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16.(목) 길을 잃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마라
아침에 중앙도서관 복도에서 청학동에서 같이 일했던 형을 만났다. 몇 번 임용 2차까지 붙었다가 최종에서 떨어진 형이다. 그래서 올해 계획을 물어보니 얼굴엔 침통한 기색이 어리며 “작년엔 기간제 교사를 했으니 기회가 다시 온다면 또 하면서 공부해야지”라고 하더라.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 08년 2월에 2주 동안 청학동에서 훈사를 했다.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다신 하고 싶지 않던 경험이었다.
임용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도둑질만 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여태껏 어떻게든 흘러왔다. 그 흐름에 발맞춰 용케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건 어찌 보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었으며 노골적으로 말하면 편한 대로를 따라온 삶이었다. 고민도, 걱정도, 심지어 자신의 요구도 필요 없었다. 개인의 小史보다, 운명의 中史 또는 가족의 大史를 따른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아깝다는 전제 하에 좌충우돌 하지 않고 자기 꿈이라는 기만으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무시한다. 어차피 들어선 이상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 길만을 따라 간다.
고민하는 순간을 미루지 말자
나도 거기에서 얼마 벗어나진 못했다. 그건 정확히 악순환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시간 때우기. 공부를 하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걸 꿈꾸려 발버둥 치지만 현실에 머무는 소치 말이다. 그러면서 생의 약동함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았다. 형과 나의 차이는 하나도 없지만 분명한 차별점은 있었다. 그건 지금껏 고수해온 길을 계속 가려는 마음과 새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의 간격이라 할 수 있다. 분명한 건 언제든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정규직이 되더라도 30년 후엔 지금과 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미 그 때는 가족도 있고 힘도 부치며 자신감도 줄었을 것이니 지금의 상황에 비할 바가 아닐 거다. 지금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큰 고민과 걱정에 휩싸일 게 뻔하다. 언제든 겪을 일이라면 젊을 때, 나만 걱정하면 될 때 미리 경험해 두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지향하는 바가 있으면 그리 가면 된다
물이 흐르다 방해물을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 흐름을 멈추는 게 아니라 돌고 돌아서 새 길을 만들며 가지 않던가. 그 길이 어느 순간엔 물길이 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은 그와 같은 새 길을 만드는 순간일 것이다. 지금 고민하고 경험하며 관계 맺는 모든 사람들이 새 길임에 분명하다. 어느 순간이고 어느 것이건 헛된 것이 없다고 할 적에 지금 이 순간은 앞으로 나의 30년 이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기백이 형의 마음과는 달랐던 것이다.
지향하는 바가 있으면 계속 가면 된다. 길을 잃었다 할지라도 계속 가면 어느 순간 길은 통한다. 함열에서 논산으로 가는 길. 그 땐 길을 잃었었다(해당 글보기). 하지만 방향을 잘 잡고 걸어갔더니 어느새 강경에 다다랐고 논산에 도착했다. 그 순간 느꼈다. 길을 잃는다는 건 애초에 있을 수 없다는 걸. 방향만 맞다면 어떻게든 목표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걷고 걸을 뿐이다.
참된 스승을 알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간단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 남을 위해 가르치는가 자신을 위해 가르치는가, 남을 섬기기 위해 가르치는가 섬김을 받기 위해 가르치는가, 남을 해방시키기 위해 가르치는가 남을 자기에게 묶어 놓기 위해 가르치는가, 한 마디로 타인중심적인 가르침인가, 자기중심적인 가르침인가를 알아보면 된다. -『또 다른 예수』, pp368
11.01.21.(금)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직원 모집 광고를 보다
나도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정작 원하는 건 ‘공부를 통해 삶을 바꾸고 관계를 증진하자’는 식의 스터디 공동체라 정의할 수 있겠는데, 그것도 어렴풋한 이미지만 떠올랐을 뿐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통해 공부의 의미와 하고 싶은 일의 의미를 알게 됐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책에 파묻히다
어쨌든 무언가 계기를 만들고 싶어 여행을 떠나볼 생각이었다.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기보다 기회를 만들려는 자세로 말이다. 그래서 떠나기 전까지는 많은 책을 읽으며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주구장창 맘 이끄는 대로, 손닿는 대로 책을 넘기며 고민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만들어질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알고 있다, 관계에 휩쓸리지 않으며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안에 가득 찬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니체의 말마따나 ‘벌꿀 중 꿀이 가득 찬 놈만이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을. 내가 꽉 차지 않고 나에 대한 불만만 가득해서는 어떠한 상황, 어떠한 관계건 날카로운 비수만을 날리게 된다는 것을. 남에게 상처 받는 게 싫어 남에게 먼저 상처 입히는 어리석은 관계를 지속하리라는 것을. 약한 자, 불안한 자만이 작은 것에 분개하며 선빵을 날리는 법이다. 그런 내가 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책으로 빠져들었다.
직업이 없어 모든 불행이 시작됐다?
이로써 ‘얼렁뚱땅’ 해야 할 것이 정해졌다. 이런 누군가 본다면 답답해 보일 거다. 오죽했으면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영어 수학을 전공한 사람과 모여서 학원이라도 해보는 건 어때?”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나도 그 순간엔 속으로 ‘지금은 책에 푹 빠져 맘껏 독서할 수 있는 유일한 때’라고 합리화했지만 보이는 무언가가 없기에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 경일이 형에게 전화가 왔을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뾰족한 계획들을 이야기하기보다 얼버무리고 있어야 하니, 그 순간 내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던지.
당연하겠지만 나 스스로 이렇게 나를 억누르고 있으면 남이 나를 좋게 볼 리는 없다. 그게 꼭 직장을 갖는다고 채워질 맘의 궁핍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직업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핑계를 대며 편안하게 있는 것이다. 직장만 갖게 되면 자존감도 회복되고 관계도 나아지며 내 인생의 봄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 그 모든 게 편의주의적인 생각에서 시작됐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지만, 지금은 그저 그렇다.
모집광고만으로도 가슴이 뛰다
그러다 오늘 신문에서 좋은 내용을 발견했다(솔직히 이 얘기를 하려 넋두리가 길어졌던 거다. 이게 바로 용두사미라고나 할까). 한겨레 신문의 부속기관인 한겨레 교육 문화센터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평생교육, 교육기획’ 담당으로 신입을 모집한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평생교육 기획에 대해 아무런 기초적인 지식이나 경험은 없지만, 한겨레 신문 자체가 신뢰하는 신문이고 더욱이 교육 담당이라지 않은가. 작년에 전주대 평생교육원에서 6개월 간 근무를 한 경험도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다. 이래서 ‘쓸 데 없는 경험은 없다’라고 하는 걸까.
그래서 임용을 그만둔 이후에 최초로 도전해볼만한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써보려 한다.
이렇게 맘을 정하고 나니 무언가 이루어질 것만은 같은 행복에 가슴이 뛴다. 나의 꿈이 어떤 식으로든 한 걸음 다가왔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광야에서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교육을 창안하는 발걸음이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다.
▲ 이 광고를 본 것만으로도 마음은 안정이 됐고, 희망을 품게 됐다.
11.01.31.(월) 처음으로 자기소개를 쓰며
지금까지 공식적으론 ‘임용을 준비하는 취준생이다’라는 핑계거리가 있었으니, 어딘가에 취직하기 위해 작성해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자기소개서를 쓰게 됐다.
자기소개서는 어려워
작년에 전주대에 인턴을 신청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쓴 적은 있지만, 그땐 형식적으로 친구가 보내준 양식을 조금만 고쳐서 쓰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막상 나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도 되고 막막하기도 하더라.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고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려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일기형식으로 나만 볼 글을 쓰는 것과 남이 봐야만 하는 글을 쓰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런 경험을 한지 일 년이 흘러 본격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다. 일 년이 흘렀지만 막막함은 여전하다. 그러나 나름 경험을 해봤기 때문인지 가벼워진 부분도 있다. 이 글엔 내가 살아왔던 삶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으면 그만이고, 왜 그곳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지를 솔직담백하게 서술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기에 쉬울 수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하기에 어려울 수도 있다.
글쓰기는 여행과 똑같다
자기소개서의 서두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문뜩 부각시키고 싶은 부분이 떠올랐고 그걸 중점으로 써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각시키고 싶은 부분은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변화무쌍한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그런 과정을 표현하며 자연스럽게 공부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대비시켜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흐름으로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잡았으니, 그냥 써 나가기만 하면 된다. 막상 글이 써지는 과정 속에선 의식 너머의 역량이 드러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란 여행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고, 처음 맘먹었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처음에 세워둔 큰 줄거리는 있되 써 나가다 보면 어떻게 흘러가 어떤 내용으로 끝맺어질지 나 자신도 예측할 수 없다. 내 안의 웅성거림이 펜을 통해 표현되는 순간, 내 생각과 같을지, 다를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나 자신도 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던 터라 글을 쓰면서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생명체를 대하듯 경건해지는 수밖에 없다.
10일 간의 고심이 담긴 작품
어제, 오늘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끙끙 앓으며 써나가던 글을 오후 4시 정도에 마무리 짓고 메일까지 보내놨으니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그 글엔 나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러니 조금 어설프더라도, 뭔가 부족해보이더라도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도록 심여를 기울여 글을 썼고 생각을 정리했다. 누군가 “여기에 쓰여 있는 내용이 만족스러워요?”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나로선 최선이었어요”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을 정도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어제부터지만, 이미 구인광고를 보던 순간부터 어떻게 쓸까 고심하고 있었다. 그건 자기소개서가 고작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기 뭣하다. 1월 21일부터 고민한 흔적들이 이 작품에 아로새겨졌기 때문에, 10일 간의 맘이 담긴 작품이라 해야 맞다.
이로써 나의 첫 번째 취직을 위한 제출서류 작성도 끝이 났다. 간절히 바랐던 건, 한 번 정도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모르는 것 투성이기에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달게 받을 수 있도록 가벼워지려 노력할 것이다. 여러모로 이번의 경험은 첫 경험으로 귀한 경험이다.
11.03.05.(토) 성취라는 걸림돌에 대해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올무는 토끼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토끼를 잡으면 올무를 잊어버린다. 말은 뜻을 전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뜻을 전하고 나면 말을 잊어버린다. 나는 이와 같이 말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만나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 『莊子』「外物」
성취한 것을 놓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언제 봤더라. 루리웹에 사법시험 합격증이 올라왔고 그 밑에 ‘지금껏 개고생 했으니 이젠 맘껏 울궈먹겠다. 云云’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성취를 놓아버리긴커녕 그 성취에 매달려 있는 꼴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루는 것보다 그걸 놓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의 성취란 건 의식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독서를 많이 했다느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느니, 변화를 긍정한다느니, 이런 것들이 실제 이루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의식하고 있고 그렇게 될 수 있겠거니 착각하고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그 성취가 실제적으로 있었다 해도 놓아버려야 할 것인데, 있지도 않은 걸 부여잡고 잰 체 하는 건, 가관이다. 그건 혹 벌거숭이 임금이 옷을 입었다는 착각으로 대중 앞에 선 격이랄까. 착각은 실상 자신에게 가장 큰 결점인 거였다. 그렇다면 그 착각을 걷어내는 건 물론 지금껏 가지고 있었다고 느낀 것조차 내려놓아야 한다. 그건 얻은 행위 뒤에 얻기 전 과정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기에 그런 이유로 ‘내가 해봤는데....’란 어법은 자기의 작은 성취에 집착하는 언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려진 진실에 더 다가가야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1.05.22.(일) 한겨레 교육 면접기
내일이면 내 인생 최초로 면접을 본다. 서울까지 가서 보는 면접이기에, 제대로 된 직장을 찾던 중 보는 면접이기에 떨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떨리는 강도에 비례하여 기분은 좋기만 하다. 어떠한 경우건 나에게 연락이 왔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기쁘기 때문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느낌만은 강하게 든다.
