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자전거 여행 중에 생명존중사상을 발휘하다
▲ 충주 → 여주 / 64.69km
조금만 달리면 익숙한 길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달리는데 꽤 달렸음에도 낯선 길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사마귀 한 마리에 멈춰선 네 명의 인간들
그제야 생각해보니, 작년 도보여행 땐 충주에 들어선 이후엔 남한강을 따라 걸어간 것이 아니라, 찜질방에 가기 위해 산척면으로 빠졌으며 거기서 충주댐까지는 531번 지방도를 타고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달리는 남한강 길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긴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평지를 달리는 기분으로 편하게 달리면 된다.
2시간 30분 동안 달렸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달리다가 사마귀를 밟을 뻔해서 멈춘 것이다. 마치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성어가 절로 생각날 정도로 사마귀는 자전거 네 대를 막아선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생명존중 사상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경우 밟아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던지, 가까스로 밟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에 안도하며 그냥 지나쳐 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마귀를 여기에 놔두면 우린 밟지 않았지만, 곧 밟힐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멈춰 선 것이다. 사마귀를 생각하는 마음이,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마음처럼 간절하고도 깊기만 하다.
▲ 사마귀 자전거를 막아섰고, 아이들은 그런 사마귀를 가엾게 여기다.
생명 구하기의 버거움
하지만 문제는 생명존중사상은 있되, 생명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는 거였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처럼, 『원령공주』의 아시타카처럼 생명존중사상을 가짐과 동시에 생명 자체를 귀히 여길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단재 영화팀 멤버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차도남’에 가까운 아이들이라 생명 보기를 괴수 보듯 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도시문명 자체가 자연을 파괴하며 성립된 것은 물론, 수많은 생명체를 몰아내며 이룩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아이들이 미지의 생명체와 마주칠 기회는 극히 적었고, 만지며 논다는 것 자체가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은 무서움’을 유발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생명을 구하겠다고 아이들이 멈춰 섰고, 앞으로 한 명씩 나와 자전거 길 옆으로 사마귀를 보낼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대견하다고나 할까.
▲ 잘 달리던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들의 생명존중사상이 그렇게 한 것이다.
첫 번째 도전자는 김민석이다. 아무래도 맨손으로 사마귀를 잡기엔 찝찝한 감이 있나 보다. 『연가시』란 영화를 통해 한껏 사마귀에 대한 공포감이 커져 있는 상태였기에 그랬을 거다. 그러니 막대를 하나 집어 들고 달려든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아니, ‘사마귀 뒤집기’라는 종목이었다면 성공이었겠지만, 지금 하는 건 ‘사마귀 풀숲으로 돌려보내기’이니 실패라는 것이다.
▲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뒤집기 신공을 발휘하다.
두 번째 도전자는 양준영이다. 보무당당하게 거리낌 없이 앞으로 나간다. 얼굴엔 살짝 긴장하는 빛이 어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만한 그릇은 아니다. 당당히 나아가 일초의 거리낌도 없이 목을 낚아챈다. 아주 자연스럽게 연속적인 동작을 선보여, 하마터면 ‘십 점 만점 중 십 점’을 외칠 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유는 손에 잡힌 사마귀는 그냥 도로에 있던 사마귀보다 더욱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갑자기 폭주하여 두 발로 자신에게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에 잔뜩 질린 채 자전거 도로 바깥쪽에 던져줬지만, 헤어짐이 마냥 싫었던 사마귀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날개를 펴고 아까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 님을 보내려 했지만, 미처 보내지 못한 준영이.
세 번째 도전자로는 다시 김민석이 나섰다. 아까 실패한 것이 못내 맘에 걸렸나 보다. 그래 맘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패는 묻어두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거지.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 넘어지는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곧바로 털고 있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연기를 펼치지 않던가. 니체가 말한 ‘망각의 능력’이야말로 그런 모습일 텐데, 민석이도 ‘망각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는 아직도 사마귀를 거부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다. 목덜미를 잡기는커녕 손으로 깔짝깔짝 뒷다리만 건들다가 허무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 맘은 목을 잡고 싶은데, 왜 이리 몸은 그럴 수가 없을까?
