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후기에서 인용한 영화 『터널』의 대사는 건설사 관계자의 발언이다. 그 발언을 듣고 있던 구조 책임자는 울분을 토하듯 다음의 대사를 뱉는다.
▲ 묘하게 세월호의 단상이 떠오르는 영화다.
나 외의 존재들을 짐으로 여기다
“저기요. 이정수씨는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인데요. 지금 저기 터널에 계신 분은 파충류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 그런데 자꾸 까먹는 것 같아서. 지금 저기 사람이 갇혀 있습니다. 사람이~”
▲ 우리는 자꾸 잊어버린다. 나만 생각하느라 내 주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그렇다 우린 지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고 있다. 결코 나 혼자만은 살 수가 없고 살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자꾸 함께 살아가는 뭇 사람들을 까먹는다.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혼자만 살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불순물처럼 여기며 혹 나에게 피해나 끼치지 않을까,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지나 않을까 불안해한다.
2년 전 영화팀 아이들과 함께 달성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달성군에서 올라오는 자전거 길에서 라이딩을 하는 사람을 마주치기만 하면 동지애가 느껴져 반갑게 인사도 건네고 “힘내세요”라며 힘을 북돋워주기도 했다.
그런데 여주에 들어서니 그런 훈훈한 광경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고 오히려 사람이 곁을 지나칠 때면 “좀 비껴”라고 역정을 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사람이 적은 곳에선 사람이란 존재가 축복으로 여겨지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선 사람이란 존재가 짐짝으로 폄하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린 사람이 가득 찬 도시문명에 깊이 빠져든 나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기에 사람이 있다’는 걸 까먹었는지도 모른다.
▲ 여주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그리도 반가웠는데 여주에 들어서니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향기에 취해 돌아오다
그렇게 각박해져 갈 때, 사람이 모두 해충처럼 느껴질 때, 사람마저도 돈 덩어리로 보일 때 우린 그 현실이란 무대에서 잠시 내려와야 한다. 그 상황 속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런 생각은 고정관념으로 깊이 뿌리박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일상에서 벗어나 이상함을 좇아야 하고, 늘 만나던 사람들을 떠나 별로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전혀 다른 시각이 있다는 걸, 선물과 같은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말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나는 민들레 읽기 모임을 찾아오는 것 같다. 민들레 모임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민들레 홀씨가 날아와 마비되어 있던 어린아이적 감수성을 살려내고 돈이란 가치 이외에도 수많은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그렇게 마비가 풀리면 그제야 비로소 세상이 달라 보이고 삶이 고귀해 보이며 뭇 사람과의 관계가 축복으로 여겨진다.
『곤란한 결혼』이란 책으로 시작된 우리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민들레 가족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벽지에 담긴 사람향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종횡무진 뻗어나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렸고 배가 출출한 시간이 되었다. 어화둥님이 준비해둔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어화둥님 집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예년과는 달리 평일이 아닌 일요일에 모였던 터라 1박을 하는 건 무리였기에 다들 저녁을 먹자마자 자연스럽게 파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민들레 같던 사람들과의 반나절 동안의 만남이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 포커스가 나갔지만, 우리의 푸짐한 저녁 만찬이었다. 어화둥님의 노고가 가득한 만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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