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 자한과 뭄따즈
오랫만에 다시 정박한 곳은 수자타라는 이름의 호텔이었다. 보드가야에서는 가장 최신의 가장 좋은 호텔로 꼽히는 곳이었지만 나에겐 좀 낯선 곳이었다. 아니, 좀 지겨웁게 느껴지도록 끔찍한 곳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219호실, 방금 칠한 페인트냄새가 풀풀 나는 아주 깨끗한 방이었지만 나를 끔찍하게 만드는 것은 돌의 한기였다. 인도사람들에게는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과 죽음의 공간이 구별이 없는 듯했다.
인도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아그라(Agra)의 따즈 마할(Taj Mahal)도 단순한 한 여자의 무덤이다. 무굴제국의 다섯번째 왕인 샤 자한(Shah Jahan, 1592∼1666)이 자기를 위해 14번째 아기를 낳다가 객사한 부인, 뭄따즈 마할(Mumtaj Mahal)을 못 잊어하면서 지은 무덤이다. 아마도 그것은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서는 가장 사치스러운 문명의 장난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뭄따즈가 사치스럽거나 요염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의 고모이자 선왕 자한기르(Jahangir)의 부인이었던 누르 자한(Nur Jahan)이 자기 남편을 손아귀에 넣고 권세를 누렸던 것과는 달리, 뭄따즈는 자기 남편에게 매우 순종적이며 지혜로운 충고자였으며, 조용히 수발을 드는 그런 여인이었다. 19년의 결혼생활(1612~1631)에 14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남편이 전장(戰場)을 전전해도 그의 곁을 떠나질 않았다.
샤 자한이 황제로서 등극한 것은 1628년 1월 28일이었으니까, 그들이 아그라에서 황제와 황후로서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은 불과 2년에 불과했다. 샤 자한은 1629년 12월에 데칸에 문제가 생겨 출정을 떠나야 했고, 뭄따즈는 그 출정길을 1년 반이나 수발들었다.
그리고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객사했던 것이다(1631년 6월 7일 부르한뿌르(Burhanpur] 근교에서 죽음). 그녀는 죽으면서 그녀를 진정으로 의지하고 사랑했던 남편에게 다음의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날 위해 지어주요.
2. 재혼하지 말아주오.
▲ 따즈 마할로 들어가는 대문. 이 대문만 해도 그 자체로 매우 완성도가 높은 조형물이다. ‘천국이 여기 있으니 여기 영원히 편히 사시오’라는 『꾸란』 82장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십자형 수로의 가든이 있고 그 가든 저편에 웅장한 따즈 마할이 자리잡고 있다.
따즈 마할의 특징은 이전의 무굴제국 건축물의 소재가 붉은 사암인데 비하여 흰 대리석을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태리 프로렌스에서 유행된 피에트라 듀라(pietra dura)라는 돌 상감기법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20여년 동안에(1631~1653?) 전 세계에서 불러온 2만여명의 석공이 땀을 흘렸다. 이 묘를 지은 석공들이 또 다시 아름다운 묘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손목을 다 잘라버렸다는 설화는 허풍쟁이들이 지어낸 거짓말인 듯하다. 왜냐하면 샤 자한(Shah Jahan, 1592∼1666)은 야무나 강 건너에 이와 동일한 모양의, 자기를 위한 검은 대리석의 묘를 지을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 날 안개가 너무 심해 선명한 사진을 얻지 뜻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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