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3. 각계의 전문적인 인간이 되자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 蒲盧也. 사람의 도(道)란 정치에 민감하게 나타나고 땅의 도(道)란 나무에 민감하게 드러난다. 대저 정치란 것은 포로(蒲盧)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敏, 速也. 蒲盧, 沈括以爲蒲葦是也. 以人立政, 猶以地種樹, 其成速矣. 민(敏)은 빠르다는 것이다. 포로(蒲盧)는 심괄이 ‘갈대[蒲葦]’라 했으니, 맞다. 사람이 정치를 수립하는 것은 땅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아 이루어짐이 빠르다는 것이다. 而蒲葦又易生之物, 其成尤速也. 言人存政擧, 其易如此. 갈대는 또한 쉽게 자라는 생물로 성장함은 더욱 빠르다. 사람이 있으면 정치가 거행되니, 쉽기가 이와 같다는 말이다. |
‘인도민정 지도민수(人道敏政 地道敏樹)’
민(敏)이라는 것은 센시티브하게 민감하게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나무를 보면 그 땅이 비옥한 땅인지 척박한 땅인지 다 알 수 있기 마련인데, 인도(人道)와 정치, 지도(地道)와 나무를 대비시킨 것은 참으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라고 하는 것은 ‘천지론(天地論)’으로 말한다면 지기(地氣)의 상징이자 땅에 있는 기운이 표현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여자란 무엇인가』를 보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기독교에서는 성(聖)의 근원을 하늘에서 받아서 성스러운 자리가 마련되지만, 동양에서는 성스러움이 땅에서 옵니다. 그곳이 성황당과 같은 성소(聖所)가 되는 것이죠. 땅의 기운이 솟구친 생명력의 장소가 성스러운 자리인 것이죠. 지기(地氣)가 나무로 표현되듯이 인간만사라는 것은 정치라는 나무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정확한 법칙이 있다는 말예요. 그러니까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옛날에는 사람 기르고 키우는 것을 ‘수인(樹人)’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무 심듯이 사람을 심는다는 말이죠? 나무가 제 꼴을 갖추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하물며 인간의 교육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배운다고 하는 것, 사람을 키운다고 하는 것은 대학에 입학해서부터 계산하더라도 최소한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60세에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60세 이전에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3·40대에 제아무리 반짝해도 다 소용이 없는 것이고, 최소한 환갑은 되어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친구들이나 주변의 어른들을 볼 때, 3·40대에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날렸던 사람들이라도 나중에 5·60대가 되어서는 전혀 쓸모없는 사람, 역사에 가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반면에 3·40대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이 5·60대가 되어서는 대단한 거인으로 그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점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최종적인 사태가 결정 지워질 수 없는, ‘모르는 존재’인 거예요. 따라서 인간은 최소한 60세가 되어야 겨우 윤곽이 드러나고 포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는 중학교때 나의 장형(長兄)으로부터 얼핏 들었던 말인데 나의 일생을 지배하는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60살까지는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입니다. 나의 작품은 60살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칸트(Kant)의 대작들이 모두 죽기 10년 전부터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칸트는 자기가 구상하는 아이디어가 시간이 걸리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까불지 않았고, 자기규제를 위하여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거예요. 칸트의 그 유명한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산보(philosopher's walk)’에서 보듯이 그는 규칙적인 삶을 살았고 여자도 멀리 했습니다. 칸트의 집 앞에 칸트를 사모하는 멋있는 여자가 살았었는데, 칸트가 “저 여자와 결혼하면 순수이성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를 너무 오래 계산하다보니깐 그 여자가 지쳐서 이사를 가버렸다는 일화가 보여주듯이, 칸트는 자신에게 엄격한 절제적인 자세 때문에 평생 결혼을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 대신 인류사에 있어서 불후의 명작을 죽기 전 10년 사이에 쏟아 놓았어요. 60세 이전에는 그의 저술이 별로 없습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각계 최고의 전문적인 인간이 되자
도올서원의 학생들은 거대한 인물로 성장해 갈 것이라는 게 나의 기대요 바램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인가 뜻이 있는 사람들이고 뭔가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자기가 노는 놀음에 놀아나는 좀팽이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것은 인간이 항상 저지르기 쉬운 자기기만인 것입니다. 내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올서원을 하는 이유는 교양을 가르치고 한문을 가르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가르치는 뜻은 졸개의 자리에 연연하거나 현혹되지 말고 사계(斯界)의 최고봉(top)이 되라는 것입니다. 학자가 나와도 대학자가 나오고, 기업가가 되어도 대기업가가 되어라! 각계에서 최고의 전문적인 인간이 되란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전문적인 사람이 참으로 부족합니다. 모대학 교수님이 전화를 걸어 와서는, 자기네 학교 대학원 학생들이 150명 정도 졸업을 하는데 졸업하기 전에 모두 모여서 듣는 강의를 준비하고 있으니 이 강의를 맡아 달라고 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강의는 프로페셔날(professional) 하지가 않아요. 석박사 졸업생 150명을 모아 놓겠으니 기껏 40분짜리 강의를 해달라는 것인데, 도대체 내가 40분간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고작 40분간 강의 들으라고 사람들은 왜 부르며 시간은 왜 낭비하느냐 그 말이요?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프로페셔널리즘이 희박합니다. 나는 사람을 잘못 짚었다고 말하고 가볍게 교양강좌할 수 있는 사람을 모시라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내 일생에 교양강좌니 교양이니 하는 말처럼 증오하는 말이 없습니다. 매사에 교양인이 되지 말고 전문인이 되어라!
우리나라에 왜 인물이 없는가? 애초에 가진 포부와 야망이 잘못 잡혀져 있기 때문에 인생에 헛투자를 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야망과 포부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펼쳐나갈 기간을 너무 짧게 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물이 나오질 않는 겁니다. 아까 말했듯이 사람은 60세 이후에나 인물됨의 포폄을 논하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데도 너무들 성급하게 굴거든요. 나도 이런 포부를 갖고 살았는데, 이제 머지않아 60살입니다. 여러분들 만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도 환갑을 바라보고 있고 내 자식이 벌써 대학원을 간다고 하니 ··· “인생이란 참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이구나!”하는 감회가 절실합니다.
‘부정야자 포로야(夫政也者 蒲盧也)’
‘포(蒲)’는 창포(菖蒲)이고 ‘로(盧)’는 갈대를 말합니다. 주자 주(註)를 보면, “심괄(沈括)이가 로(盧)를 갈대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심괄(沈括)은 송대(宋代) 북송중기(北宋中期)의 유명한 학자요 정치가로서 중국과학사에 많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심괄의 이 말은 『몽계필담(夢溪筆談)』 권3에 나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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