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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고행이란 무엇인가?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고행이란 무엇인가?

건방진방랑자 2022. 3. 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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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이란 무엇인가?

 

 

그 다음에 고행이란 무엇인가? 여기 이 고행이라는 논의를 하기 전에,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남쪽으로 갈라지는 문화적 벨트의 대세를 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의 황하를 중심으로 한 한자문명권의 사유 속에서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육체(body)와 영혼(soul)이라는 이원론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논의가 우선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억지로 그 신화적 세계로부터 심층구조를 논구해 들어간다면 물론 영과 육에 해당되는 어떤 분별이 있기는 하겠지만, 중국적 사유의 대세는 애초로부터 영육의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고전한문 자체가 영육이라는 이원론을 중심으로 어휘형성이 되어 있지도 않았고 또 문법적으로도 영육이원론을 뒷받침할 어떤 구조를 제시하지 않는다. (주어 중심의 주부-술부적 어법이 아니다.)

 

그런데 반하여 파미르고원의 서쪽과 남쪽으로 펼쳐지는 광막한 지역, 저 그리스나 이집트로부터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문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영육이원론의 문제를 그 종교적 과제상황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신비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모든 신비주의는 영육이원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신비주의의 열쇠는 육체가 쥐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쥔다.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육체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의 비상의 품에 안겨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욕망의 본산인 육체를 학대함으로써,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육체를 죽임으로써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달타가 경험한 극단적 고행의 수련은 못이 삐쭉삐쭉한 침대 위에 사람이 드러누워 못이 점점 살 속으로 박혀 들어가 살이 썩어 들어가는 아픔 속에서도 태연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그러한 극한적 한계상황이었다. 싯달타는 그러한 모든 극한적 고행의 체험을 감내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모든 고행에는 영육이원론의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오체를 투지하면서 가냘프게 흐느끼는 아리따운 수녀님의 독백 속에서도 우리는 영혼의 순결을 위하여 욕망으로 가득찬 육체의 불결을 저주하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 육체를 저주해야만 한다면 그 극단은 육체의 소멸밖에는 없다. 육체의 소멸은 죽음이다.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 육체가 소멸해야 한다면 그러한 고행의 최선의 방법은 자살일 것이다. 라스베가스를 떠나가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택한 방법이 최선의 방법일런지도 모른다. 자살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영혼의 해탈은 모든 인간에게 결국 찾아오고 만다. 모든 죽음은 무여열반이다. 무여열반은 고승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죽음이야말로 모든 것의 종말이라고 믿고 살아온 평범한 인간들의 죽음처럼 위대한 무여열반은 없을 것이다.

 

 

 인도여인의 일상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땔감을 주어오는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에너지를 긁어 모으는 이 여인의 고행도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결국 삶의 맹목적 의지의 표상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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