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와 안티노미
싯달타는 기존의 형이상학(metaphysics)적 명제들을 요약하여 십무기(十無記)라고 불렀다. 십무기는 열 가지의 무기(無記)라는 뜻이다. 무기(avyākata)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술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형이상학적 실체라고 상정하는 것들은 시공간의 현상계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거나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것에 관하여 옳다 그르다 라는 시비의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것들을 열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水野弘元, 『原始佛敎』, pp.85~102를 참고하였다.】.
A) 자아 및 세계는 시간적으로 | 1. 무한하다. 2. 유한하다. 3. 무한하면서 또 유한하다. 4. 무한하지도 유한하지도 않다. |
B) 세계는 공간적으로 | 5. 무한하다. 6. 유한하다. |
C) 영혼과 육체는 | 7. 동일하다. 8. 별개의 것이다. |
D) 여래(깨달은 자)는 사후에 | 9. 생존한다. 10. 생존하지 않는다. |
이것은 칸트가 안티노미(antinomy, 이율배반)라고 부른 것과 동일한 성격의 것이다. 즉 하나의 사태에 대하여 상반되는 두개의 판단이 동시에 성립할 때 그것은 우리의 지식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안티노미는 칸트철학이 순수이성비판에서 실천이성비판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을 이루는 것이다. 싯달타 또한 이러한 안티노미를 해결하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과제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싯달타가 형이상학(metaphysics)적 문제를 배척한 이유로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의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이러한 형이상학의 문제는, 우리의 인식이나 경험을 넘어서는 문제이므로,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해결이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과연 시작이 있는가? 과연 종말이 있는가? 우리가 가장 최신의 물리학설로서 비그뱅(Big Bang)이론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다시 비그뱅 이전의 우주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는 수축하고 있는가 팽창하고 있는가? 과연 종말이 올 것인가? 종말이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우주의 공간모형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호킹박사의 모형은 어디까지 타당한가? 과연 지대(至大)는 무외(無外)인가? 무한이란 어떤 의미인가? 이 모든 것에 절대적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아무리 위대한 물리학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감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추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론적인 가설을 세우는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도 있고, 또 경험적으로 반드시 입증되지 않더라도 가설 그 자체만으로도 유용한 새로운 진리를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싯달타에게 이러한 형이상학적 추론은 극히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가 제기한 문제들은 우주의 물리적 실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윤리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로 그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렇다면 일보 양보하여 이러한 형이상학적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해결은 우리 삶의 고뇌의 해탈(解脫, mokṣa)에 별로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탈해야 할 것은 궁극적으로 현상계의 문제였을 뿐 아니라, 그 해결도 현상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연기론의 철저성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러니칼하게도 싯달타가 당면한 종교적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종교로써는 해결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종교는 종교적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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