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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17 - MBTI의 한계를 보다 본문

건빵/일상의 삶

10.11.17 - MBTI의 한계를 보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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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17()

MBTI의 한계를 보다

 

 

어제 아침(101116), 오후에 스터디 회식이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나왔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올가을 들어 가장 춥다던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는데 저 멀리 국민이가 보이더라. 같은 방향이었기에 픽업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때 나눴다. 당연히 미래에 관한,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상담실에 근무하는 사람답게 직업적성 검사, 성격 검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다른 데서 하면 돈이 들어가는 것을 공짜로 해준다는 것이니 혹 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오늘은 여유 시간이 있기에 하겠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검사, 대부분을 하겠다고 했는데, 나 또한 나 자신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유형검사에 대해

 

재작년부터 스터디에서 문제를 낼 때면 1번 문항엔 심리테스트를 넣곤 했다. 잠시 긴장을 풀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혈액형은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듯, 그 문항도 그와 같은 역할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검사문항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MBTI는 문항개수가 적었기 때문인지,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기 때문인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검사지에서 발생했다. 어떤 질문에 대해 다섯 가지 척도(‘아주 맞다, 맞다, 보통, 그렇지 않다, 아주 그렇지 않다에 체크해야 함)에 체크해야 한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정직하게 반응하게 될지 의아했다. 그래서 대부분 긍정인 경우엔 아주 맞다, 부정에 가까운 경우엔 아주 그렇지 않다에 체크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문예창작이란 질문이 나오면 아주 맞다에 체크할 수 있을 것이지만, ‘기계조작이란 질문엔 어찌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기계에 대해 관심이 있고 조작법을 금방 익히니 아주 맞다에 체크해야 하는지, 그렇다고 기계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다른 답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경우 보통에 체크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식의 평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사람의 생각을 객관화시켜서 수치화하려 했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유형별로 나눠 해석하려 했으니 부분적인 이야기는 될 수 있지만, 그게 내 자신의 이야기일 순 없었다. 그런 체계화에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다른 검사지는 체크하지 않고 MBTI 검사지만 제출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식의 체크리스트는 나에게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서 나온 결과는 더더욱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새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런 양식, 태도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MBTI의 흥미로운 결과

 

입버릇처럼 07년을 얘기하곤 한다. 그때의 고민들과 다양한 독서가 나에겐 하나의 변곡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파로 2009년엔 도보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생각들에 하나씩 귀를 열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관계에 대해, 상황에 대해 열려가는 만큼 세상을 보는 안목이나 세상에 대한 관념들이 점차 변해갔다. 난 그 이전의 나와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어쩌면 MBTI 검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느끼는 변화가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날까?’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끼는 변화들이 정말 변화가 맞는지 그게 궁금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왼쪽은 하나도 없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는 결과(INFP)가 나온 것이다. 직관을 중시하고 감정을 중시하며 정해진 것보다 정해지지 않은 걸 좋아한다는 결과치다. 지금의 내 생각과 사고가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아 꽤 만족하고 있었다.

 

이런 결과를 알려주면서 국민이는 나와는 정반대의 타입이네. 이와 같은 결과에 미세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흐름은 맞다고 보면 돼라고 결론지었다. 이미 굳어진 것이기에 바뀌기 힘들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선천적이기에 바뀔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말은 불변성을 전제로 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기본 성향은 같지만 수치상의 변화만 있겠거니 생각하고서, 2006년에 했던 검사지를 찾아봤다. 막상 2006년의 결과표와 2010년의 결과표를 대조해 보고나선,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체질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그려왔듯이, 꿈꿔왔듯이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미 수치상으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내향이란 것만 변하지 않았을 뿐(ISTJ), 모든 것이 변했다고 볼 수 있다. 내향의 수치도 4717로 변했으니, 실질적으론 모두 변했다고도 할 수 있다. 예전의 난, 변화를 싫어했고 짜여진 틀을 좋아했으며 의심을 품기보다 있는 현실을 그대로 따르기를 좋아했다. 맹목적일지라도, 어떠한 이유로 나에게 주어진 것인지 상관하지 않은 채 따라가려 하기만 했던 것이다. 꽉 막혀 있었지만 그랬기에 성실했고 원하지 않은 일들을 맡을 수도 있었다.

