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함께 먹을 아침을 손수 만들다
오늘은 7시 30분에 기상했다. 계획을 세울 때 아침에 세 명으로 팀을 정해 아침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A조는 준영, 규빈, 현세가 한 팀으로 볶음밥을, B팀은 승빈, 민석, 송라가 한 팀으로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C팀은 지훈, 지민, 태기가 한 팀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만들더라.
▲ 아침의 바닷가 풍경.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비도 한 방울씩 내리고 있다.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8시부터 본격적으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A팀은 재료를 모두 먹기에 편한 정도로 잘라야 했고 그걸 밥과 함께 볶아야 하니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규빈이가 진두지휘를 하고 야채를 칼로 잘랐으며 준영이와 현세는 가위로 야채를 자르고서 함께 볶았다. 12인분의 볶음밥을 만들어야 하니 당연히 일손이 많이 들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볶음밥은 꽤 맛있었다. 야채도 골고루 잘 익었고 고소한 맛도 있었으니 말이다.
B팀은 고난이도 음식인 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든다. 승빈이는 야채들을 잘라주고 민석이와 송라는 함께 계란말이를 만든다. 보기 좋게 굴리기 위해서는 여러 노하우가 필요한데, 함께 만든 계란말이는 모양이 훌륭했다. 집에서 여러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듯싶었다. 김치찌개는 아무래도 간을 맞춰야 하고 깊게 우러나온 맛을 내야 하기에 초이쌤이 도와주어 완성할 수 있었다. 이로써 두 팀이 메인요리를 완성했다.
C팀은 디저트를 만들면 된다. 쉽다면 매우 쉽다고 할 수 있는 요리, 바로 샌드위치 만들기다. 하지만 지훈이도 지민이도 태기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니 대략난감이다. 지훈이가 프라이팬을 손에 쥐고 프라이팬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맡기로 했다. 그래서 빵을 노릇노릇 구워내고 베이컨을 촉촉하게 익혀냈으며, 태기가 양상추를 깨끗하게 씻어 해체했으며, 지민이는 토마토를 포개기 쉽게 잘라냈다. 이 후 이들이 함께 모여 샌드위치를 만드는데, 처음 무언가를 해본 것치곤 꽤 그럴싸한 샌드위치가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둘째 날의 푸짐한 아침 식탁이 차려졌다. 두 가지 메인요리로 모두 배불리 먹고 나니 아무래도 디저트는 찬밥 신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계획은 요리를 서로 평가하자는 것이었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상품으로 주려고 사온 간식을 원하는 아이들에게 그냥 나눠 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음식 만들기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 무언가 함께 만든다는 건, 그리고 그걸 남을 위해 만든다는 건 소중한 경험이다.
완벽한 여유로움
원래 계획상 오전엔 내소사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어났을 때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으며, 아이들이 요리 대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오전엔 쉬고 오후엔 비 오는 상황을 보아 움직이기로 했다.
모처럼 비 내리는 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빗소리를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비 오는 날 테라스에 앉아 비 내리는 광경을 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추운 겨울에 함박눈이 내리던 날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고구마를 먹으며 하고 싶었던 콘솔게임을 밤새도록 하는 여유를 머릿속에 그려본 적이 있다. 그건 늘 일상에 치여 살았기 때문에 어떤 여유롭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생각했기에 떠오른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런 여유를 만끽하고 있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더라.
▲ 때론 멍 때리는 시간, 때론 그냥 순간에 머무르는 것, 때론 무료하게 있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중 2 때의 추억
원랜 12시에 나가려 했다. 그런데 비가 잦아들 것 같지 않더라. 그래서 나갈 시간을 무기한 미룬 후 날씨 변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바람은 거세져서 우산을 쓰고 걸었다가는 우산이 순식간에 뒤집히는 광경을 두 눈으로 봐야만 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시간을 더 미루려 했는데, 초이쌤이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좀 그래요.”라고 하시며 “우의를 입고 걷는 건 어때요?”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기에 옷은 그렇게까지 젖진 않을 것이고 날씨도 춥지 않아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질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우의를 입고 빗속을 걸어보는 체험을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해볼까도 싶었다.
나에게 빗속여행은 낭만으로 자리하고 있다. 국토종단 때 그 쾌감을 맛봤지만, 최초의 경험은 중2 때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이었는데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도로는 물바다가 될 정도였다. 갑작스런 비에 누구도 우산을 준비해오지 못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없이 무작정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 뭣해서 걸었다. 처음엔 어떻게 비를 피해볼까 궁리하며 걷다가 어느 정도 젖으니 아예 비에 몸을 맡기게 되면서 묘한 해방감이 들더라.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넘쳐나는 물에 발을 담그며 그렇게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며 집에 왔었다. 그때의 추억이 ‘빗속을 걸어가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라는 심상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택시를 타고 마트에 나가 일회용 우의를 사왔다.
▲ 비는 조금 밖에 오지 않지만, 파도가 거세지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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