▲ 한겨레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서류를 내게 됐다.
면접 전야, 설렘과 기대의 앙상블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고 심하게 떨리지 않는 건, 금요일 통화에서 느껴지던 여유 때문이다. 면접 보러 올 수 있느냐고 이야기를 했고 뭐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별로 준비할 건 없어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건 곧 무언가 여유가 있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더욱이 지금은 정식모집도 아니고 급작스런 추가모집이라고 하니, 왠지 더 편하게 느껴졌다.
과연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 인원을 뽑는 것일까? 그런 궁금함 때문에 이리저리 찾다보니 상담직을 뽑는 것도 보였다. 과연 내가 그곳에서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것 외에도 2교대 근무로 하는 다른 업무도 보였는데 그걸 내가 맡게 되는 건 아닐까?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하는 일 또한 맘에 드는 일이었으면 정말로 좋겠다. 내가 원하는 기본적인 조건은 주간 근무고 어느 정도 전문성을 신장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한다. 내일 가보면 모든 게 명확해질 테지만 지금은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불안하고 과연 내가 뽑힐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도 걱정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고 있다. 이러한 기분 자체가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근심도 기쁨도 맘껏 느끼며 내일 다신 없을 시간으로 즐겁게 보내다 와야지.
면접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면접을 본다는 건, 그것도 서울에 가서 본다는 건 이래저래 나에겐 대형 이슈였다. 이제야 마음을 돌려 직장을 찾고 있고 처음으로 기회가 이렇게 주어진 것이니 말이다.
처음 보는 면접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금까진 이런 식의 기회도 없었고, 그동안 쉬운 것만을 해왔고 정식적인 철차를 밟아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없기에 좋은 기회라는 거다. 분위기는 어떨까, 그리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난 어떻게 이야기하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면접을 보러 서울에 올라가고 나의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은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려 한다. 공장에 들어가든,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별 고민 없이 하고 싶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 일도 아니고 내가 전공한 것을 십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합격만 한다면, 타지생활도 할 수 있고, 전공을 살려 일도 할 수 있지, 최고의 시나리오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기죽지 말고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어 면접을 보아야 하고 내 생각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면접을 보기 위해 신촌역에 도착하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잠을 뒤척이거나 긴장이 되었거나 하지도 않다. 면접에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왠지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 것이다. 형식적인 면접(시시한 농담 따먹기 같은 것)이지 않을까 기대해서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건 근무여건이랄지, 보수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건 아닐까 했던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저번 주에 온 전화의 뉘앙스가 왠지 가벼웠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서 선배네 집으로 갔다. 8시 15분에 도착했는데 글쎄 차가 안 보이더라. 그랬던 거였다. 내가 9시 차를 타고 간다고 했으니 배웅해주려 일찍 집을 나선 거였다. 어쩌겠는가 집으로 돌아오게 해서 와이셔츠 목 부분을 빨로 말리는 작업을 좀 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을. 선배가 태워줘서 편하게 터미널에 왔고 9시 45분 차를 탔다.
후텁지근한 날씨다. 긴팔 와이셔츠에 러닝셔츠까지 입고 있으니 더 더웠다. 신촌에 도착하니 아직도 두 시간 가량이나 시간이 남았다. 뭐 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 근처에 보이는 김밥천국에 들어가 돈가스를 먹었다. 서울이 원래 그러는지는 몰라도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는데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뭘 주문하겠어요?”라는 말도 꺼내지도 않더라. 들어가서 한참 있었음에도 아무런 관심조차 없자 상을 치우고 계신 아주머니에게 다짜고짜 “여기, 돈가스 하나만 주세요”라고 해서야 먹을 수 있었다. 다 먹고서는 근처에 있는 서강대에 갔다. 학교 규모는 커 보이지 않던데 높은 건물들이 많이 보이더라. 땅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높은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서 2시 5분까지 있다가 바로 면접장소로 이동했다.
한겨레교육의 첫 인상
빌딩은 좀 허름해보였다. 한겨레 교육은 이 건물의 총 세 층을 쓰고 있더라. 7층 안내데스크에 가서 면접 보러 왔다고 말하니, 여성분으로 편안한 복장을 한 분이 나오신다. 나를 데리고 8층으로 가신다.
8층은 강의실이 있는 곳인데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강의실로 들어가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커피 한 잔을 타서 두리번거리며 분위기 파악을 해봤다. 이곳은 전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같은 느낌이었다. 다양한 강의가 개설되고 사람들이 배우러 오니 말이다. 강의실 대여 목록표엔 ‘공지영’이란 이름까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역시 한겨레 신문과 관련된 곳이다 보니 이런 분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안내해주셨던 분이 와서 이야기를 걸어주신다. 솔직히 면접관이 지금 강의 중이시기에 그 강의가 끝난 후 나를 잠시 보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여러 조건을 제시하고 취직할 건지, 말 건지 물을 것만 같았다. 실제의 면접장소의 그런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도 나지 않았고 다른 면접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쉽게 될 거란 기대는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안에서는 한 명이 면접을 보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 그리고 오늘 총 4명이 면접을 보기로 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2명이 선발된다고 한다. 더욱이 최종면접은 한겨레 신문사 사장님이 직접 하신단다. 이로써 형식적인 면접이 될 거란 기대와 이번 한 번의 경험으로 극적이게 취직이 될 거란 희망은 산산이 무너졌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모든 감정이 장난이거나 가상이 아닌 현실이고 실제다.
그런 말에 덧붙여 그분은 이곳이 좋은 직장이라고 말해줬다. 자유분방한 분위기도 있고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곳에 꼭 취직이 되어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생각했던 2교대 근무나 전화 상담업무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첫 면접을 보다
이미 면접을 보고 있던 사람이 드디어 나왔다. 말쑥한 외모에 유머라곤 전혀 없을 정도로 ‘차도남’에 가까운 이미지였고, 기저엔 자신만만한 느낌이 들었다. 그분에게 이번 주 중으로 합격 여부에 대해 연락이 갈 거라고 알려주더라. 물론 불합격한다 해도 연락은 해줄 거라고 했다.
이제 내 차례다.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겨서 들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면접실은 강의실이었는데 크기가 작더라. 긴 테이블이 있고 거기에 면접관 네 명이 앉아 있다. 그 앞에는 의자 하나가 있는데 그게 내가 앉아야 할 자리였던 거다.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있으니, 여자분이 소개 좀 해달라고 하신다. 그게 첫 질문이었고 계속 질문은 이어졌다. “자기소개서 형식이 왜 이렇게 일반적인 양식과 다르냐?”, “초중등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할 수업을 기획해봐라”, “여행 경력이 있는데 회사에 들어와도 여행을 간다고 그만 두는 것 아니냐?” 등등의 질문들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평소에 생각해본 것들이 있기에 가감 없이 이야기하면 됐다.
하지만 두 가지 질문엔 당황한 나머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여자분이 “자기소개서에 전주대 평생교육원에서 느낀 돈 되는 과목만 중시하는 교육에 대해 갈등을 느끼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곳 또한 그런 곳인데 근무할 수 있겠느냐?”라는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그 질문엔 궤변이든, 장광설이든 펼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질문 하나가 나를 멘붕상태에 빠뜨렸다. 그건 바로 “홈페이지를 보고 왔나요?”라는 거였다.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도 어제 알았고 대충 둘러보기만 했기 때문에 제대로 보진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홈페이지도 보지 않고 면접을 보러 올 수가 있나요?”라고 하시더라. 그 순간 아까까지와의 당당함과는 달리 얼굴이 화끈거려 죽는 줄 알았다. 졸지에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곳에 일하러 온 철부지’가 되었다. 그분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를 보고 “더 이상 질문할 게 없습니다”라고 하기까지 하더라. 바로 이것이야말로 처음 면접을 보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 생각한다.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이것저것 관심 갖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결말이라 할까. 그 외의 질문이야 중언부언 이야기를 하며 넘겼지만, 가장 큰 실수를 하는 바람에 큰 것을 누고 닦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한 마음으로 면접장을 나와야 했다.
정식면접은 처음이다. 그리고 생각한 만큼 그렇게 많이 떨진 않았던 것 같다. 수업을 해본 경험,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을 통해 대인기피증이나 무대공포증이 많이 사그라졌음을 느낀다. 이런 경험을 통해 많은 걸 얻었으니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큰 실수 또한 자양분이니 말이다.
주어진 기회를 낚아챌 수 있을까?
오늘은 2011년 5월 26일이다. 어제 면접에서 합격했단 소리를 들었다. 큰 실수 때문에 조마조마 했는데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져 다행이다. 이젠 만회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일까지 써야 하는 필기시험 문제를 최대한 많이 고민하고 풀어내야 한다. 이걸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이사장 면접을 보고 그 후에야 결과가 나온다.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가 않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운이 좋아 온 것일 뿐이다. 그러니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그래도 지금은 희망을 꿈꿀 수 있고 그 가능성도 확인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무언가 할 게 있어 좋다. 그리고 잘 된다면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면 된다.
고맙고 또 고맙다. 아무쪼록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날개를 활짝 펼치기 위해 맘껏 내달려 볼 것이다. 이젠 꿈을 성취하러 가자.
▲ 오히려 막상 기회가 오니, 순조롭게 풀려가는 느낌이다. 어찌 될까?
11.06.03.(금) 한겨레 교육 첫 면접에 실패하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도록 ‘합격’에 대한 연락조차 없자 애간장이 녹을 수밖에 없었다. 필기는 최종면접을 위한 자료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역량 여부를 파악하여 걸러내기 위한 것이었고 떨어져도 문자가 올 줄 알았는데 완전히 무시당했다. 왜 이렇게 단정 짓게 되었냐고? 시간이 많이 흐른 것 하나만으로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어제 홈페이지에 올라온 초중등 기획자 모집 공고를 보고서 정리한 것이다. 그건 이번에 면접을 본 사람 중엔 그 분야에 맞는 사람이 없었다는 방증이니 말이다. 어쨌든 홈페이지 내용을 통해 나의 낙방이 기정사실이 되자 캄캄한 현실이 느껴졌다. 한 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꿈을 꿨고 서울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산산조각난 것이다. 그곳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내 자신이 한스럽게까지 느껴졌다.
▲ 임용을 그만 둔 후, 처음으로 면접이란 걸 봤다. 그때의 설렘이란.
어떤 낙방이든 아프다
그래도 면접도 보고 필기서험도 본 입장이니 가타부타 이유에 대해 얘기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시간이 흐르니, 너의 낙방을 알아라’라고 하기엔, 교육 특히 사람을 위한 일을 하는 업체의 성격과는 상반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없는 사람, 부적절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보니 기분이 정말로 나빴다. 하긴 떨어짐의 충격까지 그런 배려 없음에 대한 불만으로 증폭된 것일 테지만 말이다. 이 기분을 이겨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건 임용에서 떨어진 것과는 또 다른 충격이자 아픔이라 할 수 있다.
