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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격포여행기 - 5. 빗속여행의 낭만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부안 격포여행기 - 5. 빗속여행의 낭만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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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빗속여행의 낭만

 

 

밖에는 여전히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도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아이들은 그냥 돌아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아이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돌아가도 괜찮겠지라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송라가 채석강엔 꼭 가야 해요라고 말했고, 초이쌤도 채석강은 5분 거리로 가까우니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우의를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어차피 오늘은 비바람 속에서 여행할 각오로 나온 것이니 채석강까지만 갔다 오자고 했다.

 

 

바람에 모자가 자꾸 벗겨지기에 나름 안 벗겨지게 돌돌 말았는데 아이들이 보기에 웃겼나 보다. 왠지 구도자처럼 나왔다. 

 

 

 

채석강은 돌 캐는 곳?

 

채석강彩石江은 지구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그 단초를 볼 수 있다. 켜켜이 쌓인 지층들은 어떤 거대한 의지에 의해 한 번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무수한 영향을 받으며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채석강이란 단어만 들었을 때는, ‘돌을 캔다採石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예전엔 이곳에서 어떤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돌을 캐던 곳인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고, 이곳은 바다임에도 굳이 이란 지명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채석강은 돌을 캐는 곳이 아닌 채색이 칠해진 돌이 있는 강이란 뜻이다.  

 

 

 

격포해수욕장에서 숭고의 감정을 느끼다

 

거기서 조금 걸어 격포해수욕장 쪽으로 향했다. 2006년엔 학과 후배들과 여름에 나들이를 왔던 곳이기도 하고 2009년엔 한문학원 원장쌤과 음악쌤과 함께 와서 조개를 캤던 곳이기도 하다. 너무도 익숙한 곳인데 그때와 지금은 엄청 달라져 있었다. 그건 난개발이 됐기 때문이 아니라, 날씨와 풍랑이 만든 차이 때문이다. 그땐 맑은 날의 바다 풍취를 만끽하며 기분이 확 트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잔뜩 흐린 날씨에 성난 바다를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으니 겁나면서도 왠지 모르게 신이 난다.

 

 

맑은 흐린 날 격포 바다의 차이가 확연하다. 바로 이게 같은 곳을 두 번 여행해야 하는 의미다.  

 

 

이런 양면적인 느낌에 대해 진중권은 숭고崇高는 우리의 지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큰 범위에 맞닥뜨렸을 때 느끼게 되는 불편함, 두려움, 공포, 충격이자 인간을 압도하는 수학적 크기나 역학적 힘이다. 이때 숭고는 흔히 쾌와 불쾌가 혼합된 모순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우리가 무한히 큰 어떤 것과 마주쳤을 때 그것을 알지 못해 좌절을 느끼는 불쾌감과, 그것을 마침내 극복했을 때 얻어지는 쾌감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인식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상황이기 때문에 불쾌감(겁남)을 느끼지만, 그걸 극복할 때 비로소 쾌감(신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정말로 이때 감정이 숭고와 같았다.

밀물이 한창이어서 갯벌을 완전을 삼켜버렸을 뿐만 아니라 풍랑까지 높으니 해변까지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그 장관이 감격스러운지, 한참이나 그 자리에 머물며 떠나려 하지 않더라. 파도는 일순간에 올라와 사람을 낚아챌 수도 있기 때문에 국립공원 직원이 나와 사람들이 파도에 가까지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지만, 우리를 비롯한 몇 명의 관광객들은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서 보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이 참 신기하긴 하다. 위험한 줄 알면 안 할 것만 같은데도 오히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 어떤 짜릿한 경험은 묘한 해방감을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순간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유쾌 상쾌 통괘한 순간이었다.

 

 

무척 신난 아이들. 나올 때까진 불평이 작렬했지만, 막상 나와서 장관을 보니 모두 신났다.

 

 

 

맑은 날이 아니었기에 누릴 수 있던 축복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는 며칠 전부터 있었다. 원래 계획은 오전에 내소사를 다녀오고, 오후에는 나들길을 따라 적벽강까지 걸어가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선배에게 다르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물어보니, “내소사로 걸어가는 길은 흙길이라 평소에는 흙을 밟으며 걷기 좋은 길이지만, 비가 오면 질퍽질퍽하여 여러모로 힘들 거야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부안청자박물관이란 곳이 있으니 그곳을 관람하고 청자 만들기 체험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알려주더라. 청자박물관은 곰소항 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만 있으면 오후엔 거기에 다녀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청자 박물관에 전화를 하여 문의를 해보니, 청자 체험 시간은 정해져 있고 시내버스가 다니긴 하는데 자주 다니진 않으니 격포터미널에 가서 물어봐야 한다고 하더라.

 

 

그 순간을 만든 건 날씨였다. 흐린 날엔 전혀 색다른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여러모로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우의를 입고 밖에 나오니, 오히려 맑은 날에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며 다니는 것보다 더 축복받은 시간임을 알게 됐다. 이렇게 단체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도 오는 날 우의를 입고 걸어 다닐 이유도, 파도가 심하게 치는 바다를 볼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함께 하는 것이기에 일반적인 행동을 넘어선 행동을 할 수 있으며 함께 하기에 내심 못마땅하지만 그걸 참아가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절경을 본 것이니,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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