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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8. 심하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8. 심하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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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심하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오늘은 36Km만 달리면 되지만, 아무래도 늦게 출발한 만큼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현세는 자꾸 뒤처지더라. 엄청 힘이 드는 지 말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오늘은 별도의 리더가 정해져 있지 않음에도 민석이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찾으며 길을 안내해줘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찜질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전거 도로를 타다가 국도를 달려야 한다. 문제는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과, 국도엔 차량 통행량이 많을뿐더러 차들의 속도도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여차하면 쥐포가 되기 십상이겠더라. 하지만 국도를 6.3Km를 달려야 찜질방에 갈 수 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전에 유의하여 발목에는 야광밴드를 차고 갓길로 조심해서 달렸다.

 

 

어둠이 깔리고 있는 국도를 달려 간다.

   

 

사막엔 오아시스, 자전거 여행엔 편의점

 

이미 시간은 6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맹렬히 달려오는 차들의 무서움, 찜질방에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불안, 어두워지는 만큼 서늘해져가는 기온이란 삼중고가 우리를 짓누른다. 불안한 마음은 두려움을 키우고, 두려워질수록 삶의 비극은 짙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순 없기에 페달을 밟을 뿐이다.

그 때 한 가닥 희망의 불빛이 우리를 맞이했다. 바로 편의점 불빛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왠지 사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희망의 불빛이었다. 편의점 근처에 도착하여 둘러보니, 바로 옆에 중화요리집이 있더라. 그래서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곳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고 있으니, 금방 전까지 어렸던 불안의 그림자는 햇볕에 노출된 이슬처럼 사라진지 오래였다.

 

 

삶의 행복. 아니 여행의 행복. 먹으니 행복이 밀려온다.

 

 

 

굶주린 자에겐 음식이 명약입니다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서는 간식을 사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거의 죽어가던(전문용어로 넋이라도 있고 없고’) 현세는 언제 그랬냐 싶게 완벽하게 살아났다. 평소 같으면 어떤 침묵이 흐르는 상황, 진지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옆에 와서 시답잖은 농담을 하거나, ‘데헷’, ‘부엉이이 같은 쓰잘데기 없는 말을 하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한다. 그런데 이날 오후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힘드니, 그런 것들을 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간식을 먹으며 원기를 회복하니, 원래의 현세로 돌아와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현세뿐인가? 아이들도 기분 전환이 되었는지 함께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준영이는 빵에 묻은 크림인 것처럼 속여 담배를 빵에 올려놓고 친구야 이 빵 좀 먹어라며 재욱이와 민석이에게 건네주기도 했고, 민석이가 화려한 농담 세트를 준영이에게 선물해주고 도망가자,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던 준영이는 민석이를 잡으러 쫓아가며 나 잡아봐라식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활기를 되찾으니, 같은 어두운 밤인데도 아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더라.

그럼 이쯤에서 이렇게 정리하는 건 어떨까? ‘삶이 고단하다고 느껴지십니까? 뭔가 비관적인 생각만 가득하십니까? 그럴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금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보세요. 1544-82먹어! 1544-82먹어! 지금 당장 실험해보세요라고 말이다.

 

 

간식을 먹는 여유를 누린다. 힘이 솟는다.

 

 

 

성주대교로 인해 목적지가 뒤바뀐 사연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찜질방에 도착할 수 있다. 어둠은 이미 내려앉은 지 오래지만, 목적지가 코앞이었기에 조금 더 힘을 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편의점 근처엔 성주대교라는 다리가 있고 그걸 건너야만 찜질방으로 갈 수 있는데, 글쎄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보행로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전거로 건너기엔 몹시 위험했다.

이쯤 되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생명이 먼저인가? 돈이 먼저인가? 우린 도전을 하러 온 것이지, 목숨을 내걸러 온 것이 아니기에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니 모텔이 눈에 들어오더라. 인적도 드문 이런 곳에 모텔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날은 모텔에서 묵기로 하고 돌아왔다.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하루를 정리하며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뿌듯하다고 했다.

 

 

 

여행은 삶의 축소판

 

이래저래 계획이 바뀌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것들이 연출된 하루였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왔기에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고, 처음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라 뭐든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고가 나지 않았고,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행에서 계획이 변경되고, 목적지가 바뀌며, 서로 갈등이 생기고, 싸우게 되는 일은 어찌 보면 일상다반사다. 아무래도 서로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에 여행을 하는 동안 그런 부분들이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감정의 미묘한 부딪힘에다가 여러 날 여행을 하며 체력저하로 인한 힘듦까지 겹치면 자신의 감정을 더욱 컨트롤하기 힘들어진다. 그럴 때 작은 스트레스라도 크게 느껴지며, 작은 갈등이라도 절체절명의 상황처럼 느껴져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계획까지 틀어진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럼에도 계획이란 기초적인 자료를 토대로 사고실험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여러 제약이나 이변들이 발생하기에 계획은 끊임없이 수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찌 보면 여행이 삶의 축소판이라 할 때 그런 경험을 하며 그걸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여행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동안 수많은 상황에 부딪히고 갈등상황에 휩싸이며 나의 밑바닥까지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니 사고가 나서 누군가 크게 다치는 일만 아니라면, 계획이 바뀌건 의견 충돌로 다툼이 발생하건, 뭐든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첫날 저녁 늦게까지 달리며 삶의 어떤 비극, 또는 예상치 못한 비관 같은 것을 맛본 경험이 남은 6일간의 여행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힘듦은 그 순간엔 힘듦이지만, 그걸 넘어서는 순간 힘듦을 견뎌낼 수 있는 내성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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