면접은 그 회사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얻은 것은 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면접이란 걸 볼 수 있었고 교육 기획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면접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지라 말을 버벅거리거나 논리 전개에 애를 먹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중요한 자세와 절차를 모르고 있었다. 최소한 들어가고자 하는 회사가 지향하는 바와 어떤 사업을 주로 하는지는 알았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무턱대고 좋다고 하기보다 무엇이 어떻게 끌리는지 말함으로 어필하는 것과 같다. 적어도 이 회사에 무엇이 맘에 들고 무엇이 좋으며 어떤 것을 하고 싶어 들어가고 싶은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건 면접을 보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정작 중요한 건 역량, 즉 그곳에 들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비전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 면접을 보러 갈 땐, 기본 정보는 숙지하고 가야 함에도 첫 면접이라 그랬는지 배짱이 좋아서 그랬는지 그냥 편하게 갔다.
실패가 전해준 깨달음
당연하지만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면접은 그 궁리한 시간이 농축되어 우러나오는 시간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1차 면접 통과는 지지리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즉, 여기까지 고민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행운이었다는 뜻이다.
처음에 면접 제의를 받았을 땐 쉬울 거라고만 생각했고 면접을 본 후엔 현실의 완고한 벽에 좌절했으며 합격소식을 듣고선 ‘그러면 그렇지. 내가 아니면 누가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내 자신의 역량을 믿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금은 다시 올 줄 모르는 기회를 생각하며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할 때다. 다시 하는 기획자 모집에 원서를 내볼 생각이고 허투루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현실이 배반했다고 포기하진 마라. 더 좋은 기회, 여건을 주려고 현실의 배반이란 과정을 선사한 것이니’라는 도보여행 때의 깨달음을 되새겨 본다.
어쨌든 나의 첫 면접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개판이었지만 운이 좋아 필기시험까지 봤고 그러면서 교육 기획, 강좌 개설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런 고민을 본격적으로 한 건 처음이었기에 당연히 어설프고 실제로 필요한 내용보다 선언적인, 피상적인 내용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한겨레 교육에 감사한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여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할 것이다.
11.06.19.(일) 출판편집자에 이끌리다
경수와 운일암반일암에 놀러 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불볕더위를 피하고 있던 그때, 우리가 앉아 있던 정자로 커플 비슷한 두 사람이 걸어왔다.
운일암반일암에서 출판편집자를 만나다
여자는 한국인이었고 남자는 외국인이었다. ‘커플이 해외로 도보여행을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관심을 끄고 있었는데, 경수가 이야기를 걸더라. 그래서 자연스레 그 사정을 듣게 됐다. 둘은 커플은 아니고 어제 전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사이라고 한다. 여성분은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 여행 중이라고 했고, 남성분은 체코인으로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며 한국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됐고 결국 이렇게 한국으로 여행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어차피 전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기에 함께 차를 타고 돌아왔고 베테랑에서 칼국수를 함께 먹으며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책 편집자가 되려면 어떤 자격증이 있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출판 관련 자격증이 필요할 거라고 짐작하며 물었던 것이고, 어떤 자격증을 어떻게 따야 하는지 듣고 싶어서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식 정도만 있으면 되요. 어차피 책을 만드는 거니까 문과계열의 학과를 졸업하면 유리하죠.”라는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편집자에 대한 꿈을 꾸다
정령 그랬던 거였다. 이곳이야말로 들어가서 배워야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번쩍 눈이 떠졌다. 그 말을 듣고 시간이 날 때 그린비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작년 이 맘 때에 편집자 두 명을 이미 뽑았더라. 물론 2년 이상의 경력자를 뽑은 것이기에 나에게 해당 사항은 없었지만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런 공고를 봤다면 당연히 이력서를 내고 봤을 것이다. 자격증도 없는 진정성이나 성실성을 평가해 준다면 언젠가 기회가 될 때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기 때문이다.
어제 만남을 통해 출판사로의 진입이 많이 어렵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태껏 전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구체적으로 고민이 구체화되어 가고 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여담: 요즘 들어 그림팡팡에서 최고 기록은커녕, 랭킹에도 등록될 점수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눈만 빠르게 움직이고 실질적으로 연쇄폭발을 하지 못하기에 점수가 형편없다. 실력의 정체기라고나 할까. 그래도 하고 또 하면 오르긴 한다. 오늘 오랜만에 랭킹에 점수를 올릴 정도로 점수가 잘 나왔다. 안 된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하고 또 해볼 일이다.)
11.07.01.(금) 편집자를 준비하며, 만들고 싶은 책
뜬금없다고나 할까. 늘 읽기만 하던 입장이었기에 어떤 책을 고를지 고민하기만 했지, 내가 어떤 책을 만들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런 식의 질문을 들었을 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생각도, 고민도 해보지 않았는데 적당히 둘러대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는 이유는 내가 지원하려는 출판사에서 제시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내가 가장 고민해야 할 화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원하려는 출판사의 모집기간은 끝났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고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편집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이상, 이런 고민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나의 방향에 대한 것이기에 힘들다고,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생략할 수도 없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딛는 때이니만치 치열하고 심도 높게 고민하고 경험해 보려 하는 것이다.
건빵이 만들고 싶은 책이란?
막상 이런 식으로 쓰고 나니, ‘만들고 싶은 책’이란 게 갑자기 나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책, 그래서 사고 싶은 책, 그리고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야말로 어찌 보면 만들고 싶은 책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나의 의식에 집중하며 이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울림이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기껏 시간 내어 읽었는데 아무 도움도, 깨달음도 없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울림이란 심리적인 갈등상황을 만들어 내 존재를 전복시키는 충격일 수도 있고 새로운 희망을 움트게 하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나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책으로는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와 『바람의 딸~』 등이 있고, 깨달음을 준 책으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개밥바라기별』 등이 있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갈급함 때문인지, 하나하나 배워가는 책으로는 ‘다시 보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기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릿흐릿해지기에 다시 보고 싶은 책도 있고 피상적인 지식으로 읽다가 막상 그와 유사한 상황을 만났을 때 다시 보고 싶은 책도 있게 마련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해줬던 책으로는 『엄마가 들려주는 한국사 이야기』와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가 있고, 상황에 닥쳐 다시 보고 싶은 책으로는 『사랑의 기술』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있다. 실제로 매년 반복해서 읽는 책 중엔 『어린왕자』와 『삶이 철학을 만나다』, 『효경한글역주』가 있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에 또 읽고 또 읽는다. 이런 것으로 봤을 때, ‘다시 보고 싶은 책’이란 독자의 감수성에 따라 무한히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빈틈 가득한 책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길을 알려주는 책을 만들자
이런 것들을 기초로 책을 만들고 싶다. 관심 있는 분야는 ‘교육’, ‘사회과학’, ‘인문학’이다 보니 당연히 이쪽 분야에서 기획할 수 있는 책을 내고 싶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다양한 진로를 제시하여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경력과 이력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든, 한 시리즈로 기획하여 출간하든 했으면 좋겠다. 부제나 시리즈의 제목은 ‘괜찮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봐~’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고전의 한 부분 한 부분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해주고 바쁜 샐러리맨들이 고전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만약 행복이란 게 별스러운 게 아니라면, 아침에 눈을 뜰 때 싫지 않은 것, 하루가 시작됐다는 사실이 싫지 않은 게 아닐까.
11.07.09.(토) 편집자로 살자(To Be as an Editor!)
하루를 살고도 아쉬움이 남아 있지 않다니, 내 정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이야. 『전태일 일기』
삶은 ‘꽤’ 정확하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지만, 보통말도 십 일이면 천리를 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왜 천리를 가려 하느냐다. 목적이 없는 성취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없이 벌고 쓰느라 바쁘다.
“손은 많이 벌어 뭐할 텐가?”, “그 때 가면 편하게 쉴 수 있잖아요.”
“이봐, 난 이미 편하게 쉬고 있는데 뭐 하러 돈을 버나”
중요한 건, 천리를 간 다음에 뭐할지 하는 거다. 간 다음에 지금껏 왔으니 막무가내로
또 가겠다고 한다면, 아예 출발 안 한만 못하다.
삶은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한 만큼 살 수 있을 뿐이다.
난 지금 편집자가 된 그 후의 모습을 고민해야 한다.
삶은 ‘꽤’ 정확하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둔한 말이라도 10일 동안 쉬지 않고 달리면 또한 천리 길을 다다를 수 있다.
장차 무궁한 것을 다하고, 끝이 없는 것을 쫓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 뼈가 부러지고 힘줄이 끊어지도록, 몸이 마칠 때까지 노력을 다하더라도 서로 미치지 못할 것이다.
장차 그치는 목적지가 있다면, 천리 길이 비록 멀다고 할지라도, 혹은 더디고 혹은 빠르며, 혹은 먼저하고 혹은 뒤에 하는 것은 있을지라도, 어찌 서로 목적하는 곳에 이르지 못하겠는가?
駑馬十駕則亦及之矣 將以窮無窮 逐無極與 其折骨絶筋 終身不可以相及也 將有所止之 則千里雖遠 亦或遲或速 或先或後 胡爲乎其不可以相及也 『荀子』「修身篇」 8
11.07.12.(화) 독서의 이유 & 만들고 싶은 책(바다출판사 이력서를 준비하며)
주로 ‘철학’, ‘사회과학’,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
독서의 이유
① 살기 위해서
나를 분석하고 세상을 이해할 틀을 얻고 싶었다. 주어진 현실에 따라 살기엔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던 까닭이다. 객관화될 때, 무언가 생각이 공유될 때 내 마음에도 희망 같은 게 어렸다. 생각을 규정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데엔 주로 이런 책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객관화, 그건 한 걸음 물러서 삶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이었고 삶의 한 복판에 들어가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저력이었다.
② 앎의 욕구
이건 단순한 삶의 의지다. 어린 아이가 세상과 대면하는 순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무엇이든 만져보고 경험해 보려 하듯, 나 또한 단순한 앎의 욕구 때문에 이런 책들을 읽었다. 물론 그 기저엔 뭔가 남 앞에서 그럴 듯한 용어를 써 가며 거들먹거리고 싶은 욕구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위버멘쉬’ 따위의 단어를 섞어 쓰고 ‘도심이니 인심이니’ 따위의 용어를 쓰며 말을 하면 개폼 잡는 것보다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③ 넓게 보기 위해서
①과 상통하는 말이지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간 말이다. ①의 관점은 나 자신에게 쏠려 있는 반면 ③의 관점은 나와 우리로 확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기에 급급할 땐 나만 고민하고 나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생활이란 남과의 어우러짐이고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 외의 생각까지 넓힐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게 골치 아프다고 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멈춘다면, 나치 전범 재판 당시의 아이히만처럼 “주어진 일만을 열심히 했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법, 사회를 보는 시각, 타인과의 어우러짐 등 이 모든 걸 고민하기 위해 책을 읽었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었다.