지금의 난, 변화를 달게 여기며 정해지고 짜인 틀에 반감을 느끼며 내 길을 내가 만들려 한다. 여러 상황들에 개방적일 수 있는 건 그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내 맘과 같지 않은 삶일지라도 긍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대해 ?’라는 근원적인 질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내가 처한 환경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현실지향적인 발상이 아니라 그 현실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하는 미래지향적인 상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타인에 대한 관심에도 드러난다. 예전의 난,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어떻게든 나를 일반적인 틀에 맞추려 노력했었다. 그러니 언제나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건 곧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도 좋아하겠지라는 생각도, 진정 그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생겨난 것이기 보다, 내 안의 생각들을 끼워 맞춘 누더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꾸 관계에 있어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실제적으로 자신감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 늦으면 늦는 대로, 어리숙하면 어리숙한 대로 인정되는 것이다. 내가 정해놓은 가치 기준에 따라 정형화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잣대로 보려 한다. 그래서 인지 지금은 사람 관계가 편해졌다. 애초에 어떤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각자의 특색이 그대로 드러나며 나도 그 특색에 맞춰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융통성 있는 대처는 내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변신은 무죄

 

변했다. 성격이 변했고 삶에 대한 태도가 변했으며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이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상관없이 현실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이 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해 왔었다. 그건 바로 나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다. 늘 변하려 하기보다 그 자리에 머물며 한결 같이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교사가 되어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나 자신은 누구의 영향으로든 변화되지 않는다고 자신했으면서, 타인은 나의 영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시간이 흐르며, 삶의 태도가 바뀌며 변했다. 아니, 생각 자체가 바뀌어 성격이 변한 것인지, 성격이 바뀌면서 생각이 변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변함 없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느낀 사실은 변화란 일방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건 쌍방향 소통의 결과이고 무엇보다도 변하려 하는 자신의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 나와의 관계를 통해 어떤 사람이 정말 그렇게 변했다고 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힘이며 가능성이기 떄문에 나의 영향력을 운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부분에선 발판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할이 가능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의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에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가치를 주장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계기가 되겠다고 부르짖기에 앞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내가 어떻게 변해야겠다고 말하는 자체가 부질없어 졌다. 내 스스로 그 모습을 그릴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고정된 상이 아닌, ‘-되기를 통해 다양한 변이를 추구하고 상황 속에 깊이 파고드는 것뿐이다. 그러다 다시 변하게 되었다면 그 변화에 빠져 살아보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끊임없는 과정이며 미래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변화 자체를 꿈꾸기보다 나의 고정된 상을 벗고 미래를 향해 맘껏 날갯짓 해볼 생각이다.

 

 

 

매우분명

분명

보통

약간

약간

보통

분명

매우분명

 

외향(E)

 

 

 

 

 

 

 

 

 

 

 

 

 

 

내향(I)

감각(S)

 

 

 

 

 

 

 

 

 

 

 

 

 

 

직관(N)

사고(T)

 

 

 

 

 

 

 

 

 

 

 

 

 

 

감정(F)

판단(J)

 

 

 

 

 

 

 

 

 

 

 

 

 

 

인식(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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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선호지표

I

N

F

P

선호 분명도 지수

47

 

 

 

<2006년 결과>

 

 

 

매우분명

분명

보통

약간

약간

보통

분명

매우분명

 

외향(E)

 

 

 

 

 

 

 

 

 

 

 

 

 

 

내향(I)

감각(S)

 

 

 

 

 

 

 

 

 

 

 

 

 

 

직관(N)

사고(T)

 

 

 

 

 

 

 

 

 

 

 

 

 

 

감정(F)

판단(J)

 

 

 

 

 

 

 

 

 

 

 

 

 

 

인식(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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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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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선호지표

I

S

T

J

선호 분명도 지수

17

 

 

 

<2010년 결과>

 

 

 

 

 

인용

18년 이전 글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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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sakang.tistory.com/9 [🦘 40대 캥거루족: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