적 있냐 이 말이여.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라고 말한다. 세월호 구조작업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부모님들의 속은 분명히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 분들이 자신들의 심정을 말로 하나하나 표현하진 않았지만, 이미 속은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을 것이다.
▲ "너희들 그 냄새 맡아본 적 있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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