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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돌과 인도문명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돌과 인도문명

건방진방랑자 2022. 3. 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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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인도문명

 

 

단순하고 건장한, 질박하고 강인한 느낌이 드는 그의 침실 속에서 나는 그의 문ㆍ무를 겸비한 질소한 인품을 흠끽했지만, 난 정말 돌구뎅이 속에서 자기는 싫었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이러한 환경에 완벽하게 무감각한 듯했다. 내가 인도에서 본 모든 것이 돌이었다. 인도의 문명이란 곧 돌의 가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내가 본 모든 건축물이 돌이었고, 모든 조각품ㆍ공예품이 돌이었고, 대부분의 생활도구가 돌이었다. 아잔타(Ajanta)에서 본 모든 비하라(vihara, 僧房), 그리고 차이띠야(caitya, 法堂)가 그냥 돌절벽을 쌩으로 파고 들어간 돌구멍들일 뿐이었다. 엘로라(Ellora)의 거대한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 건물면적의 두배나 되고 높이도 그보다 반이나 더 높은, 복잡한 스트럭쳐와 정교한 조각의 이 거대 건물이 단 하나의 통돌을 파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로마의 베드로사원 같은 것이, 단 하나의 통돌을 파들어간 단일조각품이라는 상상키 어려운 상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7천여명의 석공들이 150여년을 걸려 2만톤의 돌을 깎아낸, 세계 최대의 단일 통돌조각 건조물(the world's largest monolithic sculpture)인 것이다이 거대사원의 완성자는 인도 중남부 데칸고원의 대부분을 지배한 라슈트라꾸따 왕조(the Rashtrakuta dynasty)의 크리슈나 1(Krishna I, r. 757~83)였다. 그의 아버지 단띠두르가(Dantidurga)왕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크리슈나 1세 때 집중적으로 그 대부분의 모습이 완성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 거대암석조각은 시바신(Shiva)의 고향인 히말라야산맥의 카일라사 산(Mount Kailasa)을 자기의 왕국내에 옮겨놓음으로써 이 지상에서의 지배권을 확보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엘로라에서 멀지 않은 파이탄(Paithan)이 라슈트라꾸따왕조의 수도였다. 이 카일라사 사원의 존재로 인하여 라슈트라꾸따왕조야말로, 비록 남부데칸에 위치하고 있지만, 지구의 중심이 된다고 믿었으며, 그 왕조의 지배자는 챠크라바르틴(chakravartin, Universal Emperor, 전륜성왕)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성전의 양외벽에는 힌두의 2대 서사시인 라마야나(the Ramavana)마하바라타(the Mahabharata)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는 정교한 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Vidya Dehejia, Indian Art (London : Phaidon, 1998), p.131. Henri Stierlin, Hindu India (Köln : Taschen, 1998), pp.5056. M. N. Deshpande, ‘Kailāśa: A Study in its Symbolism in the Light of Contemporary Philosophical Concepts and Tradition,’ Ellora Caves, Ratan Parimoo etal. (New Delhi : Books & Books, 1998), pp. 230254.. , , , , 이제는 정말 돌만 보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처럼 건축자재로서는 최적인 양질의 화강암을 산출하는 나라도 많지 않지만 우리선조들은 삶의 공간에 돌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였다. 생명의 공간은 기가 소통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내외의 기의 소통을 차단하는 석재를, 계단이나 주춧돌로는 즐겨 사용할지언정, 방바닥이나 벽면, 천정에는 사용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나무나 흙, 종이와 같은 가볍고 보온성이 높은 소재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건물이라는 것 자체에 영원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도 같이 천지간에 잠깐 생겨났다가 스러지고 마는 손님과도 같은 객형(客形)일 뿐이었다.

 

나는 비록 관광수입꺼리는 후손에게 남겨놓지 않았을지언정, 소박한 집을 짓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그리웠다. 나무기둥 토벽에 따끈한 온돌바닥에서 하룻밤이라도 자봤으면 하는 그리움이 사무칠 무렵, 나는 수자타호텔의 석굴과도 같은 방에 또 다시 여장을 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동행한 남군과 이군은 먼저 달라이라마께서 머무시기로 되어있는 궁전에 가서 나의 소재지를 보고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께서 내일 오전 10시경에 보드가야에 도착하실 예정이라는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엘로라(kailasanatha-ellora)의 비하라. 이 거대한 시바의 사원이 단 하나의 통돌 조각품이다. 한 구멍 한 구멍이 스님들이 수행하는 방이다. 한 구멍 한 구멍이 스님들이 수행하는 방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원룸 아파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 다층 건조물은 우리 아파트보다는 좀 살기 괴로운 곳이었을 것이다. 통풍이 전혀 안되는 돌구멍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박쥐들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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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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