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생방 전사상자 처리 훈련 중 K-3로 인한 고초
02년 3월 28일(목) 맑음
이번 일주일 내내 M.O.P.P 4단계를 다 적용한 상태로 하루하루의 나날을 보냈다. 무슨 말이냐면, 금요일에 사단장님 앞에서 화생방 전사상자 처리 훈련이 아니라 시범식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보호의ㆍ전투화 덮개ㆍ방독면ㆍ보호수갑을 하고서 짜여져 있는 각본대로 움직여야만 했던 것이야. 말이 쉽지 방독면을 쓰고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대는 감히 알라나?
상황이라면 화생방 탄이 떨어져 진지에 투입되어 있던 대다수 병력들이 부상 당했고 그로 인해 그 인원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어쩐지 갑자기 주일에 방독면 쓰는 연습을 시키고 월요일엔 하루종일 화생방 물자를 착용하는 연습을 시키더니, 화요일부턴 실전 연습을 하기 위해 시범식 교육 장소인 77포대로 이동하더라니. 다른 소대는 모두 걸어가야 했지만 우리 소대만은 오분대기조였기에 60을 타고서 아주 편안하게 77포대로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린 더위와 짜증에 맞서가며 모든 피복을 다 착용한 채 교육 수련을 해야 했다. 특히 방독면을 10분 이상 쓰고 있어 머리가 지끈지끈해지고 정신이 혼몽해질 때면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라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런 역경과 시련을 잘 이겨나가는 주위 선후임들을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 교육 수련 땐 내가 K-3 사수라는 게 무척이나 서럽게 느껴졌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우리 소대원들은 인체제독소(人體除毒所)에 있었기에 나 또한 거기로 뽑혔었는데 K-3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곳으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 상황이 발생하는 탄약고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곳은 3소대 전담이었는데 거기에서 최초의 상황인, 화생방탄이 떨어지면 그 탄에 맞은 사람들이나, 질식된 사람들이 쓰러지는 데, 그때 조금 다친 사람들이 나와서 방독면을 씌워주고 그들을 부축하여 의무대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조금 연습하다가 K-3란 이유만으로 또 다른 데로 옮겨가야 했다. 이번에 옮겨 온 곳은 환자들이 있는 곳이다. 나는 경상자(輕傷者) 역할이었기에 발목에 압박붕대를 조금만 매고서 차량 쪽으로 이동하면 되는 거였지만 방독면을 오래 쓰고 있어야 했기에 그게 힘들 뿐이었다. 이쯤만 해도 세 번을 K-3라는 이유만으로 옮겼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불운은 거기에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K-3란 이유만으로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했으니 말이다. 바로 포진 뒤에서 나오는 환자 역할을 맡게 됐다. 사실 제일 월 때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역할이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인체 샤워까지 가서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해야만 했기에 누구든 피하고픈 역할에 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덕에 두 번째로 60을 타게 되었고 인체 샤워팀에서 제외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국은 돌고 돌아 좋은 역할로 귀결된 채 당당한 K-3를 들고서 화요일에 소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렇게만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겠냐 만은, 이런 해피엔딩이라면 초반에 조금 짜증났다 할지라도 얼마나 행복했겠냐 만은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K-3의 태클은 또 다시 이어졌으니 말이다. 저녁에 부소대장님이 부르더니, 그 자리에 K-3가 있어서 안 된다며 다시 최초 환자 쪽으로 옮겨 가라는 것이다. 그 역할이 바로 인체 샤워를 해야 하는 역할임을 알기에 K-3를 원망하며 잠에 들었다.

군에서 배운 한 가지, 뻗대기
02년 3월 28일(목) 맑음
수요일엔 역시 환자역을 했는데 최대한 첫 60에 안 타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타서 인체제독소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군수 장교님이 어제 연습 안 한 놈이 누구냐며 그 인원들은 빠지랬다. 그런데 최초 환자들은 인체 샤워를 다 하는 쪽으로 몰아가더라. 그래서 최대한 버티며 아닌 척을 했다.
군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어떤 일도 그런 척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무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정의만이 옳은 것인 양 취급되어지고 그것만이 떳떳한 일인 양 취급되어져야 한다고 말해지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대의 선(善)이며 최대의 의(義)라고 생각되어지는 법률이 정말로 제대로 작동하는가? 떳떳함 위에 서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며, 옳은 이에게 상을 주고 그런 이에겐 벌을 줄을 아는가? 이 세상은 요즘 선악(善惡) 혼돈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이 얼마나 선한 것이지, 무엇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헛갈리기 때문에 무엇에 떳떳해야 하고 무엇에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기에 잘못을 하고도 떳떳한 척 소리를 지르면 모든 게 선인 양 귀결되어지는 현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노래 말마따나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건 군이란 특이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년이란 군 생활 끝에 난 그걸 터득했고 이번 기회를 통해 그걸 몸소 실천해보려는 것이었다.
