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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1.12.02.(목) - 2022학년도 한문임용 후기 본문

건빵/일상의 삶

21.12.02.(목) - 2022학년도 한문임용 후기

건방진방랑자 2021. 12. 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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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세 한탄 같은 진심

 

 

단재학교를 그만 두고 나와 다시 임용시험을 보겠다고 이 길로 들어섰을 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은 4년 정도를 생각했다. 예전에 5까지 도전했다 그만 둔 이력이 있고 7년 간이나 놓아뒀던 한문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만큼 쉽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4년 정도는 해봐야 어떤 결과든 나올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생각이 하나의 지침이라도 되었는지 정말 어느덧 4년 차 임용 준비생으로 살게 되었고 어느덧 그 기간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또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시 도전은 할 테지만,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렇게 늘 생각과 어긋나 힘겹기만 한 현실이 한껏 주눅 들게 한다.

 

 

 전주에 내려와 3년 동안 신나게 공부했던 진리관.

 

 

 

볼멘소리와 진심

 

간혹 이렇게 자꾸 엇나가는 현실이 못마땅해서 볼멘소리를 해대곤 했다. 한문공부가 좋아 맘껏 한문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리고 맘껏 한문공부를 해왔는데 어째서 결과는 나오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제 어느 정도 문장을 보는 실력도 생겼고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도 알게 됐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부족하기에 자꾸 떨어지느냐고 악다구니를 써댔다. 잘 알고 있다. 그런 볼맨소리야 말로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실제적인 결과로 만들지 못하면 아니 한만도 못한 신세 한탄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그럼에도 진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젠 정답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에 하게 되는 임용시험 공부가 아닌 하나하나 알아가고 정리해나가고 싶은 한문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그래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단재학교에서 대표교사로 인연을 맺은 진규썜을 제주도로 찾아가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문에 대한 진심이 어느덧 계속된 실패로 인해 더욱 고조되었고 언젠가부턴 생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탓인지 올해는 임용시험 공부는 철저히 미루어뒀고 그간 정리하고 싶은 책들을 찾아 다양하게 읽고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 기간만큼은 아침에 일어날 때도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한다는 사실에 들떴고 행복했었다. 조금씩 알아가고 조금씩 정리해나가는 기쁨에 정말로 손은 절로 휘저어지고 발은 절로 박자를 타는[手之舞之足之蹈之]’ 즐거움을 맛보았으니 말이다. 한문공부를 재밌게 하고 싶다는 진심은 이처럼 좌절될수록, 한계에 부딪힐수록 더욱 굳건해져 갔다.

 

 

  제주에 왔으니 진규샘이 사준 회. 사람이 많아 북적북적댄다. 

 

 

 

도망가고 싶다

 

올 한 해만큼은 좌충우돌하며 하고 싶던 공부도 실컷 하면서 한문 공부에 대한 실력을 조금씩 키워갔다. 2018년부터 충실히 쌓아온 한문 공부의 자료들이 4년이란 시간을 거치면서 거대한 주축돌이 되었다. 주축돌이 튼튼하게 서 있을 때 지진에도 버틸 수 있는 건물이 세워지듯, 다양하게 쌓아온 한문공부 자료들이 내 한문실력의 주축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임용고시일이 다가올수록 두렵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상하다. 2018년에 임용고시를 봤을 때는 오랜만에 보는 첫 시험이라 그런지, 9개월 정도만 공부했기 때문에 떨어져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도대체 지금의 임용시험은 어떻게 나오는 거야?’라는 기대감에 한 장 한 장 시험지를 넘기는 게 기쁘기만 했었고 2019년에 임용고시를 봤을 때지금쯤이면 포텐이 터지지 않을까?’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가득했었던 데에 반해 올해는 유독 시험일이 다가오는 게 공포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막상 시험지를 받았는데(이상하게도 객관식으로 출제되어 있었다) 다 풀었다는 생각으로 넋 놓고 있다가 5분 남겨두고 나서야 확인해보니 10문제 정도를 마킹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부랴부랴 다시 보다가 마킹을 미처 하지 못하고 제출하면서 결과를 기다릴 것도 없이 떨어졌고 1년 농사 망쳤구나라는 절망감을 느낀 꿈까지도 꿀 정도였다. 이런 경험은 실제로 2009년에 본 임용시험에서 느꼈던 것인데, 얼마나 불안했으면 꿈을 통해 다시 한 번 재연되었을까?

