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역자의 우여곡절과 출판사 내부의 치열한 논쟁을 뚫고 마침내 『곤란한 결혼』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곤란한 결혼』의 불편한 부분
이 책은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우치다쌤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책으로 옮겨놓은 구성이라 보면 된다. 그런 구성이다 보니 즉문즉설에서 느껴지는 한계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모든 게 다 네 탓’이라 느껴지게 한달지, ‘~해야 한다’는 투의 대답으로 어른이면 으레 할 법한 얘기를 한달지, 그가 싱글파파가 되어 딸을 양육할 수 있었던 여건과 지금 한국 사회의 싱글맘이 자식을 키우는 여건이 현격히 다름에도 자신의 이야길 보편화시켜 얘기한달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결혼에 대한 자기개발서 같아요”,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내재해 있는 가부장적인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성숙한 인간’, 즉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하여 얘기하고 있다”, “가사, 노동,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민감한 부분인데도 그걸 너무 얼버무리며 넘어가버렸다”, “우치다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즉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그 운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노력과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 획득하게 된 거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마치 그 운을 자기 것인 양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권유의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는 비판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서 결혼이란 제도는 단순히 남녀가 함께 사는 정도의 의미가 아닌 ‘가문과 가문의 얽힘’이며 그에 따라 남자보다도 여자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기에 위와 같은 다양한 비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예 강도 높게 “여전히 한국사회는 여자를 ‘밥과 몸’으로만 생각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던 것이다. 때론 제도가 꼬일 대로 꼬인 사람들의 욕망을 억누르며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세상은 늘 이랬어’라는 생각으로 온갖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개인의 억압을 당연시한다. 특히나 결혼이란 제도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덮어버리고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제도이다 보니, 『곤란한 결혼』이란 책에 대한 비판은 더욱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 결혼은 지극히 현실이기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결혼에 대한 책도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곤란한 결혼』의 탁월한 부분
『곤란한 결혼』이 위에서 비판한 부분들만 지니고 있는 책이었다면, 아예 읽지 않은 것만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의 도 넘은 훈수이거나 하지만은 않다. 레비나스 철학에 정통한 학자답게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결혼이란 제도 속에서 타자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인가?’하는 것이니 말이다. 타자성이란 자신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이질적인 낯섦이다. 그러니 그걸 대면하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고 ‘뭐 저딴 인간이 다 있냐?’하는 짜증이 일시에 폭발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결혼해서 함께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 그 지경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힘겹게 결혼생활을 유지할 거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한결같이 그런 타자성이야말로 ‘선물’이라고 말하며, 그걸 선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더욱 더 성숙해져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결혼생활을 통해 저는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한곳에 머무르며 버틸지가 아니라 어떻게 흔들리는지,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어떤 식으로 그때마다 나타나는 곤란한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지에 대한 ‘작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45쪽)”라고 하거나, “결혼생활의 토대는 그런 공통점만으로는 다져지지 않습니다. 결혼생활의 참맛은 ‘처음부터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전에는 공감하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새 공감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에 있는 게 아닐까요? (152쪽)”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우치다쌤이 말하는 결혼관과 자신의 결혼관이 다르다고, 우치다쌤이 말한 결혼이란 생각이 현재 한국의 결혼을 선택으로 여기는 정서와 다르다고 생각하여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결혼에 대한 정서가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타인과 함께 사는 그 난감함’을 느끼고 살아가며, 그럴 때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은 그 난감함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단서를 준다.
▲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둠이 찾아왔다. 그만큼 치열하게 얘기했다는 증거겠지.
다음 후기에 대한 예고
원랜 이번 편에서 마무리를 지으려 했었다. 너무 지지부진하게 이야기가 길어지며 후기를 쓰고 있는 나의 집중도도 떨어지게 됐고,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고 흐름을 따라가질 못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읽기 모임을 하던 당시에 나눴던 수많은 말들이 스쳐 지나가며 담지 않고는 그만 둘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책에 대해 나눴던 얘기들만 정리하는 수순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후기가 더 늘어난 걸 ‘선물’로 여기며, 다음 번 후기에선 웅성거림을 잘 갈무리하도록 해야겠다.
다음 후기에선 우치다쌤의 여러 책을 읽으며 느낀 소감을 정리하고, 저번 후기에서 얘기했듯이 모임 후반부에 찾아온 특별한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와 제비꽃님이 들려준 ‘벽지에 담긴 사람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 진짜의 나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 그 마침표를 이제 찍으려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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