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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42.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속뜻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42.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속뜻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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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속뜻

 

 

 

충주 → 여주 / 64.69km

 

 

민석이가 옆에서 바람을 넣어주며 달리니 그래도 꽤 오래 버틸 줄 알았다. 여러 군데 펑크가 나긴 했지만, 패치를 붙이긴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 않아 멈추더라. 그러자 민석이가 바로 펌프를 꺼내 바람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는데 갈수록 바람 빠지는 시간이 단축되고 있었다. 처음엔 100m 정도 달렸는데, 80m, 50m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바람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 되더라.

 

 

민석이가 바람을 넣어주며 가지만, 결국 들어가지 않더라. 정말 난감하다.

 

 

 

마지막 방법까지 해보았으나 실패!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월요일 저녁에 갈았던 튜브가 생각나더라. 아무래도 지금 튜브는 여기저기 펑크가 났고 패치로 때운 자국도 많아서 누더기가 된 상태였기에, 월요일에 갈았던 튜브가 더 잘 때워질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튜브를 갈고 조금 기다리니 라이딩하는 사람이 지나가더라. 그 분에게 말하여 펑크패치를 빌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쓰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쓰던 본드는 솔이 달려 있어서 골고루 바르기에 편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 분들이 가지고 다니는 본드는 튜브형으로 쫙 짜서 쓰는 형식이었으니 말이다. 그걸 빌려서 붙였는데 본드가 골고루 발라지지 않았는지 패치를 붙인 자리에서 그대로 바람이 세더라.

이미 우리에게 빌려준 분은 떠나버렸기에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치려 아등바등 대지만 그럴수록 더욱 약을 올리듯 바람이 세고 있으니 기운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바람이 빠진 상태로 달리기로 했다. 더 이상 방법을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지훈이가 펑크 난 상태로 달리니 그 옆에서 민석이가 느려도 함께 달려준다. 

 

 

 

극한의 상황에선 행동도 부자연스러워지고 생각도 좁아진다

 

월요일 저녁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펑크가 난 상황은 위기 상황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지만, 도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위기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펑크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생각 자체가 좁아졌다. 그것 하나에만 몰입하니 다양한 방법(라이딩 하는 사람에게 구해본다, 재욱이 타이어를 갈아본다)을 생각하지 못했고, 반창고로 때우는 방법만 떠올렸으니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위기의 상황엔 생각만 협소해지는 게 아니라, 행동 자체도 경직된다. 평소 같으면 천천히 고치려 할 테지만, 그땐 마음이 급하다보니 서두르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펑크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펑크는 때웠지만 다시 펑크가 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말은 마음이 다급해질 때 그걸 얼마나 제어하여 다급해지려는 마음을 단속할 수 있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이 말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건 곧 문제 자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해결책이란 문제를 넘어서서 생각할 때 찾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 서술을 다르게 하면 처방도 달라지는 것처럼 문제를 벗어난 시야를 확보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에 몰입하면 그것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러면 해결책조차 단순하고 즉각적인 것만 떠오를 뿐이다.

오늘 이와 같은 경험을 해보니, 바쁠수록 돌아갈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 겨우 알겠더라. 그건 어찌 보면 아직까지 상황에 내몰렸을 때 그걸 극복할 수 없다고 느끼는 내 스스로의 불안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던 것이다.

 

 

왼쪽이 같은 장소에서 도보여행 때 찍은 사진이고, 오른쪽이 자전거 여행 때 찍은 사진. 

 

 

펑크는 저녁 라이딩을 선물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남한강 길을 달린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이다. 그땐 일찍 여주에 도착하여 신륵사에 가서 미션까지 하려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완벽히 다른 저녁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남한강은 그래도 불빛이 환하게 비친다. 달릴 맛이 난다.

 

그래도 어둠이 내린 남한강을 달리니 나름대로 낭만은 있었다. 아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저녁 라이딩의 운치를 만끽하며 달리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재욱이 자전거에 펑크가 나서 우리는 남한강의 밤길을 함께 달릴 수 있게 됐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관에서 자기로 예약해 뒀기 때문에 편하게 달려서 가기만 하면 된다. 강천보를 지나 얼마 달리지 않으니 저 멀리 숙소가 보이더라.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735분이었다.

 

 

기분이 어쨌든 달리면서 상쾌해진다.

 

 

이로써 5일 동안 여행하며 일찍 숙소에 도착한 경우는 한 번도 없는 진기록을 세웠다. 누가 보면 억지로 늦게 숙소에 도착했구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중간에 이런 저런 상황이 생기며 늘 어둠이 짙게 내린 후에야 도착했던 것이다. 그나마 어제만 충주에 일찍 도착하여 저녁밥을 먹고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었고, 어제를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어둠이 내린 밤거릴 열심히 달려 숙소에 도착해야 했다.

아이들은 저녁으로 통닭을 먹자고 하더라. 여행 마지막 파티 때나 먹던 것을 이번엔 지금 먹자고 하기에 잠시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모든 여행이 잘 마무리 된 후에 고급스런 음식을 먹으며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먹고 싶을 때 먹는 것도 좋은 것이고 오늘 여러 일로 힘들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하여 통닭을 먹었다. 따뜻한 모텔에 들어와 통닭을 먹고 있으니, 그 순간만큼은 황제 부럽지 않더라. 여행의 묘미는 바로 하루 일정을 잘 마치고 뿌듯한 기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이 느낌이야말로 힘든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제 부럽지 않은 시간. 여행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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