만들고 싶은 책
① 살기 위한 책
깨달음은 일상에서 온다. 가장 친근해서 생각할 거리조차 없던 것이 낯설게 보일 때, 비로소 깨달음이 온다. 한비야 씨의 책들이나 고미숙 씨의 책들에서 난 그것을 얻었다(관련 글 보기). 여행이 낯설어지는 경험, 공부가 낯설어지는 경험 말이다. 지금껏 해왔던 여행은, 공부는 관성에 의해 ‘마지못해’ 했던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통해 나의 삶의 여정을 어루만지고 공부가 주는 깨달음의 즐거움을 알게 되니, 몹시도 즐거웠다. 그래서 나도 그와 같은 깨달음을 주는 책을 기획하여 만들고 싶다. ‘공부 기획 시리즈’가 그것이다. 넘쳐나는 서울대(명문대) 합격류의 책이 아니라 남다른 길을 갔던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의 공부론을 뽑아내 공부를 통해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살리는 공부가 무엇인지 보는 것이다. 이 책은 학생들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② 앎의 욕구
바다출판사에서 김경일 교수님의 책을 여러 권 선보였다. 한자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책으로 여러 가치가 있다. 이런 장점을 십분 발휘해서, ‘한자학 관련 전문 출판사=바다출판사’하는 도식을 이끌어 내는 것도 좋겠다. 갑골문 연구서, 일본 학계 연구서, 한국 관련 연구서를 출판하여 인문학적 자산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전문 연구자 뿐 아니라, 일반인까지도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③ 넓게 보게 해주는 책
‘사람의 말이 설득력을 각기 위해서는 보통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첫째는 ’logos' - 말하는 내용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둘째는 ‘pathos’ - 말하는 방법이 정열적이고 힘차야 한다.
셋째는 ‘ethos’ - 말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신뢰를 받은 만큼 그럴 듯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수』 pp169
11.07.14.(목) 바다출판사 취업 분투기
내일까지 해야 할 게 있다. 바다출판사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내는 것이다.
이미 2주 전에 공고가 났을 때 서류를 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엔 변화가 없다. 자기소개서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표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랐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 어떤 연락도 오지 않고 있다. 분명히 15일까지가 1차 서류 마감일이지만 좀 더 일찍 연락이 갈 수도 있다고 해서 기대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자소서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다
그 후로 편집자 관련 책을 읽게 되었고 1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그 정보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나의 자기소개서를 봤을 때, 부족한 부분은 ‘잘할 수 있는 분야’, ‘만들 수 있는 책’에 대한 내용이 피상적일 뿐 구체적이진 않다는 점이다. 거기에 덧붙여 출판기획서까지 형식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어쨌든 나의 미비한 점을 알게 되었기에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자고 마음을 먹었다. 물론 위험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제대로 준비해서 도전하려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고 본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부담 때문에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꺾을 필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물이 되었든 불이 되었든 진심어린 마음으로 호소해보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된다면,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다.
잘 놀다보면 무르익을 수 있기를
그럼에도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도 밑바탕을 깐 것도 아니다. 이러다간 추가적으로 쓰는 내용들까지 부실한 자기소개서가 될 위험이 있다. 그런 위험을 제거하려면 내실 있게 준비하여 자소서를 써야 함에도 난 오늘도 내일까진 완성하겠다면서 놀고만 있다. 이럴 때보면 나도 꽤나 무대책이다. 과연 내일 무언가 무르익은 글이 나오긴 할 것인가? 중언부언하다가 막을 내리는 건 아닐까.
내가 믿는 거라면, 급조된 실력이 아닌 그동안 고민하며 쌓아온 것들이 발휘되어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고 여행기도 올리며 놀았다. 노는 것이야말로 창조적 역량이 드러나는 공간이리라. 뭐 이딴 식의 합리화와 함께 말이다. 아무쪼록 다지고 또 다져서 흡족한 자소서를 낼 수 있길 바란다.
11.07.16.(토) 세 번이나 자기소개서를 보내며
처음 ‘바다출판사’에서 모집 공고를 봤던 날(7월 2일 토), 기존에 써 놓은 자기소개서를 조금만 손 보아서 바로 냈다. 그 땐 그 정도 되면 나의 정열이 다 남겨진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떠한 연락도 없더라. 아직도 난 출판사가 원하는 인재상은 아닌가 보다.
어제는 최종 마감일이었다. 그간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연구하고 고민하는 게 싫어 피했는지도 모른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농축시켜 놓으면 어느 순간 자연히 발산되리라는 믿음. 그게 맹신이건 진짜이건 지금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꽤 흡족할 만한 내용이 써졌고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썼다. 두세 번 검토한 끝에 5시 30분쯤 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어떻건 문장에서 이상한 부분은 없을 거라 자신하며 냈던 것이다.
▲ 모집 공고의 내용이 정말 맘에 들었다. 이런 곳이라면 들어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실수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
그런데 이게 웬 걸? 오늘 아침에 와서 다시 읽어 보니, 두세 군데 비문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읽으면서도 내가 다 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어제 30분 정도 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더 정신집중하고 퇴고를 했다면 이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마지막엔 보는 것마저 힘이 들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던 것이다. 집착력, 몰입력, 지구력이 부족했던 내 탓인 걸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다시 문을 두드려 보다
그래서 이미 시간이 경과되었음에도 오늘 다시 수정본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낭패감이 어리는 게 사실이다. 편집자를 꿈꾼다면서 그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점을 남긴 꼴이니 말이다. 그러나 실상 더 큰 문제는 나의 오점 문제가 아니라 출판사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거라는 불안 때문이다. ‘허~ 이런 녀석이 편집을 한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넌 좀 더 내실 있는 놈이 된 후에나 오라고~’ 생각할까 봐서 말이다. 결국 다신 무엇이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게 걱정인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면접만이라도 보는 것이다. 출판사 면접은 어떤지, 다시 서울에 올라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이 안 이루어진다 해도 ‘잘 보았으나, 우리가 원하는 사람은 아니네요’라는 식의 문자라도 왔으면 좋겠다. 그건 서류를 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다출판사 자소서 사태의 교훈
이번 건으로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면, 너무 초딩스러운 생각이랄까. 하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너무 안일하게 준비했다는 것이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구나. ‘日暮途遠’ 아직까지도 자기소개서의 비문을 볼 때 화끈거리고 식은 땀이 흐르던 순간이 생생하다.
근대는 가족 안에 욕망을 가두고 그 안에서 맴돌게 함으로써 존재하고, 그리하여 인간의 삶을 가족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기성질서에 한 없이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근대 자본주의는 가족이란 영토에 개인의 욕망을 묶음으로써 모든 가장들을 자신의 체제 아래 포섭하고 길들인다”는 것이다.
『가족을 그리다』 pp42
11.07.20.(수) 바다출판사 서류 전형 실패
내가 갖춰졌나?
가지 않는 길을 가고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내가 잘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글쓰기, 책읽기는 나의 버팀목이라 생각했다.
버팀목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데도 그게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난 뭐였을까? 정말 내가 잘 한다고 느꼈던 게 맞는 걸까?
거부당하고 무너지는 느낌, 난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막히면 돌아가면 된다고 했지만 그건 엄청난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결단.
살기 위해 돌 테지만 그건 존재가 무너지는 고통
삶이 참 맘 같지 않다.
맘 같지 않다.
만일 당신이 생의 기미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이 기미지, 그게 얼마나 큰 것입니까.
-정현종, 「편지」
11.07.22.(금) 출판사 도전이 모두 실패하다
두 군데에서 떨어졌다. 그간 여러 군데에 자소서를 냈기 때문에, 두 군데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다. 하지만 여긴 속사정이 있으니 말을 듣고 판단하는 게 먼저다.
기대했던 곳, 들어가고 싶었던 곳
여기서 딱 ‘두 군데’라고 밝힌 이유는, 그 두 군데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이다. 거기엔 이런 전제가 되어 있었다. ‘내가 내실 있는 놈이다’라는 것이다. 삶을 허투루 산 것도 아니고 나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갖추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기에 나의 가치(?)를 알아보고 채용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나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거기엔 무언가 아우라 같은 게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무언가 발휘할 수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발휘할 만한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낙방, 처참, 불행 이 모든 게 지금 나의 마음 상태다.
두 군데 낙방 소식
한겨레 교육
처음엔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그러다가 5월에 온 면접요청 전화는 기회였고 행운이었다. ‘드디어 나의 진가를 알아보는 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내부 사정에 의해 느즈막하게 연락이 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좋았다. 불안했던 면접을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어떠한 연락도 없던 행태엔 화가 치솟았다. 그건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화 걸어보니, 참 기분 거시기 하더라. 상황을 보고 판단하라는 것. 그러면서도 무엇이 부족했는지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아직도 적임자를 찾지 못했는지 다시 공고가 난 상황이었는데, 다시 지원한다 해도 똑같을 거란 소리다. 그건 어떤 식으로든 ‘낙인’에 다름 아니었다. 이게 현실로 드러난 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바다출판사
편집자가 되려 맘먹고 처음으로 희망을 가졌던 출판사다. 나의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신입도 괜찮다는 조건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바로 낸 서류는 바로 실격을 당하고 말았다. 나의 진정성만 드러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최종 수정본을 냈다. 진심을 보장할 만한 비전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완성형도 아니고 부족했던 게 사실이지만 역시나 통과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내가 자부하고 있었던 것이 한낱 ‘뜬구름’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무 것도 아니었고 허황됐었나 보다. 글쓰기도, 책읽기도 나의 의식에 머무는 것이었나 보다.
뜻 같지 않다. 또 어디로 흘러가려느냐.
우주의 미래가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붓타
11.07.23.(토) 출판 편집자 공부 자료집을 만들다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라 (도전을 하지 않아) 실패조차 할 수 없는 삶이 두려울 뿐”
바다출판사에 자기소개서를 낼 때 쓴 내용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긍정하는 말이다.
실패를 두려워서 하지 못한다는 말은 핑계다. 실패가 뻔할 지라도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무조건 도전해 보라는 말도 아니고 실패를 염두에 두라는 말도 아니다. 나의 가능성이 이미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면, 미리 한계 짓지 말라는 뜻일 뿐이다. 일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내 의지에 상관없이 내 능력을 벗어나는, 넘어서는 일이 맡겨지기도 하기에 식은 땀을 흘릴 때도 있고, 하다 보니 내가 그 일에 적격이었노라 느낄 때도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관념으로 자신을 옥죄어서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가능성을 열 때 비로소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열릴 뿐이다. 그렇기에 이 말만큼 나의 인생을, 철학을 잘 대변해주는 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실패가 남긴 상흔, 넘어서기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도전을 했고 고배를 마셨다. 실패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기대가 큰 만큼 아픔도 큰 게 사실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실패 자체가 두려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게 당연한 마음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버하진 말자. 내가 들어가고 싶던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고배를 마신 거니, 이젠 아무 가능성도 없노라고 자포자기하지도 말자. 내가 쓴 말대로 ‘도전’ 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된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기에. 도전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저력, 그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니.
편집자 공부 자료집을 만들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책을 제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것도 최근의 일이며 아직도 독자의 개념으로 책을 대할 뿐, 제작자의 개념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한문도 그러지 않을까. 열심히 배우기만 한 사람이 어느 순간 가르치겠다고 하면 가소로울 것이다. 배움과 가르침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있으니 말이다. 마인드의 전환은 신체의 변화이며 관념의 변화이다. 그런 간극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절대 유능한 교사가 될 수 없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간극을 파악하고 주파, 돌파하는 일이다. 책 제작자로서 책을 보고 출판계의 현실, 작동 메커니즘, 편집자의 기능과 자질을 아우를 수 있는 혜안까지.