환자인 척(포진에서 나온) 가만히 앉아 있었다. 중대장님이 와서 최초 환자들을 찾을 때에도 난 가만히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대단할 정도의 떳떳함이었지만,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버티다가 동주가 최초 환자들을 부를 때 거기에 갔었는데, 이미 인체 샤워 인원 12명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인체샤워를 하지 않는 일반 환자역할만 하면 됐다. 무심한 떳떳함이 나름 좋은 결과로 귀결된 예다. 하지만 이걸 끝이라 생각했다면 그건 아니 될 생각이다.
등산과 군 생활의 공통점
02년 3월 28일(목) 맑음
뻗대기를 통해 인체샤워를 하지 않는 경상자 역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잘 마무리 되어지는 듯했는데, 이번엔 ‘아무 것도 아닌 환자’가 문제였다. ‘아무 것도 아닌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서도 쫓겨나 최초의 상황을 하는 데로 가야 했던 것이다. 도대체 몇 번을 옮겨다녀야 하는 거야? 아무리 군대라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내 성격도 참 많이 좋아졌다.
역시 환자역을 하면서 그곳이 제일 월 때리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해보니 정말 월중의 월인 곳이었다. 나는 하헌태 상병을 업고서 내려와 배수구로 짱박히면 되는 일이었기에 처음만 빡시게 하면 그 다음부터 쭉 쉬어도 되는 그런 역할이었다. 이쯤 되니 돌고 돌아 이 역할을 맡게 됐지만 참 운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까지 들더라. 그에 반해 동주와 지용이와 희규는 딱 인체제독 인원으로 뽑혔다. 이럴 땐 내가 서 있던 줄이 꽤 괜찮기도 하다. 좀 짜증 나는 점이라면 갑자기 현실성을 고려해서 산을 타고 내려오라고 하는 바람에 산의 비탈을 까야만 하는 어이없는 작업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작업이기에 짜증을 내며 작업을 해야 했다. 아무튼 그렇게 목요일까지 월 같지 않은 월을 때렸고 금요일에 사단 참모들 앞에서 시범식 교육을 몸소 해야 했다. 일주일 내내 진행됐던 시범식 훈련을 마치고 보호의와 전투화 덮개와 영원히 헤어지려니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더라. 정말 답답하고도 짜증 나는 일이었으니 다신 이런 훈련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렇게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면서 CⅢ를 보았는데 그 높게 뻗은 봉우리에 나무들과 절벽이 너무도 잘 조화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 절로 감탄이 나오며 감상에 젖게 됐다. 산에 오르는 거, 정말 좋은 일이라 건 잘 안다. 하지만 거기에 오르기 위해선 순탄한 길만 있는 건 아니다. 오르다 보면 평지도, 경사가 심한 비탈길도 있고 험한 외다리도, 험준한 절벽을 지나야 할 때도 있다. 그건 그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한 길이며 그 길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도중에 내려갔다가는 지금껏 오른 시간만 허비할 뿐아니라, 정상에 올랐을 때의 통쾌함은 포기해야 할 뿐이다. 당신도 그걸 알지 않던가?
그건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역이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훈련이란 힘듦, 갈굼이란 짜증, 휴가란 행복, 면회란 기쁨을 몸소 하나하나 거쳐 가야만 결국 전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을 한 걸음씩 밟아가며 산에 올라 드넓게 펼쳐진 지역을 내려다볼 때 비로소 뿌듯함과 산뜻함이 가슴 깊이 어리는 것처럼 그런 하나하나의 과정을 다 겪어내야지만 마침내 전역을 할 때의 해냈다는 성취감이 어리는 것이다. 그제야 지금까지의 그 수많은 역경들이 비로소 하나의 40여명의 공유된 추억으로 받아들여져 ‘찬란했던 젊은 시기의 잃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 거겠지. 산에 오르므로 나에게 어떠한 장애물도 나의 발치에 닿는 땅일 뿐이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처럼 군 생활도 전역하므로 세상에 어떠한 불의나 부당함에도 넘어지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등산하는 과정과 군 생활 과정의 공통점을 생각하며 부대에 복귀했다.
끝이란 시간은 어떤 일을 하든 늘 있다. 하지만 그 끝을 향한 발걸음들이 버겁고 더딜 뿐이다. 그 더딤을 받아들이고 참고 이겨내는 수밖에 다른 방법 따위는 없다. 끝이 눈앞에 당도했을 땐 좀 더 색다른 세상이 펼쳐질지 그 누가 아는가? 그러니 어떻게든 가봐야만 안다.
03년 1월 16일(목) 301고지의 1분대원들 오른 후에. 전역을 3개월 앞 둔 시점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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