그럼에도 내뺄 수 없기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기에, 그리고 다시 임용시험을 보겠다고 이 길로 들어섰을 때부터 이미 예상된 일이기에 뚜벅뚜벅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4년 동안 축적해온 것들이 있을 테고 그게 배신을 하진 않겠지라는 생각 하나로 보란 듯이 나갔다.

 

 

  시험이 다가올 수록 도망가고 싶은 이 마음. 어쩌리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순간

 

이번엔 대전에 응시를 했다. 이렇게 보면 전북에서 3, 경기도에서 2, 충남에서 2, 광주에서 1번 보았으니 대전에선 처음으로 임용시험을 보는 셈이다. 한 번도 대전에 쓸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막상 원서를 쓰고 나선 그곳에서 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늘 떨어진 역사만 있는 사람이 합격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어쩔 텐가 시험을 보기 전에 무슨 상상을 하든 자유인 것을.

올해는 특별히 시험 보러 떠난다는 생각보단 여행하듯 가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래야만 시험에 대한 불안과 부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가 아닌 기차표를 예매한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전주의 서쪽 끝이니만큼 동쪽 끝에 있는 전주역까진 무척이나 멀기에 여행 가듯 일찍 출발하자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기 전에 깨끗이 정리하고 마치 못 올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집을 나섰다. 전주역으로 향하는 그 버스에서 보이던 늦가을의 정취가 알알이 가슴에 박혔다.

 

 

늦가을. 예년엔 임용을 볼 때 한파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올핸 포근하기만 하다. 

 

 

잦은 실패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전주역의 첫 마중길을 걷고 있노라니, 몽글몽글 희망이 샘솟기도 했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그토록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순간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 순간이야말로 다신 올 수 없는 삶에 있어서 가장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지 않은가.

314분에 출발한 무궁화 기차는 덜컹덜컹 거리는 기차길을 따라 천천히 달려 갔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언제나 설레게 한다. 대전까지는 무려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지만 오히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와 어느새 드리운 석양을 보면서 마음을 다시 한 번 다독였다.

대전에 내려선 시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고 바로 숙소에 짐을 풀었다. 대전 시청 근처는 엄청난 번화가더라. 마치 전주 서부신시가지처럼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고 다양한 맛집들이 가득했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한참 돌아다녔는데 음식점은 많은 데도 대부분 술집이기에 혼밥을 하기에 적당한 곳은 눈에 띄지 않더라. 그래서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충남에 체인점을 둔, 그래서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육개장집에 들어가 한 끼를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참 돌아다니다가 겨우 먹게 된 육개장은 어느 음식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고 푸짐했다.

 

 

  기차를 타고 가니 마치 여행 가는 것 같은 느낌이 가득 든다. 

 

 

 

2. 운수 좋은 날과 교육학

 

 

이번엔 교육학 공부가 징허게 하기 싫었다. 그래서 9월부터는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가 미루고 2주 정도를 남겨 두고 조금 하는 정도로 만족했던 것이다. 그러니 밥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서도 교육학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가 쌓이더라. 그래서 조금 더 보다가 1130분쯤에 잠자리에 누웠다. 임용시험 전날에 잘 때마다 잠을 푹 자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깨기를 반복하게 되면 분명히 내일 시험에 영향을 미칠 테니 말이다. 그래도 최대한 늦게 자는 만큼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자리에 누웠다.

 

 

이번에 묵게 된 모텔. 환해서 공부하기 좋다. 

 

 

 