그런 전체적인 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집을 어제 찾았다. 출판계 전체를 아우르며 편집자로 ‘거듭’나기 위한 기초자료인 셈이다. 그것으로 한문 공부하듯 열심히 공부하고 내 가능성을 활짝 열어가 보련다. 지금 포기하는 건 밥숟갈도 뜨기 전에 못 먹겠다고 하는 격일뿐이다(자료집 보기).
‘편집엔 열정을, 삶엔 희망을’ 이 문구는 사이트 구직 자기소개서에 불연 듯 생각나서 쓴 내용이다. 여기엔 내가 담고자 했던 원초적인 말들이 쓰였을 것이다. 편집 공부를 끝내고 이 문구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된다. 이 문구엔 생각이 아닌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조급함 내지는 구걸의 의미가 더 강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서히 한 걸음씩 간다. 지금 아쉬운 게 있다면 이런 공부 후에 바다출판사에 서류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미련이 그만큼 남는다는 얘기다. 편집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11.07.26.(화) 현직 편집자의 평가를 받다
잘 살아 왔었노라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었노라고, 누구보다 고민하며 살아왔었노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누구보다’의 ‘누구’가 정의되지 않는 한, 그건 자기기만이었을 뿐이었다. 난 오늘 그 뼈저린 현실을 온 몸으로 느꼈다. 아무 것도 없이 기만으로 일관했던 나의 모습을 보고야 만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현직 편집자에게 평가 부탁하다
어제 그린비 출판사 편집자인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바다출판사’에 열과 성의를 다 한 자기소개서가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면서 충격에 빠졌는데 헤매고 있을 수만 없어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궁즉통, 그게 딱 맞는 말이다. 처음엔 그냥 자료와 정보만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기본에 대한 조언 없이 번드르르한 외형 꾸미기만 할 경우 오히려 ‘속 빈 강정’이 될 것이기에 나를 개방하기로 했다. 기본적인 정보 없는 조언은 사상누각처럼 붕 뜬 왜곡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보여주는 건 나에게 큰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만 하나 하나 새롭게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점에 직면할 때, 돌파구도 생긴다고 믿는다.
냉혹한 비평, 그리고 직면
하룻밤 만에 답메일이 왔다. 난 다양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실제로 난 나의 떨어짐이 자료의 부족, 편집자로서의 마인드 부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것 전혀 없이 나의 글에 대한 비평 및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에 대한 내용만 쓰여 있더라.
그 내용을 요약하면 ‘왜 편집자가 되고 싶은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니 더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 ‘책읽기를 더욱 깊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읽고 있으니, 당연히 쇼킹할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나 책읽기,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은 누구보다도 치열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자신 있던 부분이 형편없다고 평가 받았기에 충격적이었다. 난 지금껏 철저히 날 치장하고 기만해 왔던 것뿐이다. 물론 일반인들보다 이런 부분에서 뛰어날진 모르지만, 이런 부분을 업으로 삼고 있는 편집자들에 비하면 형편없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임에도 겁도 없이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울분을 터뜨리고 출판사에 들어가겠다고 이력서를 내고 있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얼마나 내가 웃기게 보였을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현실직시이고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힘인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치장하려 하지도, 대충 넘어가려 하지도, 적당히 자기만족을 하지도 말자. 이젠 전면적으로 나를 바꿀 수 있는 변혁만이 내가 웃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변수이므로.
잠시의 좌절, 긴 신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형편없는 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교의 가르침대로 내 안에 가능성은 충분히 구비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것들이 발산되기 위해서는 나의 앞서는 마음, 조바심, 날 믿지 못하는 마음 등 온갖 망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 의식이 비워질 때에 나의 가능성이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느슨함도 느긋함도 아닌 무언가를 할 땐 그것 자체에 몸을 맡기고 노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아일체, 그건 치밀한 내적 성찰(자신에 대한 믿음) 뒤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몸과 맘을 다하여 치열하고 신나게 달려갈 것이다. 안 된다고 좌절만 하고 있기엔 인생은 너무도 짧고 복합적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명언 한 마디, ‘인생은 참 정확하더군요’라는 말이다.
편집자가 왜 되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Q: 왜 편집자가 되려 하는가?”
A: 솔직히 교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Q : 교사가 안 되더라도 딴 직업도 많은데 굳이 편집자를 택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왜 편집자가 되려 하는가?
A: 책읽기를 좋아하고 그런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Q: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책을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미식가는 최고의 요리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언가 현실 인식이 제대로 안 된,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 왜 편집자가 되려 하는가?
A: 단순히 책읽기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 자료집을 손수 편집해 본 경험도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인 것 같아 선택한 것이다.
Q: 그 이유 때문이라면 꿈을 바꾸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넌 자질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문답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편집자가 되려고 맘먹은 계기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솔직히 운일암반일암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편집자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평소에 ‘출판사에 들어가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쯤이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손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 생각과 생각이 마주쳐 가능성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전혀 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생각은 너무 유치했고 현실은 너무 단촐했다. 그런 인식으로 도전을 했으니 물 먹는 건 당연했다.
그러므로 편집자가 되려 한다면, 왜 되려 하는지, 하필 편집자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 내 자신의 의지가 명확할 때 진심어린 이야기도 흘러나올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럴 때 그린비 편집자가 써준 말대로 ‘나의 진심이 통하는 인연이라면 진짜 인연이 아닐까요’이지 않을까. 그런데 난 흐물흐물 했으니, 글 또한 목적의식 없이 중언부언 했던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바다출판사에서 떨어진 건, 너무도 당연하다.
생명력을 일깨우는 것 두 가지, 교육과 책 제작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지자. 왜 편집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직업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편집자는 던져진 원고를 보기 좋게 꾸며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출간할지 기획하고 내용을 어떻게 꾸미며 보기 좋게 편집하며 어떤 방향의 책이 되게 할 지를 생각한다. 내용을 요소요소에 맞게 꾸미며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그림을 배치하고 자간, 글자체 등 모든 걸 구성한다. 책이 완성된 뒤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보도자료 및 홍보자료까지 만들어야 하니, 편집인은 종합예술인이라 해야 맞다. 내가 이 모든 걸 진두지휘할 역량이 되는지 나조차 궁금하다.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편집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그건 만용이거나 한 번 도전해보자 하는 식의 낙관주의이거나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편집자가 되고 싶은가? 이렇게 궁지에 몰리고 보니 의기소침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꿈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욱 흥미가 일기도 한다. 그건 어찌보면 교사라는 판에 박힌 직업보다, 그래서 남을 늘 억압해야 하고 자신의 생생한 감정을 억압해야 하는 직업보다 더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성, 그리고 관계성, 그리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바로 책이란 매체로 생산되며 세상에 통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생한 삶의 감각을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날 억누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안에 들어 있는 구비된 가능성을 맘껏 펼쳐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 세상에 세상의 이야기들을 펼쳐 보이며 살아 있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내가 먼저 나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그 역량을 맘껏 드러내야 한다. 글의 전개를 만들 뿐만 아니라, 글이 살아 움직여 세상에 녹아들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교사가 되려 했던 다짐이 생각난다. 난 아이들을 억압하고 죽이는 교육이 아닌 아이들의 가능성을 고양시키며 당당히 세상에 나가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바로 그런 면에서 교육과 책제작은 통한다. 생명력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말이다.
시작할 수 있는 힘
이제 시작이다. 시작은 무언가를 새로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외부환경의 변화만으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제까진 놀다가 오늘 공부하기로 했다고 해서 그게 시작이라고 할 순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시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일 뿐이다. 흐름 속에 시작이란 계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하기 위해선 전면적인 신체 내외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비근한 예로, 장사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은 마음과 몸을 전부 바꿔야 한다. 그럴 때에 장사를 통해 무언가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분투’해야만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편집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려 한다면 모든 걸 바꾸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치열해야 하며 절대 양보나 물러섬, 이쯤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작이란 결과는 분투라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시작이 단지 무언가를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맘의 관성을 뛰어넘어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구조로 위에 쓰여 있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을 본다면, 예리한 칼날이 목 앞에 놓인 것처럼 섬뜩할 것이다. 그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며 지금과 다른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하려고 맘먹은 그대여 시작할 수 있도록 분내어 힘껏 달려보자.
대나무는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채 몇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가는 줄기가 높게는 수십 미터까지 올라간다. 마디가 있는 까닭이다. 마디가 없는 삶은 쉽게 부러진다. 아무리 바빠도 삶의 마디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주말도 있고, 여름휴가도 있는 거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삶의 마디를 잘 만들어 ‘가늘고 길게’, 아주 잘 사는 것을 뜻한다. -「한겨레 신문」, 2011.08.09.,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中
11.08.04.(목) 편집자를 준비하다 대안학교와 마주치다
편집자를 꿈꾸다. 대안학교 교사 자리를 보고 지원하기로 하다.
너무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것 아니냐고.
이런 식으로 생각을 모으지 못하고 右往左往하다가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맞다! 버스를 기다릴 거면 버스정류장에 갈 일이지, 혹 기차가 먼저 오지나 않을까
기차역과 버스 정류장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와 같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곳을 택해서 행동을 해야 하는 일에만 적용될 뿐이다.
왜 그런가?
교사나 편집자나 메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끊임없는 학습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건 곧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관점을 지니며
세상에 관심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 분야에만 몰두하면 외곬수가 되기 쉽고 커리큘럼만 이수해서는 실제적으로 모든 게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자를 준비하면서 관점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대안교육을 정리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공식 교육보다 대안 교육을 긍정했다고 한다면, 어떤 부분이 어필이 되었는지,
과연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무엇인지 정확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보면 교육자를 꿈꿨던 내가 한 번쯤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며
좀 더 깊이 보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교육으로 드러나는 이상,
사회 전반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교육자로서의 나를 정리한다는 의미와 모든 경험을 삶에 유용한 책으로 만드는 편집자로서의 나를 준비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걸 잘 정리하여 나의 직업관을 짠다면, 분명히 내실 있게 될 것이다.
비록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번역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조금 우울했고 많이 기뻤다.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시기를 알차게 보내보련다.
거저 주어지지 않기를, 충분히 능력이 되고 할 수 있는 虛가 있을 때 일을 할 수 있기를.
▲ [한겨레 신문], 8월 3일자 광고판에 실린 교사 모집 교사.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게 느껴진다.
