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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44. 사람이 자랄 때 필요한 것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44. 사람이 자랄 때 필요한 것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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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사람이 자랄 때 필요한 것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우리가 자라면서 나는 비록 이렇게 살지만, 자식에게만은 그런 환경을 물러주지 말아야지라는 바람을 갖게 마련이다. 그게 권위주의적인 가정환경일 수도 있고, 원하는 걸 맘껏 못하는 가난한 환경일 수도 있으며, 부부싸움이 연일 일어나는 전쟁터 같은 환경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현실적인 문제라고 느껴지면 그걸 가슴 속에 담아뒀다가 그와 같은 환경을 자식에겐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이가 자랄 때 필요한 건, 넉넉함이 아닌 적당함이다

 

우리집도 예전엔 정말 가난해서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는 없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욕망할 수도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엔 내가 원하는 게 뭐지?’라며 헛갈릴 정도였다. 그런 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는 단순히 나의 모든 문제는 가난함에서 비롯되었으니, 커서 자식을 낳으면 그런 불행의 고리를 끊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꼭 나의 모든 문제들이 가난한 환경 하나로 생겨난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단재학교에 와서 깨졌다. 단재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넉넉한 환경에서 원하는 것을 쉽게 받으며 원하는 것을 맘껏 하며 자라왔다. 그러니 내 생각대로라면, 단재아이들은 인성도 바르고 생각도 올곧으며 감정적인 상처도 없어야 한다. 나의 모든 문제는 가난때문이라 치부했으니, 가난이 말끔히 제거된 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내 생각은 너무나 인간을 단순하게 생각한 거였다. 하나의 요인은 수많은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인데, 그걸 너무 일반화하여 전체인양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부족함이 문제였다면, 아이들에겐 반대로 풍족함이 문제라는 걸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원하기 전에 모든 것을 채워주고 아이가 문제라고 느끼기 전에 부모가 먼저 해결해 준다. 그러니 아이는 자기 스스로 뭘 원하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자라며 그에 따라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내 생각도 일정 부분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넉넉하여 맘껏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충분한 고민과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길 정도의 적당한 결핍이 있는 환경이라고 말이다. 그러려면 부모가 너무 앞장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사주며 누릴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넉넉함과 부족함은 같은 것이지만, 세상은 부족함만을 탓하지 넉넉함에 대해선 탓하지 않는다. 

 

 

 

현세의 리더십, 책임감을 다하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현세가 이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지금껏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할머니와 엄마가 해주며 자라왔다. 그러니 기본적인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황을 파악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거의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학교와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곳에서 문제로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머리는 비상한데, 무언가를 할 땐 거의 하지 못하니 자꾸 부딪히게 되니 말이다. 그래도 단재학교에서 2을 생활하며 이젠 어느 정도 눈치라는 것도 생겼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법도 알게 되었기에 리더역할도 잘 수행할 거라 기대했다.

형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니 주눅 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물론 초반에 길을 잘못 들었을 땐 난감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곧 안정을 찾았다. 더욱이 사마귀를 살리기 위해 목을 잡고 옮겨준 행동이나, 재욱이 자전거의 바퀴가 펑크 났을 때 사람들에게 가서 본드를 얻어온 행동은 리더로서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현세는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했다. 현세의 이런 모습 처음이야~ 

 

 

 

현세의 리더십, 진지할 때조차 장난스럽게

 

아이들은 현세에 대해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부정적인 평가는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길도 나름 잘 찾아갔고, 본드도 구하려 노력했으니 부정적으로 평가할 게 없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현세도 자기 스스로 “(리더 역할을 한 것에 대해) 딱히 아쉬운 점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현세는 늘 개그캐릭터를 유지하고 있다. 늘 음악을 흥얼거린다거나, 진지한 상황에서 장난을 치며 그 상황을 와해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런 모습은 진지해야만 했던 어제에도 그대로 보였다. 아마도 여태껏 진지하게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뿐더러, 스스로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러는 것 같았다. 이제 곧 있으면 17살이 되는 만큼, 진지할 땐 진지하게, 장난칠 땐 장난스럽게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오늘부터는 리더를 모두 다 한 번씩 해봤기 때문에 정식적인 리더는 없이 자전거 여행을 해야 한다. 오전에는 신륵사에 가서 미션을 진행할 것이고, 그 후엔 계속 달려 펜션에 도착하여 파티를 거하게 하면 된다. 내일이면 자전거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오늘은 마치 덤으로 주어진 날처럼 느껴진다.

 

 

분명히 말하면 리더역할을 잘 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없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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