아이언맨, 옵티머스 프라임은 우리 곁에 있다
정령 우리에겐 위험에 처해 있는 생명체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되 그 생명체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超人’은 없단 말인가? 생각 같아서는 “도와줘요, 배트맨!”이라고 외치고픈 심정이다. 배트맨이라면 우리처럼 이렇게 사마귀에게 벌벌 떨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오늘의 리더 현세가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묘사하자면 꼭 지구를 구하러 떠나는 아이언맨 같은 느낌이었고, 옵티머스 프라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만 보고 속단하긴 이르다.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준영이가 실패한 것을 두 눈으로 똑바로 봤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풀어선 안 된다. 현세는 약간의 미동도 없이 사마귀를 향해 거침없이 나간다. 그리고 바로 손을 내밀어 목을 낚아챘다. 여기까지는 준영이와 매우 흡사했다. 이제 얼마나 손에 들린 사마귀의 공포를 이겨내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할 수 있다. 마음속에 겁이 나지만, 현세는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신중하고 침착하게, 그러면서 순식간에 사마귀를 풀숲에 던져버렸다. 사마귀는 다시 날아왔느냐고? No! No! 그 녀석은 떠날 때를 알던 녀석이었다. 아마도 현세가 마지막 구세주임을 알았기 때문인지, 다행히도 그 이후론 볼 수가 없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당당하게 목을 잡고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남한강 도보여행 때의 편지 미션 장소에서 추억을 곱씹다
사마귀 돌려 보내기 작전을 수행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조금 달리니, 그제야 익숙한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명품비내길’이란 안내판이 일 년 전과 똑같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땐 잠시 쉬며 걸었던 길도 그대로 있었다. 거기가 왜 그렇게 익숙하냐면 그곳에서 도보여행 때 대형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 왼쪽이 작년 사진, 오른쪽이 올해 사진. 걷던 길을 올핸 자전거를 타고 간다.
도보여행 계획을 짤 때, 친구가 미션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스를 줬고 부모님의 선물이 묻어 있어 찾는 것도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줬다. 그걸로 한참 궁리하다가 ‘부모님의 편지를 어딘가에 묻게 하고 그걸 찾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부모님들에게 그런 계획이 있다고 알리며 하실 의향이 있냐고 물었는데, 모든 부모님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그곳에 편지를 묻게 했고, 그곳에서 보물찾기처럼 편지를 찾게 한 후에 답장을 쓰게 한 것이다.
도보여행을 할 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뜬금없이 “이곳에 부모님들이 준비한 선물이 묻혀 있으니, 찾으세요”라고 하니, 아이들은 정신없이 찾기 시작했다. 5가지의 힌트 중 4번째 힌트를 줬을 때 승빈이가 찾았는데, 승빈이는 선물 근처에 있던 민석이를 내동댕이칠 정도로 ‘보물찾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이들은 상품권이라 지레짐작했지만, 막상 뜯어보니 편지인 줄 알고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곳을 일 년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도보여행과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한 아이들은 민석이, 재욱이, 현세이기에 이들에겐 추억이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욱이는 그러던지 말던지 시큰둥했고, 민석이는 잠시 ‘아 그 장소’라는 반응을 보이는 선에서 끝난데 반해, 오히려 현세가 추억에 잠기면서 “여기가 바로 그때 그 장소네요”라며 선물이 묻어 있던 장소까지 갔다 오더라. 그리고 ‘남한강 도보여행’ 영상을 통해서만 봤던 준영이는 그 장면을 회상하며 신기한 듯 쳐다봤다.
▲ 현세만 이 자리에 대한 추억에 잠기며 찾아갔고, 지훈인 무관심으로 민석이는 작은 관심으로 표현했다.
이제부턴 진짜 도보여행 때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지금 시간은 겨우 12시 20분밖에 되지 않았고 오늘은 여주까지만 가면 되니 넉넉잡고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보기도 처음이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그곳에서 좀 쉬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일 분 일초도 모르는 게 사람이라지 않는가. 모든 일은 닥쳐봐야 알게 되는 게 많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과 몇 분 뒤에 닥칠 일을 알지 못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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