교수professeur로서 배움의 장에서 말하는 자는 ‘말한 대로 살아야 하고 (그런 선언이고)’ 그 전에 ‘살아온 대로 말해야 한다. (그런 고백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해방에 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 해방을 구하는 과정에서이며, 누군가를 교육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배움을 통해서이다. -고병권,『추방과 탈주』
11.08.05.(금) 대안교육에 대한 생각 갈무리
이런 소동을 회오리바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내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떠나기 전에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낯선 번호로 연락이 온 것이다. 내용인즉은, 군산중에서 기간제 교사를 모집하는데 지원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기간도 맘에 들고 출퇴근(평화동까지 오는 버스가 있단다)도 자유로울 것 같아 마음이 동했다. 요즘 돈이 궁해 힘들어 하고 있었고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회오리 바람
그런데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외도’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격이다. 대안교육을 꿈꾸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2개월이란 한계, 기존 체제의 순응) 편집자로 전향했다는 것을 우스개 소리로 만들 여지가 있다. 이 일기장의 이름이 ‘싱그런 아침 햇살처럼’인데 싱그러울 수 있으려면 과거의 상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편집자란 상은 바로 기존 공교사란 상을 버림으로 얻은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회귀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기’이지 않을까.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 도전을 하느라 두려울 수도 있고 대안교육을 꿈꾸는 것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주어진다는 보장도, 그 일을 하게 된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잠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사, 그것도 쉽게 주어지는 자리로 돌아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갈등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번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 줄 알만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실 교육체제를 비판하며, 다른 길로 간다고 했다면 그 의지는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두려울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면서 나가라.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그 흐름을 끊기엔 나의 전반기의 고군분투가 아깝지 않은가. 부디 청년의 도전정신으로 존재를 걸고 도박(?)하길 빈다(안 가기로 맘 정했다. 그걸 알려주려 다시 전화해보니 글쎄 국어쌤이란다. 이래저래 결정 정말 잘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피상적인 기대
대안 교육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기존 교육 체계가 승자독식을 지향하여 대부분의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으며 임용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예비교사들이 교육에 대한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되는 길이 어려워지니, ‘글만 잘 써진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던 어느 작가처럼 1점이라도 더 맞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어쩔 수없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자물쇠반에도 들어간다. 자율적이지도 자신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교사가 되니, 교육 현장이 어떠리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삶과 앎이 괴리된 지식 덩어리를 주입하려 하고 어떤 것이 교육인지도 모른 채 순응해온 그대로 강요하고 억압하려 할 것이다. 자신이 공부기계였던 만큼 그걸 강요하게 된다. 초임교사들도 이럴진대 어떻게 교육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안학교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이다. 교육관이 다르고, 인간관이 다르며, 전인적인 관계를 맺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전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좀 더 현실화하여 하나 하나 짚어봐야 할 것이다. ‘과연 나의 인간관, 지식관, 교육관은 어떤지? 그래서 어떤 면에서 대안교육을 긍정한 것이며 막상 현실의 대안교육은 어떤지?’를 말이다.
목표 중심주의로 다가가면 교육은 죽는다. 하지만 그게 교육이란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건빵의 지식관, 앎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변화를 수반한다
앎이 앎으로 한계 지어져선 안 된다. 앎을 끌어안을수록 자신만이 우월한 사람인양 기고만장 해지며 남을 업신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음을 깨닫고 겸손해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얘기가 『논어』에 나오는데,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子曰:“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里仁」 17)”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당연히 이 말에서 방점이 찍히는 구절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일 테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는 척하고 싶고,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에 모르는 것도 안다고 말할 때도 있으며, 때론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니 말이다. 자신이 아는 것이라는 건 천지자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인데도 그런 식으로 착각한다는 건 자기기만이며 자연비하일 뿐이다.
더욱이 앎이 아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앎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건 당연히 존재의 변화를 말한다. 왜 변하는 걸까? 그건 곧 생각의 변화 때문이다. 곧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 앎이 나의 존재를 흔드는 것을 느끼는 것이며 새로운 시선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 어떠한 울림도 주지 않고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건 앎이 아니라 나와는 동떨어진 무엇이며 애써 배워야 할 이유도 없다.
건빵의 인간관, 타인을 수단화하지 않은 본질 대 본질의 관계
인간관이라고 표현했지만, 자연관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 인간끼리 관계를 맺으며 살려고 하는 까닭은 혼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며 그건 곧 자연과의 끊임없는 관계를 통해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 살 때에만 우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은 늘 외부에 열린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사람이 사람을 적대시하여 ‘만인의 투쟁’이라고 하며 자연을 적대시하여 ‘자연 정복’이라고 한다면, 제 무덤을 제가 파는 꼴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바로 현재의 교육은 ‘투쟁’을 가르치고 ‘독식’만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니 어이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비인간적인 교육이 또 있을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자신의 욕망을 간파하고 본질 대 본질로 만나야 하며 어떻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건빵의 교육관, 교사는 자격증 따위로 정해지지 않는다
교육이란 교원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학생을 가르치는 행위를 말한다. 이게 누구나 생각하는 교육이며 아무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교원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교육을 할 수 있으며, 왜 학생은 무조건 배우기만 해야 한단 말인가. 교사란 어떤 과목을 이수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느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다면 교사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학생이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부분에서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누구나 학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분야가 달라지면 교사가 학생이 될 수도, 학생이 교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가르치는 과정 중에 교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학생이 지적해줄 수 있기 때문에 학생-교사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변화가능한 존재만이 있는 것이다.
교육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지식을 통해 생활모습이 드러나야 하며 그런 전체적인 모습을 보며 학생은 배우게 된다. 그래서 지적 촉발과 존재의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교육은 아무 것도 아니다.
변산공동체학교를 통해 대안교육 의미 다지기
『변산공동체학교』라는 책(후기 보기)을 읽으며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학교의 목표는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이 아니다. ‘자신의 앞가림을 하게 하’며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가된 대안교육기관이 어느 정도 기존 학교라는 기반 하에 여러 가치를 흉내내려 하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실망했었는데 이 학교는 커리큘럼 자체가 다른 것을 보며 신기하기까지 했다. 워낙 정형화된 틀이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대안교육을 생각한다고 했던 나까지도 위태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래도 일터와 삶터, 배움터의 조화를 꿈꾸며 자급자족 하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틀을 만들면 당연히 억압하게 되고 그렇다고 자율화 하자니, 그럴 수도 없다. 자유와 구속, 일과 배움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러면서 체계를 갖춰가고 있으니, 내가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체계를 잡고 학생들에게도 여러 기회를 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도시 생활 체험, 시험 체험 등의 방법을 통해 일방적인 선입관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11.08.13.(토) 다섯 번째 자소서를 쓰며
맘과 같지 않기에 도전해볼 의사가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련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거기에만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킬 수 있길 바라는 것뿐이다.
결국 무턱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전에 내 의사를, 그리고 무엇이 정말 하고 싶은지 분명히 하라는 것인데 뭐 생각처럼 쉽게 정해지는 건 아니니 답답할 뿐이다.
어젠 하루종일 자소서를 썼다. 벌써 다섯 번째 자조서를 쓰는 건데. 이번엔 새 틀을 다시 짠다는 심정으로 썼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인지, 내 글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잘 써지지 않더라.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6시에 제출하기 전까지 수정을 거듭하긴 했지만 최근에 써본 어떤 글보다 어려웠고 흐름도 거칠기만 했다. 뭔가 기존에 해왔던 생각들을 한 편의 완정한 글로 풀어낸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글쓰기에 대한 힘겨움. 글을 주구장창 10년여를 써왔는데, 그래서 나름 글이라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던 거다. 지금 느끼는 건 나의 한계다. 그리고 다시 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뿐이다. 솔직히 내가 잘 하는 건 무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갈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건지, 원래부터 겸손한 사람이었는지 헛갈리기까지 하다.
첫 번째 도전은 ‘한겨레 교육’이었다. 자소서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나만의 방식대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담았다. 왠지 잘 먹힐 것 같았다. 그런데 첫 도전에선 실패했고 몇 개월 후에야 연락이 왔다. 면접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자소서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없더라. 그 순간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두 번째, 세 번째 도전은 ‘달 출판사’와 ‘바다 출판사’였다. 자소서를 전면 개정했다. ‘너무 길다’는 핀잔을 한겨레 교육 면접장에서 들었던 터라 최대한 짧으면서 핵심적인 내용만 담기도록 자소서를 구성했다. 출판에 관해 이제 고민하기 시작한 것치고는 괜찮은 내용이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의미가 있고 무언가 전해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네 번째는 고전번역원이었다. 나의 전공과 관련 있는 곳이기에 부담 없이 글을 썼다. 솔직히 되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심정이 대강 쓰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장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쓴 글이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는 자소서가 되었다고 본다. 한문에 대한 열정이랄지 하는 것들도 잘 표현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하게 평가한 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번에 쓴 자소서는 다시 군살을 빼지 않은 처음의 자소서로 돌아갔다. 더욱이 시간에 쫓겨 쓴 것이기에 깊이나 내용도 형펀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 아직 한참 부족하구나. 어디에다 내놓기 부끄럽구나.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 있는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잡초가 아니다. 망초도 씀바귀도 쇠비듬도 마디풀도 다 나물거리고 약초다. 마찬가지로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잡초 같은 인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흙을 밟으며 산다』, 46p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모든 중생이 부처로 거듭나는 세상, 한 마디로 살맛나는 좋은 세상이 다른 세상이 아니다.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상동, 145p
11.08.18.(목) 웃자라지 않기
봄철에 비가 자주 내려 보리나 밀이 많이 웃자랐습니다. 보기에는 키도 크고 열매도 많이 달려서 이대로만 간다면 풍년을 기약할 수 있을 듯하지만 아시다시피 웃자란 보리나 밀은 대가 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쓰러지고, 어떤 때는 모개 무게에 못 이겨 제풀에 모로 눕기도 합니다.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pp 28
겉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실상 내실은 없다. 그래서 현혹되기 쉽고 그게 간혹 남에게 그렇게 인식되기 하여 자신도 ‘잘 자랐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조그만 시련이 닥쳐도 쓰러지고 자신이 맡은 직책을 못 이겨 제풀에 꺼꾸러지기도 하니, 이럴 경우엔 누굴 탓해야 할까. 그렇게 착각하도록 만든 환경을 탓해야 하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자신을 탓해야 하나?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자가 이야기한 虛의 문제는 단순한 사변적인 언어가 아닌 깊이가 있는 철학적 언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허를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날카로운 작두날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의 긴장과 직시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 그리고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이 계속될 때에만 虛를 실천할 수 있다. 그런 곳이야말로 생의 에너지를 좀 먹지 않고 창조적 에너지로 자유분방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웃자람은 그와 같은 것을 거부한 자신에 폭력이며 삶에 대한 저주다.
난 웃자랐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기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에게도 정직하지 못했으며 생에 대해서도 늘 불안해하는 채로 여기까지 이끌려 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로 왔다고 내가 ‘잘 자란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우습기까지 하다. 취업하겠다고 나대기 전에 정신부터 차려 ‘웃자란 놈’임을 인정할 일이다.
강 건너
비닐 하우스에 켜진 불
멀리서 보면
참 예쁘다.
하지만
저 불은
들깻잎을 못 자게 깨우는 것.
나는 이제 잘라 하는데
저거들은 얼마나 힘들겠노.
인간도 저렇게 당해 봐야
식물의 아픔을 알 거다.
-밀양 단산초 백아르미, 『자연의 밥상에 둘러 앉다』, pp 188
웃자람은 생의 에너지를 갉아 먹고 겉만 그럴 듯하게 자람이다. 아픔을 먹고 성장한 것이니 거기엔 슬픔의 정조, 고통은 나의 힘이란 관념만이 어린다. 생의 기쁨은 없어 초췌한 몰골, 냉정함으로 탈색된 도시화 언어, 음산한 기운을 발산하는 몸짓이 웃자람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몸이 컸다고 어른이라고 하지 말며 잘난 척 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대가 실하지 않’은 가소로움일 뿐이니 말이다.
이건 바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지금, 난 바람이 조금만 불려고만 해도 고개라도 떨굴 듯이 심하게 흔들리며 날 거부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삶이 끝나는 듯이 좌절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얼마나 ‘대가 실하지 않’은 웃자란 존재인 줄 알겠다.