운수 좋은 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땐 어둠이 한가득 내린 새벽이었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눈이 떠져 시계를 보면 430분을 가리키곤 했었고 예전에 임용시험을 보던 날에도 430분엔 일어났었다. 그래서 ‘430분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데, 세상에나 딱 530분이지 않은가? 더욱이 어제 맞춰놨다고 생각한 알람은 울리지도 않았다. 핸드폰으로 알람을 처음으로 설정하다 보니 실수를 한 것이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딱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530분에 눈이 떠진 것이니 그 순간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래서 새벽부터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일어나 아침을 먹고 준비하고 나가면 딱 좋을 시간에 일어나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사장까지는 걸어서 25분 정도 걸린다고 나오기에 모텔에선 7시쯤에 나가도 충분하다. 그니까 출발하기까진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는 셈이고 이 정도면 씻고 준비하고 아침까지 여유롭게 먹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둘째는 무려 6시간이나 잠을 잤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전날에 깊은 잠을 자는 건 쉽지가 않다. 뒤척이기 일쑤고 그에 따라 흐리멍덩한 상태로 시험을 보기 일쑤다. 그런데 이번엔 중간에 깨거나 뒤척이지도 않고 6시간을 푹 잔 셈이니 컨디션이 여느 때보다도 좋았다. 아마도 어제 전주역 첫 마중길을 걸어서 왔고 대전에 와서도 저녁을 먹기 전에 식당을 찾겠다며 한 시간 정도 걸었기에 나름 피곤한 나머지 푹 잘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새벽부터 컨디션도 최고이고 여유롭게 아침맞이를 하게 된 셈이니 떨리긴 해도 기분은 좋았던 것이다.

 

 

시험 때마다 먹던 아침. 라면과 김밥 한 줄. 그리고 과일. 

 

 

 

대전의 특이점

 

655분에 모텔에서 나와 고사장까지 걸어갔다. 춥지 않은 날이고 구름도 끼지 않은 맑은 날이다 보니 새벽의 어둠이 금세 가시더라. 상쾌하게 새벽 조깅을 하듯 학교까지 걸어갔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715분이었는데 작년이나 재작년은 730분 입실임에도 먼저 온 사람들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던 데 반해 여긴 그러지 않더라. 그래서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모님과 수험생이 꽤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입실시간에 맞춰 체크를 하고 들어가야 한단다.

 

 

작년엔 개인집 담까지 넘어가며 학교에 갔었는데 오늘은 대로만 따라가면 된다. 

 

 

730분이 되자마자 덧신을 신고 들어왔다. 한 번도 1층에서 시험을 본 적은 없었는데 이곳엔 고사장이 1층이 배치되었다. 한문과는 일반 응시자 41명에, 장애 응시자 2명이 있어 두 개의 반에 나누어져 시험을 봐야 했다. 첫 번째 반에 배정되었기에 교실을 잘 찾아 들어갔다. 지금껏 임용시험을 보면서 책상에 수험번호와 이름이 기입된 종이가 붙어 있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책상엔 아무 것도 붙어 있지 않더라. 입실시간에 맞춰 들여보내는 거나, 책상에 아무 것도 붙어 있지 않은 거나 대전은 타시도의 고사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쨌든 일찍 왔으니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며 1년 만에 다시 보게 되는 시험을 준비했다.

이때가 기분이 가장 알쏭달쏭하다. 1년이란 시간 만에 다시 이곳에 왔다는 회한 같은 게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곳에서 맘껏 실력을 발휘해야만 한다는 압박도 느껴지기도 한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그 시간을 버티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곳에 오려고 1년이란 시간을 보낸 것이니 말이다.

 

 

이제 들어갑니다.   

 

 

 

교육학, 쉽지 않네

 

드디어 1교시 교육학이 시작되었다. 1시간 동안 문제지에서 제시한 내용을 구상하여 논술 형태로 써내야 한다. ‘나는 글을 잘 쓴다창조적 창작 덕에 장문의 글을 쓰는 건 전혀 힘들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학 지식을 얼마나 문제에 맞게 풀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올해 문제는 교육학 책에 버젓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이론들을 많이 물었다. 이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 게 임고생의 첫째 자세다. 모르는 게 나올 수도 있고 어려운 게 나올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내가 어렵다면 모두가 어렵고, 내가 쉽다면 모두가 쉽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주눅들 것도, 흔들릴 이유도 없다. 아는 것들을 최대한 조합해가며 답안지를 채워가면 그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열심히 개요도를 작성했고 그에 따라 답안지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특성답게 순식간에 답안지를 채워갈 수 있었지만, 올해는 특히나 글씨에 더 신경을 썼다. 글씨를 못 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사람이 채점하는 만큼 남이 알아볼 수 있게는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올해 그토록 공부를 게을리했던 교육학은 끝났다. 잘 봤건, 아니건 교육학 시험이 끝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절로 가벼워지더라. 이제 이 가벼운 마음으로 전공에 모든 걸 쏟아부으면 된다.

