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싯달타의 모습
미켈란제로는 이태리의 어느 거지를 모델로 삼아 예수를 그렸다고 한다. 그가 프로렌스의 자기동네 거지를 모델로 삼아 예수의 모습을 그린 것이 사실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그는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최초로 싯달타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쿠샨왕조(Kushān Dynasty) 간다라(Gandhāra)의 예술가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이미 조각화되어버린 희랍의 신상을 불타의 모습에 덮어 씌웠다. 붓다의 최초의 모습은 아름답게 생긴 청년 아폴로신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실상은 희랍의 직접적 영향이 아니다.
간다라에 전달된 당대의 미술양식은 전적으로 로마의 것이라 해야 옳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동단에서 발생한 로마미술의 지역적 표현의 하나였다【벤자민 로울랜드 지음, 이주형 옮김, 『인도미술사』(서울: 예경, 1999), p.118. 크레이븐의 하기서도 간다라불상에 관하여 개설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Roy C. Craven, Indian Art, A Concise History(London : Thames & Hudson, 1997), pp.81~102.】. 그런데 간다라의 불상만 하더라도 희랍인들이 그리려고 했던 인간적인 신들의 말랑말랑한 모습들이 그런대로 살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접하는 불상의 대부분은 간다라의 것이 아닌 마투라(Mathurā)의 불상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간다라의 불상에서 보여지던 현실적인 인간의 머리카락들이 마투라의 불상에 오면 모두 소라모양의 일정한 양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가부좌를 튼 명상의 자세들은 모두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대각의 추상적 속성을 표현하기 위한 근엄한 자세들이다. 우리가 보는 불상 속에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현실적 인간의 모습이 없는 것이다. 모두 철저히 양식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투라의 조각가들이 그레코-로망풍을 제거하고 자기자신들의 고유한 인도적 관념과 형식을 창안하려는 데서 생겨난 경향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경향은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모습과 싯달타의 모습의 이러한 차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관념의 차이를 나타내준다. 보다 신적인 예수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반면, 보다 인간적인 싯달타는 우리에게 신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실 역사적으로 대승불교가 우리에게 끼친 해악 중의 하나다. 싯달타라는 인간이 증발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나이란쟈나 강을 보는 순간, 인간 싯달타가 들이마셨던 그 상큼하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끊임없는 묵상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것이다. 내가 탄 차는 어느덧 번잡한 보드가야의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달라이라마가 주관하는 칼라차크라(Kālacakra, 時輪: 탄트라 이니시에이션) 제식의 대 행사를 앞두고 세계에서 몰려든 불교도들로 붐비고 있었다. 길거리를 메운 진주홍의 법복, 샴탑(gzham thab)과 샌(gzan)을 걸친 티벹승려들, 그리고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의 털옷을 팔고 있는 티벹 노점상인들, 오랫만에 다시 만난 정겨운 모습들이었다.
▲ 간다라 지역 하다(Hadda)에서 발견된 위의 이 조각은 희랍신상 같지만 간다라에서 불상을 제작한 장인들의 손에서 이루어진 작품이다. 파리 귀메박물관(Musée Guimet, Paris) 소장. 이러한 장인의 솜씨가 불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아래 베를린 인도박물관 소장(Museum für Indische Kunst, Berlin)의 탁트 이 바히(Takht-i-Bahi) 출토 불좌상의 머리는 소년 모양의 정형이 아닌 아폴로의 긴 머리카락을 묶었다. 얼굴도 정형화되지 않은 미남자의 얼굴이며 가부좌도 어색하고 표현이 어려워 로마인의 옷주름으로 덮어 버렸다. 이것은 단독 불좌상으로는 2세기초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층대의 작품이다. 환조가 아닌 고부조(高浮彫)의 상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상술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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