아픔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계기다. 아픔을 통해 자랄 수 있다고 한다면, 아픔을 부정적 힘의 추진제로 사용하여 생의 에너지를 갉아 먹으라는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해 가라는 뜻에서 일 것이다. 지금은 나를 더욱 치밀하게 들여다보며 대가 실하도록 만드는 시기임이 분명하다. ‘못 자게 비닐하우스에 불을 켜는 게’ 아니라 ‘잘 자랄 수 있도록 보리밟기(봄철 보리싹이 나와 들뜬 밭을 밟아 다지는 일)하는 것’이다. 얼마나 제대로 이 시기를 보내느냐에 따라 웃자라기도, 잘 자라기도 할 테니.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도망치려 하지 말고 충실히 보내자. 도망치려 하지 말고 충실히 보내자.
▲ 삶은 그래서 다채롭다. 잘 자란 게 잘 자란 게 아니고, 밟으면 오히려 잘 자랄 수 있다. 그게 인생의 묘다.
11.08.18.(목) 착각하는 인간
▲ EBS에서 꽤 유익한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한다. 주류 심리학의 관점이란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인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큰 차와 작은 차,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작은 차는 조금만 교차로에서 신호가 켜졌음에도 지체할라치면 뒷 차들이 금세 빵빵 거리지만, 큰 차인 경우 최대한 기다리며 심지어 차선을 바꿔서 가기도 한다.
내 심금을 울린 장면은 그것 외에 따로 있었다. 서양인과 동남아인이 길을 물어본다. 서양인에겐 대부분의 사람이 호기심을 가지고 정성스레 알려주는 반면 동남아인에겐 냉대하거나 피하기에 바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선입견이 있다 보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앞에서 흑인이 걸어오고 있으면 괜히 두려워하며 종종걸음을 했으니 말이다. ‘흑인=범죄자’라는 공식이 알게 모르게 내 의식에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와 같은 반응들도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당연함 와중에도 균열이 있고 전복이 있었다.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던 사람들, 한 아주머니는 자신이 영어를 못하니까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알려주라고 부탁하시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내레이터는 긍정적인 착각을 지닌 사람을 통해 세상은 좀 더 밝아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렇다.
▲ 큰 차, 명품 핸드팩, 간판이 그냥 외형물이 아닌,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당연한 것을 깨면 진실이 보일까?
당연하게 받아들인 상황을 의심하고 새로운 행동을 할 수 있을 때,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생각을 한다는 것, 고민을 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에 맞춰 산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질만능, 돈의 양으로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세상, 흑인보다는 백인이, 육체노동자보단 정신노동자가 더 우월하다고 느껴지는 세상 등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셀 수없이 많다. 이걸 파괴한다는 건, 내 존재를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알게 모르게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런 관념들을 깨부수기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떠한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허무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관념을 대체할만한 것이 필요하다. 과연 어떤 관념으로 대체할 것인가, 그 관념을 어떻게 확고하게 유지시켜 갈 것인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럴 때 마인드도 바뀌며 사회와 세상을 보는 시각 또한 변하게 된다.
▲ 서양인의 백인우월주의에는 분개하지만, 실상 우리도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에게 그와 같이 행동한다. 관점 바꾸긴 행동 바꾸기까지 이어져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그와 관련된 의미 있는 실험이 펼쳐졌다. 부부를 초청해 자신이 생각하는 배우자의 사진을 고르게 한다. 사진을 총 5장으로 가운데 사진이 원본이고 오른쪽 두 장은 점차 젊어지고 멋져지게 편집했으며, 왼쪽 두 장은 점차 늙고 너부데데하게 편집했다. 이 실험을 통해 사람이 보는 외모라는 게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왜곡된 상(오히려 가운데 사진이 왜곡된 상일까?), 즉 괴리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기 사진을 보고 못 나왔다고 생각하며 사진 찍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그런 경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크기 때문에 현실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오른쪽 사진을 고르게 되고, 반대의 경우는 왼쪽 사진을 고르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관념이 그 사람을 훨씬 멋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장면을 보면 무릎을 치고야 말았다. 시각이야말로 오감 중에 가장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람들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에 대한 관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세상이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보인다고 한다면, 과연 ‘진리’, ‘누구나 보아도 올바른 것’에 대해 상정하는 것은 어쩌면 현실을 기만한 행동이지 않을까.
▲ 이 실험이 상징하는 것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을 넘어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것일 거다.
11.08.24.(수) 나는 놈이 아닌, 난 놈 그대로
아이들의 점심밥이
복지의 화두로 던져진 날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시혜의 대상으로 물러난 날.
삶의 무한한 질문에
가슴 쓰려 한다.
복지를 줄이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한대도, 그게 모두의 고혈을 짜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얄팍한 속임수.
내가 도움을 받는 건
가진 자들이 선심을 썼기 때문이라는 얄팍한 거짓.
그러하기에 가진 자들의 대열에 합류하려
부단히 나는 놈으로 변해야 하는 세상.
우리의 동일시 대상이 하층민, 노동자가
아니라
기득권, 전문직종인임을 알겠다.
자신을 거부한들, 돌아오는 건 회한이요 불만이다.
짧은 세상을 살며 어찌 그렇게 비극적으로 살 것인가.
웃어라
세상이 너의 웃음에 한껏 흐물흐물 해지도록.
나는 놈이 아니라 난 놈 그대로
인정받고 행복할 수 있도록.
세상은 나누고 보듬어 안을 때
무지개 피어오르리니.
소유를 주장하지 말되 자신을 인정하고
우리의 시선은 밑을 향하되 이성은 높이 두어라.
11.08.24.(수) 즐길 때, 기회는 성취된다
그림팡팡을 한다.
아침에도 했지만
영 성적이 맘에 안 든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하는 것 뿐
지금 또 해봤다.
어렵쇼.
초반부터 술술 풀리는 느낌이
아주 유쾌, 상쾌, 통쾌하다.
급기야 9판에선 막1힘 없이 풀어내어
최고 점수를 얻고야 말았다.
너무 가슴이 뛰어 끝을 보지 못할 정도로.
오전에 억지로 풀어내던 순간과
오후에 신명스레 풀어내던 순간.
내 실력이 갑자기 급상승한 건 아니니.
때론 흐름이 있고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 때 내 능력 이상의 무언가
나오는 것뿐이다.
잘 되든, 못 되든, 유쾌하든, 답답하든
그걸 즐길 일이지.
내 능력이라고 거만 떨거나
안 되나 보다고 좌절할 일은
아니다.
파고들 때, 삶은 기회를 주며
즐길 때, 기회는 성취된다.
11.08.25.(목) 잘 해왔음에도 아이를 믿지 못하고 세상의 방법을 따르다
어느 부모인들 그러지 않겠냐만은, 자식 잘 되라고 학원에 보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여태껏 자기 스스로 잘 해온 아이인데도 그걸 믿지 못하고 학원에 보낸다. 거기엔 남들에게 뒤처지면 어쩌나,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놔두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화가 난다. 남들 다 한다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따라 한 것이기 때문이고, 그런 마음이 오히려 아이들에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뒤처진다. 여기엔 아이가 어떤 아이이고 무엇을 잘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아이의 특기나, 적성, 가능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것, 학교 성적을 높일 수 있는 것에 아이가 얼마나 충실하게 임하느냐 하는 게 중요할 뿐이다. 모든 의사 결정에 아이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게 돈 있고 빽이 튼튼한 사람들의 정규코스, 일명 따 놓은 당상임을 생각하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든다. 그건 정해진 목적지까지 가는데 누군 비행기를 타고 가고 누군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도무지 상대조차 되지 않음에도 뒤처져서 낙오자로 만들 수 없다는 핑계로 몰아넣는다. 승자는 몇 명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들러리를 서게 되고 학습무기력증에 빠져 회한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겠다. 이건 맞는 얘기다. 부모가 만능이 아닌 이상, 자식에게 좋은 공부 여건을 제공해서 학벌 사회에 좋은 학벌을 얻도록 하고 싶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이미 기존관념에 대한 맹신과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참석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어 있다. 자식의 의사나 능력은 뒷전이고 무작정 돌리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심한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의 마인드에 있다. 대부분 생계를 위해 학원을 한다. 그러니 한 사람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가시적인 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학원에 다녔더니 성적이 올라갔다거나 경시대회에 입상했다거나 하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때, 학원은 더욱 번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각종 편법이 자행된다. 반복학습, 단순암기, 그리고 단순패턴 학습 등 단기간에 학습시킬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성적은 당연히 오를 것이다. 하지만 속빈 강정 꼴로 제대로 된 실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에 맛들이면 학생들도 자신이 알아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고 정식으로 차근차근 공부하는 것보다 어떤 비법이나 편법을 익히는데 더욱 치중하게 된다. 결국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공부하는 방법만을 원하게 된다는 말이다.
11.08.30.(화) 단재학교 교사 모집글을 보다
글은 관념의 드러남이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심상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잘 이해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고 그 글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글을 쓴다면, 그런 글은 앵무새의 말처럼 공허하게 들리기만 할 것이다. 울림이 없고 의미도 없는 소음, 그게 담긴 글을 무엇 하러 보겠는가.
글을 지금껏 써왔지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 건 아니었다. 내 마음을 글로 객관화하여 드러내려 쓴 것뿐이다. 글은 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선후의 문제가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에 대한 생각이 글로 표현되어야 함에도 글로 표현된 게 내 생각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건 결론이 가능하려면 생각 그대로 가감 없이 글로 써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실상 글로 써지는 과정 속엔 취사선택(소재, 단어)이 있어 가감이 있게 마련이다. 생각이 또 다른 생각으로 걸러졌는데 어찌 객관적인 나의 속마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단 말일까. 그건 내가 결론을 조작해 놓고 그게 바로 나라고 주입하는 『메멘토』란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오류 탓인지 내 글이 어떤 울림도 없었으며 나 자신에게도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걸 바로 잡아야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정하고 나를 맞춰가려고 하기보다 나의 이야기, 나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어 내 모습에 공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를 드러냈더니 ‘이런 사람이라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면, 그런 인연이야말로 진짜 인연이지 않을까.
11.09.05.(월) 단재학교 면접 전날에
토요일에 단재학교에 이력서를 냈고 어제 면접에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당연히 오늘은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날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내일은 10시까지 가서 19명이 세미나식 면접을 볼 거라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기대된다. 늘 그러던 대로 설렘도 긴장도 즐기며 어떤 사람들이 오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즐겨야지.
어쨌든 두 번째 기회가 왔고 오늘은 밀도 높은 하루를 보냈다. 면접 하루 전엔 면접 준비로 여념이 없다. 무슨 문제가 던져질지 그걸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르기에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준비할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바라왔던 것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것, 이 모든 게 나에겐 축복이었고 기쁨이었다. 오늘 같이 좋은 날~
11.09.06.(화) 단재학교 면접기
10시에 면접이란다. 그 전날에 가서 준비해도 되지만 당일에 가기로 했다. 오히려 그게 컨디션도, 준비도 잘 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단 세미나라던데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 줄 몰라 전날 늦게까지 홈페이지를 뒤져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건 불안한 마음을 무마하려는 것뿐이었다. 10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無備有患
모든 게 너무 미비했다. 막상 챙겨놓고 잤어야 할 것들을 챙기지 않았다. 구두를 닦아놓는 것, 하얀 러닝 준비, 기타 준비물 등 챙겨놓고 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서울행 버스 시간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핏 보고 6시라고 생각했고 그 시간에만 맞춰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니 아침부터 마음은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러닝은 없지, 구두는 안 닦여 있지 여유 있다고 생각하고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꼬여가고 있었다. 어머님이 태워다 주셔서 가까스로 도착했지 그러지 않았으면 아예 늦었을 것이다.