 

 

  이 자리에서 1년 간의 공부를 펼쳐내야 한다. 어느 정도 될까? 

 

 

 

3. 전공시험에 빠지다

 

 

전공 A 시험지를 받고 나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문임용 시험지는 거의 다 봤지만 이렇게 황당한 문제는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전은 2개의 학교에서 임용고사를 본다. 1층에 배치된 고사장이 특이하다. 

 

 

 

전공 A, 황당함에 절로 웃음이

 

세상에나 마상에나 본문의 문제가 이렇게 짧은 적이 있던가? 그건 바로 5언절구가 시험 문제로 출제된 것이다. 무려 스무 글자로만 이루어진 시가 출제된 것이다. 엄청 긴 본문의 지문들만 보다가 20 글자의 시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쉽게 풀릴 거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기대와는 달리 막상 해석이 되지 않아 답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는 안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작년 시험에 이어 올해도 교과교육학에서 많이 출제됐다. 교과교육학은 당연히 달달 외워야 풀 수 있다. 더욱이 작년부턴 내용체계 뿐만 아니라 평가와 같은 지엽적인 곳에서도 시험에 나오게 됐는데 그건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지엽적이며 별로 관심을 두고 보지 않는 내용을 시험문제로 출제해도 되냐 싶지만, 그래도 어쩔 텐가 시험문제야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내는 것이고,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맞춰야만 하는 것을. 예년 기준으로 앞 부분의 문제들은 대부분 내용체계를 외운 사람들은 당연히 맞출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엽적인 부분에서 출제가 됨에 따라 1 문제부터 막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나만이 느끼는 당황스러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보자는 생각으로 그 뒷 문제부터 풀어가기 시작했고 1시간 30분이란 시간에 맞춰 하나하나 놓치는 것이 없는지 확인해가며 최선을 다해서 풀었다. 시험의 난이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생각나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 건 아쉽더라.

 

 

1층에 있던 한문과 고사장. 

 

 

 

전공 B, 논술이 사라진 자리

 

재작년 임용고사부터 4년 간 출제된 전공 논술 문제는 사라졌다. 전공 B 시험을 볼 때 논술형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시간에 맞춰서 써야 하고 다른 문제도 풀어야 하니 시간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논술 문제가 빠진 자리엔 A형과 같은 교과교육학이 좀 더 심도 깊게 출제되며 해석하여 쓰는 문제도 2문제 정도가 더 출제된다. 하긴 논술이 10점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작년의 경우엔 서사시도 나오지 않았고 고문진보도 나오지 않는 특이한 해였다. 서사 한시야 최근 몇 년동안 단골 메뉴처럼 나왔던 터라 나오지 않는 게 의아한 정도였지만 고문진보는 매년 임고에 빠진 적이 없었던 터라 나오지 않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만큼 작년에 출제진으로 들어간 교수님들은 모두 한국문학 전공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올해는 서사시는 나오지 않은 데 반해 고문진보맨 마지막 단순 해석 문제로 출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역시 한문 교과로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들어가는 출제진의 성향에 따라 그간에 나오지 않던 문제도 나올 수 있고, 그걸 틀릴 경우엔 합격의 영예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순간이 가장 좋다. 끝나서 가는 길.

 

 

 

악몽과 현실 사이

 

첫 번째 글에서 말했다시피 올해는 임용시험을 어찌나 피하고 싶던지 절로 악몽을 꿀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시험지를 펴보고 풀고 있노라니 아예 손도 못 댈 정도의 문제는 없더라. 단지 출제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여 문제를 풀었느냐,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답을 제대로 썼느냐가 관건으로 남는다. 그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해나갈 뿐이다.

어쨌든 1년을 준비해왔던 임용고사는 끝났다. 도망 가지 않고 직면한 채 그 순간들을 넘어갔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쳐준다. 시험을 하루 앞둔 날에 그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며 글을 썼었는데 이렇게 시간은 훌쩍 지나가며 시험이 끝나긴 했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시험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며, 이 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보내리라. 이 날이 그토록 그립고도 그리웠다.

 

 

 전주에 와선 최초로 임용시험 날에 진규를 만나 한잔했다. 이런 시간은 늘 좋아^^

 

 

 

 

인용

지도 / 공고문 / 21년 글감과 쉼&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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