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는 마음을 기준으로 한다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저에게는 몇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말씀하시는 이러한 모든 것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선 미세마음이 물리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그것이 전혀 없는 것이라면 이 모든 이야기는 환상에 그치고 말수가 있습니다.”
“도올선생께서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물리적 조건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물질로부터 현현(emergence)되는 그 무엇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신체적 조건을 떠나 독립적으로 떠다니는 존재로서의 마음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조건하에서의 이매지내이션의 기능일 뿐입니다.”
“참 명료하시군요. 저도 물체와 정신의 이원론적 구분을 싫어합니다. 물체와 정신이 실체로서 따로따로 노는 데카르트적인 이원론은 저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의 모든 논의도 심ㆍ신을 하나의 장 속에서 얘기하는 맥락을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체를 꼭 형상을 지니는 존재 즉 공간적 점유로 생각치 않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도 그러한 에너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마음의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이죠.”
“그 이동현상을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통장의 번호는 똑같은데 끊임없이 출납의 내역이 달라진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무방합니다.”
“그런데 그런 통장번호를 인정해버린다면 이 우주의 미세마음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는 얘기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결정론은 좀 억지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한 사람의 미세마음이 바로 다음 사람의 미세마음으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위대한 마음은 여러 화신을 가질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또 환생의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하고 돌이나 나무에 붙어있는 미세마음도 있습니다. 또 윤회는 인간세의 윤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6도(六道, ṣaḍ-gati)윤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계(天界)에 태어난 마음은 수천년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개수의 마음만 윤회한다는 이론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계산능력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세계입니다.”
“참 자세히도 대답을 준비해놓으셨군요. 6도윤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왜 윤회에는 꼭 동물만을 집어넣었습니까? 식물로는 윤회를 하지 않습니까? 식물도 정교한 생명체가 아닙니까?”
“윤회는 마음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식물에는 의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윤회의 자리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과학에서는 식물도 저급하지만 훌륭한 의식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의 영역이 식물에까지 넓혀질 수 있다면 당연히 윤회의 영역도 식물까지 포괄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지요.”
▲ 카필라성의 왕자 싯달타는 보습에 버혀지는 지렁이의 아픔에 몸서리쳤다. 자전거 여행 중 바퀴를 막아선 사마귀. 우린 다른 자전거에 깔릴까봐 길 옆으로 날려주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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