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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20장 - 4. 갈대와 전주 하숙집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20장 - 4. 갈대와 전주 하숙집

건방진방랑자 2021. 9. 19.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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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갈대와 전주 하숙집

 

 

갈대라는 말이 나오니까 나의 하숙생활 중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내가 이리에서 전주로 거처를 옮겼는데, 참으로 공들여 하숙방을 구했습니다. 시골에서는 방을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방이 없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시끌시끌 떠들어대는 분위기인 하숙집들이 대부분이어서 마음에 맞는 방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도대체 대학생 방에 오디오, 텔레비젼 없는 경우가 없거든요. 나는 그런 것이 일체 없고 전혀 소리를 안 내고 삽니다. 그리고 음식 하나라도 길이 들면 그 하숙집을 떠나기가 어려운 법인데, 먹는 것부터 제대로 된 데를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이리에서 전주까지 기차로 통학을 하는 게 도무지 힘들어서 거처를 옮겨야 했는데, 전주에 내가 임상수업을 받으러 다니는 병원 뒤에 아주 좋은 산동네가 있어서 결국은 그리로 옮긴 거죠. 나는 척 봐서 풍수지리를 따져보고 저기쯤 살면 좋겠다 싶은 장소가 보이면 그 근처를 뒤지고 다닙니다. 하숙을 치는 집처럼 보이든 말든 아무 집이나 가서 벨을 누르고 혹시 방 없냐?”고 물으며 빈 방 찾아서 이 집 저 집 뒤지고 다니다가 미친놈 취급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하숙 치는 동네가 아니기 때문에, 척 봐서 딱 좋은 자리를 찾기는 했지만, 하숙할 방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산동네를 내려오는데 어떤 여자가 공손히 인사를 하더라고요.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깐, 김용옥 선생님 아니냐고, 자기는 고대 78학번이라고 인사를 해요. 내가 방을 구하러 다닌다고 하니깐, 자기가 사는 집 옆에 방이 하나 났었는데 어제 나갔다고, 하루 늦으셨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 그러냐 잘됐다, 그러면 그것을 물리라고 했죠. 우선 방부터 보자고 해서 가 보았더니 저기쯤 살면 괜찮겠다고 내가 찍었던 바로 그 집인 거라. 그래서 주인에게 방세를 두 배로 줄 테니 그 방을 나에게 내어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을 해서 결국은 그 방을 얻었는데, 내가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뒷산에 그렇게 좋은 갈대밭이 있다는 것입니다. 갈대밭이 주욱 펼쳐져 있는데 갈대가 나보다 키가 커서 갈대밭에 서있으면 마치 터널이 뚫려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갈대밭에서 조깅할 때 나는 지상 최대의 행복감을 만끽합니다. 그래서 요새 내가 전주에서 살 만하다 이겁니다.

 

이야기가 좀 샛길로 빠졌는데, 갈대라는 것은 본래 빨리 자랍니다. 여기서 갈대의 비유를 든 것은, 갈대를 통해서 땅의 기운이 급속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서양의 오페라가수들은 갈대를 여자의 마음에 비유하여 노래했지만, 우리 동양인들은 정치를 말했던 것입니다. ‘()’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치이기 때문에, 인간의 상태라는 것은 지기(地氣)가 곧바로 갈대로 표출되는 것처럼 신속하게 정치로 표현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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