온갖 감정이 파도를 타다
근데 버스가 5시 45분 차인 거 있지. 다음 차는 무려 6시 30분 차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부리나케 달렸다. 가까스로 강남터미널행 버스에 탈 수 있었는데 핸드폰 배터리도 간당간당 하여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하는 수없이 핸드폰을 꺼놓아야만 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긴장, 짜증에 집중해야 했다. 그건 어찌 보면 꼬인 현실에 대한 불만이며 어제 잘 챙기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짜증이긴 했지만 다시 찾아온 취업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조급함, 불안 온갖 감정이 드러난 것이리라. 어떤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가는, 그럼에도 난 낙관한 건지, 무관한 건지도 모르게 끌려 다니는 걸 보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핸드폰이 나갔기에 최단 경로를 확인할 순 없었다. 남부터미널로 내려가 가는 수밖에는. 9시가 가까이 된 시간인데도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3번이나 환승해야 했다. 좀 느긋하게 걸었지만 마음은 늦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세미나식 면접과 미진함
도착한 시각은 9시 45분이었다. 이미 4~5명 정도 오셨더라. 어색함과 함께 침묵이 감돌았다. 곧 교장쌤이 들어오셨고 체계가 잡히지 않은 가운데 이야기가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게 어떻게 평가되었는지는 모른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다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오신 분들의 나이대는 정말 다양했다. 오죽하면 나도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이 중에서 5명이 뽑힐 거란다. 4:1의 경쟁률이라 해볼만 했다. 한데 어떤 기준에 의해 뽑히는지 걱정이 되긴 했다.
점심으론 중화요리를 먹었다. 거기서도 한참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나는 듣는 입장이었다. 간혹 내가 생각하던 교육관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말하진 않았다. 참 색다른 방식의 면접이었던 셈인데 중언부언, 난장판을 방불케 했다. 그걸 마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오더라.
두 가지 앎, 지식과 지혜
‘알고 있는 게 많으면 이야기할 때 자신감이 넘친다.’
당연하게 들릴 것 같은 이 마에 회의감이 들었다. 왜냐 하면 어제의 난 어버버거리고만 있을 뿐 제대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많이 알고 있다고 자임하는 꼴이지만,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건 위에서 이야기한 말의 속성일 뿐이다. 아는 게 많으면 이야기할 거리도 많고 당연히 자신감도 넘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하는 것’일 뿐이다.
앎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1+1=2’란 공식이나 ‘민주주의 선거의 4요소는 비밀, 보통, 직접, 평등’이라 하는 상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하얀 거짓말은 용서되는 거짓말인가?’, ‘안중근은 의사인가, 테러리스트인가?’하는 것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며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전자는 모든 사람의 합의에 따른 것이기에 많이 지니면 지닐수록 자신감이 오르며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지식이기에 허영심만 불러일으킬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알면 알수록 그것을 통해 남위에 군림하려고 하며 자기를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후자는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는 것, 그래서 타인의 말에 더 귀 기울어야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언가 대답을 하면서도 두루뭉술하다고 잘 모르겠다고 느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난 점점 더 비워져 가고 있는 것이다.
11.09.11.(일) 단재학교에 합격하다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솔직히 면접을 보고나선 느긋하게 기다렸지만, 금요일이 지나고 나선 포기 상태였다. 정말 넷상에서 메일이 공중분해 되었든, 아예 보내지 않았든 좋은 증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이상 미련이 남게 마련이었다. 오늘 아침에 전을 부치고 11시가 넘어서 학교에 왔고 습관적으로 메일을 열어보니 글쎄 메일함에 편지가 한 통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나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나도 누군가에게 어필하는 존재였을 줄이야.
교사의 꿈을 접는 순간, 교사의 꿈이 이루어지다
솔직히 어안이 벙벙하다. 이게 과연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교사에 대한 꿈을 꾸며 작년까지 지냈다. 교육에 대해 고민했고 좋은 선생님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교육관도 나름 체계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늘 좌절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국 교직의 꿈을 포기했던 것이다.
지금껏 꿈꿔왔던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 순간, 앞이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꿈이란 게 기실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힘이 사라졌으니 무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한겨레 교육’의 기획자를 뽑는다기에 이력서를 내봤고 출판사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어찌되었든 출판사 편집자가 되어야겠다고 맘을 먹고나선 기본부터 새롭게 세우려 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기본부터 착실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다 성미산 학교에서 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간 준비된(?) 역량을 결집하여 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면접 요청마저 없이 끝났다. 그간 교육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단 말인가. 그게 8월 16일의 일이다. 편집자가 아닌 10년 가까이 고민해온 교사로서 거부당한 것이니, 존재 자체가 위태위태하더라. 죽지 못해 산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다 8월 30일 신문 광고란에서 단재학교에 대한 내용을 본 것이다. 그걸 봤을 땐 자세한 내용(과목, 바라는 교사상)이 없었기에 마음이 울렁이진 않았다. 더욱 이력서만 내도 된다고 하여 더 감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드러내고 싶었다. 이력서만 보더라도 ‘이 사람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력서에 블로그의 내용을 대폭 실은 것이다. 운 좋게 바로 다음날 면접신청이 왔고 결국 이렇게 졸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나도 내가 왜 뽑혔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어떤 분들이 뽑혔는지도 모른다. 단지 교직을 포기한 순간 교직의 기회가 날 찾아왔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이래서 삶은 아리송하다는 걸까. 어쨌든 오늘은 최고의 날이니, 기쁨을 만끽하며 보내야 겠다.
11.09.13.(화) 합격송가(合格頌歌)
벼락처럼 찾아온다.
합격도 사랑도.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도.
벼락이 각성시키고 고양시키는 계기인지
삶을 한바탕 뒤흔들 계기인지
자신이 준비해온 삶의 고민의
총량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랑도 떠났고 환희도 아득한 옛 기억처럼 사라졌다.
벼락처럼 와서 벼락처럼 사라진
순간들이여. 내가 얼마만큼 어리석고 얼마만큼 거만했는 줄 알았노라.
그 시간들을 보내고
다시 벼락을 맞게 되었다.
벼락에 감전되지 말되, 내가 갖춰진 놈이여서 그랬노라 자임하지 않으리라.
벼락의 짜릿함을 느끼고
나의 길을 뚜벅뚜벅 가리라.
11.09.17.(토) 교사의 꿈을 접는 순간 교사가 되다
아이러니라는 거, 그게 삶일까? 포기한 순간 기다리던 버스가 오고, 놓아버린 순간 떠난 애인에게서 연락이 온다. 아이러니야말로 삶이 내 맘 같지 않다는 정의인지도 모른다.
작년까지 교육자가 되겠다고 공부에 매진했었다. 과연 난 어떤 교사가 되길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단순히 이야기하면 아이들 편에 설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성적 따위로 아이들을 줄 세우지 않고 규정된 틀로 아이들을 획일화 시키지 않고 아이들 안에 있는 가치에 집중하며 옹호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교사라면 어떻게 수업하는 게 맞을까?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고 나의 진의가 전달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지금껏 그런 환경에서만 자라왔으니, 그리고 그런 수업만 받아왔으니 다른 상상은 해볼 수도 없었다. 약간 다르게 한다는 게 놀이를 응용하거나 서당식 성독문화를 도입한다거나 하는 정도였다. 꿈은 있되 현실적인 대응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어찌되었건 제도권 교육제도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꿈꿨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작은 실천으로 교육계에 작은 돌파구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자가 되진 못했다. 꿈은 있었으나 그 실력을 뒷받침 할만한 무언가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낙방을 했고 그동안 관성처럼 잡고 있던 것을 그만두리라 맘먹었다. 애초에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게 될지도 몰랐고 이게 내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몰랐다. 그 늪에 빠져 계속 허우적거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처음으로 모색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고3 때도 달리 내 길을 고민하진 않았는데 10년여가 흐른 지금 본격적으로 나다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었다. 육체노동도 하리라 맘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내달려야 하니 오히려 암담해지더라. 허허벌판에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란 게 그거였다. 그러다 운 좋게 출판 편집자를 알게 되었고 그 덕에 편집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좀 더 내실있게 준비하여 올해 말까진 도전해 보겠다고 계획했으나 여차 싶으면 변산공동체로 들어가려는 마음도 있었다. 왠지 그게 내 마지막 피난처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꿈을 바꾼 그 때, 대안학교에의 도전이 이어졌다. 성미산 학교에의 도전은 의미가 있었다. 대안교육에 대해 생각해보는, 정리해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낙방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었다. 그 후 단재학교에서 채용되는 행운을 누렸다. 교육자의 꿈을 접자 교육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지금은 작년의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수업, 내가 이끌어 간다는 것, 어떤 틀 자체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게 어떻게 교육으로 드러날지는 나도 모르지만 올해의 방황을 통해 좀 더 유연해진 게 사실이다. 유연해진, 그럼에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길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시 고민하고 이젠 행동해야 한다. 꿈은 열망하는 것이지 집착해선 안 된다.
11.09.23.(금) 초임교사의 다짐
지금은 무언가를 준비하며 놀고 있지만 내년 이맘때엔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지금은 대기하고 있는 기간이라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지만 내년엔 현실에 치일 테니 말이다.
토요일까지 일해야 하는 곳이니, 어떻게 일상이 재편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현실 이상으로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효율과 이해타산만 따질 것인가? 아니면 진정 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것인가? 이해타산을 따질 때는 자신이 원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 될 때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욕망도 없고 성취감, 성장도 없으니 어떻게든 정시에 출근하여 정시에 퇴근하고 싶을 밖에. 일반적인 셀러리맨들의 행태가 그것만이 올바른 사회 생활인양 고집할 순 없다. 언젠가 ‘한겨레 신문’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한다 해도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냐고 했었다. 이런 말을 얼핏 들으면 2MB의 ‘얼리버드’처럼 일만 중시하는 일중독으로 오해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두 경우의 차이는 분명하다. 전자의 경우 일 자체가 목적인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일을 통해 얻어질 무언가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이 즐거우니 그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내 모습이 좋으니 일을 하는 것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마땅히 시간을 달리 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일에 메여 있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그 차이는 미래의 자아상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어떤 분의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편집자로서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바다출판사’에서는 김인호 사장님이 퇴근하셔도 사원들은 자발적으로 남아 더 일을 할 때도 많다고 했고 ‘그린비’의 임유진 씨는 직장을 놀이터로, 공부방으로, 학습 공간으로 활용하며 쉬는 날에도 그 자리에 있곤 한단다. 그건 누군가 억지로 시키거나 일이 일 자체로만 느껴져선 불가능한 행동이다. 일이 앎이나 삶과 통하거나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그렇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대안학교 교사.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회다. 이 일 자체가 나에겐 축복이니만큼 충분히 시간에 쫓기지 않게 어우러지며 열정을 쏟고 싶다. 무휴인들 어떠하며 개인의 시간이 없다 해도 어떠랴. 어느 시간이든 깊숙이 파고들어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면 그 뿐이다. 우선은 3년간 단재학교에서 다양한 실험과 경험을 쌓아볼 테다. 내 인생의 중요한 기본을 쌓는 시간으로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열정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두고 보라. 이런 다짐이 언제까지 유용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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