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배운 한 가지, 뻗대기
02년 3월 28일(목) 맑음
수요일엔 역시 환자역을 했는데 최대한 첫 60에 안 타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타서 인체제독소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군수 장교님이 어제 연습 안 한 놈이 누구냐며 그 인원들은 빠지랬다. 그런데 최초 환자들은 인체 샤워를 다 하는 쪽으로 몰아가더라. 그래서 최대한 버티며 아닌 척을 했다.
군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어떤 일도 그런 척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무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정의만이 옳은 것인 양 취급되어지고 그것만이 떳떳한 일인 양 취급되어져야 한다고 말해지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대의 선(善)이며 최대의 의(義)라고 생각되어지는 법률이 정말로 제대로 작동하는가? 떳떳함 위에 서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며, 옳은 이에게 상을 주고 그런 이에겐 벌을 줄을 아는가? 이 세상은 요즘 선악(善惡) 혼돈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이 얼마나 선한 것이지, 무엇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헛갈리기 때문에 무엇에 떳떳해야 하고 무엇에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기에 잘못을 하고도 떳떳한 척 소리를 지르면 모든 게 선인 양 귀결되어지는 현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노래 말마따나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건 군이란 특이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년이란 군 생활 끝에 난 그걸 터득했고 이번 기회를 통해 그걸 몸소 실천해보려는 것이었다.
환자인 척(포진에서 나온) 가만히 앉아 있었다. 중대장님이 와서 최초 환자들을 찾을 때에도 난 가만히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대단할 정도의 떳떳함이었지만,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버티다가 동주가 최초 환자들을 부를 때 거기에 갔었는데, 이미 인체 샤워 인원 12명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인체샤워를 하지 않는 일반 환자역할만 하면 됐다. 무심한 떳떳함이 나름 좋은 결과로 귀결된 예다. 하지만 이걸 끝이라 생각했다면 그건 아니 될 생각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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