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2. 좋은 정치와 사람
子曰: “文ㆍ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文)과 무(武)의 정치는 반포되어 방책(方策)에 다 있으나, 그 사람이 있으면 정치가 일어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정치가 멈춰버린다. 方, 版也. 策, 簡也. 息, 猶滅也. 有是君, 有是臣, 則有是政矣. 방(方)은 목판이다. 책(策)은 죽간이다. 식(息)은 멸(滅)과 같다. 올바른 임금이 있고 올바른 신하가 있으면 올바른 정치가 있게 된다. |
여기서 ‘문무지정(文武之政)’이란 것은 ‘문무(文武)’를 추상명사로 보아서 문화정치나 무력으로 다스리는 정치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비슷한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서는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보여주었던 정치를 말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치적인 의미에서 문(文)과 무(武)로 대별해 볼 수도 있으므로, 추상적인 의미가 어느 정도 여기에 들어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추상적인 의미, 즉 문화정치와 무단정치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방책(方策)’에서 ‘방(方)’이란 것은 목판, ‘책(策)’이라는 것은 죽간을 일컫는데, 목판이란 나무를 얇게 켜서(얇은 나무도시락 통을 생각하면 된다) 거기에 글을 써 놓은 것이고, 죽간은 대죽에다가 글을 쓴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를 볼 때, 편(篇)으로 표기된 것은 죽간으로 된 것이고 권(卷)은 두루마리도 된 것을 말합니다. 고서(古書)에서 권(卷)이라는 것은 두루마리를 죽 늘어놓고 균분(均分)한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내용과 관계없이 분량으로 자른 겁니다. 즉, 내용상의 분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이게 변화하여 내용상의 분리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문무지정(文武之政)이 방책에 반포되어 있다.” 이 말은 “문왕ㆍ무왕의 정치가 반포되어 방책에 다 쓰여져 있다”는 말입니다. 문무지정(文武之政)은 정치의 모범, 정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는데, 정치의 기준·규범이 될 수 있는 좋은 말들 즉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이미 다 방책에 씌여져 있으므로 그걸 모를 게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정치학자가 없어서 정치가 잘 안 되는 것이 아니죠. 유명한 정치학자들 데려다가 이상적인 정치란 무엇이냐를 정리하면 그 구라는 좍 다 나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정치란 어떤 것이냐를 규정해 두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할 사람이 있으면 정치가 흥하게 되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는 구현되지 않는다, 끝이다는 말입니다[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다시 말하면 그 방책에 씌여져 있는 이상적 정치를 구현할 능력이 있고 그런 도덕적인 성품(moral integrity)을 소유한 인간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가 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반성해야 할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대 정치사를 보면, 정치적 이상에 대한 구호만 난무하였지[文武之政 布在方策], 그 이상을 실천할 사람을 키우는 데는 인색하였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다!
내 인생을 보면, 어떤 때는 사람들이 나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나를 서럽게 만들 때도 많았고 대접을 못 받을 때도 많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행복합니다. 궁극적으로 저술이라는 것이 학자에게는 중요하지요. 역시 학자는 위대한 저술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위대한 저술이 안 나오는 학자는 생명력이 없어요. 그렇지만, 내가 도올서원을 하는 이유는 글만 쓸 게 아니라 이 시대에 뭔가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된 말은 뒤에 다시 나오겠지만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이 많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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