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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격포여행기 - 6. 걷는 여행의 의미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부안 격포여행기 - 6. 걷는 여행의 의미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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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걷는 여행의 의미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도 40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 길이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무언가를 보고 난 다음에 걷는 것이라 힘이 제법 들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 가고 있다.

 

 

  비는 그치고 서서히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민이와 태기와 함께 걸어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걸을 땐 하나가 되고, 편함을 추구할 땐 혼자가 된다

 

이때 규빈이는 학교 여행이 끝나자마자 연습을 하러 가야 하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이쯤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어때요?”라고 제안해 온다. 규빈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내일 집에 가면 바로 쉴 수 있지만, 규빈이는 예외였기에 충분히 이해되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몇 명의 아이들만 택시를 타고 갈 경우 다른 아이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기에,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하면 다들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하지 누가 걷는다고 하겠어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바로 옆에 있던 지민이가 저는 걸어갈 거예요. 이럴 때 운동도 하고 좋죠라고 말을 한다. 어제 남학생들의 불만을 들었던 상황 때문에 아이들의 반발이 또 나오지나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지민이가 그렇게 말해주니 힘이 났다.

아침에 우의를 사러 콜택시를 불러 나오며 택시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그냥 택시 잡기는 힘들고, 꼭 콜을 해야 해요라는 말을 들었기에 선뜻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하기도 그랬다. 그래서 마트 근처에 도착해서 택시를 탈건지, 말 건지?’를 물어보니, 의외로 걷자고 하는 아이들이 많더라. 아마도 택시비는 개인이 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걷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려던 찰나, 우연처럼 마트 주차장에 택시 한 대가 들어섰고 아이들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말 택시를 타야 하는 아이들만 한 대의 택시에 타기로 했는데, 그때 민석이와 지훈, 현세, 태기, 승빈이가 나서는 것이다. 규빈이는 택시를 타고 가야 했기에 초이쌤은 태기를 불러 규빈이가 탈 수 있도록 했으며, ‘감기 때문에 택시를 타야 한다던 승빈이에겐 그 정도 감기면 충분히 걸어가도 된다며 택시에 타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승빈이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몰라준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그런 승빈이의 태도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감기가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도 될 법한대도 타고 가지 않으면 내가 손해다라는 생각만 강했기 때문이다. 그때 4명이 탔음에도 한 사람 더 타도 된다고 하자 초이쌤은 무척 억울해 하는 승빈이가 탈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자 당연히 태기는 내가 타려 할 땐 타지 못하게 막고서 왜 멀쩡한 사람(민석, 지훈, 현세)은 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냐?”고 불평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봐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조금이라도 생겼을 줄만 알았는데, 역시나 어떤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봐야 했던 순간이었다.

 

 

함께 걷다 보면 이런 저런 얘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다.   

 

 

 

걷는 것=시간낭비가 되는 사회구조

 

격포해수욕장 근처에 펜션을 잡아도 됐을 텐데 이번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펜션을 잡았다. 격포터미널까지 가기 위해서는 40분 정도를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이런 상황 자체가 맘에 들었다. 집 앞까지 버스가 다니고, 조금이라도 걸을라치면 손해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도시문화(서울문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파동으로 이전하기 전에 단재학교는 둔촌동에 있었는데, 둔촌역에 내려 학교까지 걸어오려면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걸 걷기 싫었던 아이들은 역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굳이 한 정거장을 온 후에 내려 학교로 오곤 했다. 그러면서 버스 한 번 타면 편하게 올 수 있는데 굳이 뭐 하러 걸어요?”라고 당연한 듯 말하곤 했다. 한국 사회는 지극히 편한 사회이고, 사회 곳곳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라고 무의식중에 주입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편한 게 있음에도 억지도 불편할 필요는 없지만, 걷는다는 것을 시간 낭비 정도로 생각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가 걷기에 5.4km는 만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을 구경도 하고 간식도 먹고 싶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

 

 

 

걷는다는 건 나를 맞아들이는 시간

 

초등학생 때 새우깡 가격=버스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교회가 끝나면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때마다 고민을 했었다. 하찮은 고민처럼 보이지만, 어린 아이에겐 실존적인 고민이었다. 바로 버스를 타고 편하게 갈지, 새우깡을 먹으며 걸어갈지 고민했던 것이다. 언젠가 더 어렸을 때 형과 코아백화점까지 걸어갔다가 맛살을 사먹고 걸어서 돌아온 적도 있었기에 걷는 건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자라왔기에 나에게 걷는 것이란 고역이나 시간 낭비가 아닌 세상 구경의 다른 말이었던 것이다.

나의 과거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강요할 수는 없다. 더욱이 도시문화에 자연히 녹아든 아이들에게 그런 식의 말을 하는 것은 옛날 옛적에라는 말처럼 고리타분하게 들릴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건, 국토종단을 통해서건 걷는 것이 주는 여유로움의 의미, 편하기에 오히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깨달음, 빠름 속에 놓치고 지나친 것들에 대한 후회를 알게 되었기에 조금이나마 아이들도 그런 부분들을 간접 체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모든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느껴질 순 없겠지만, 적어도 아까 전에 지민(지민이는 2013년에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던 저력이 있는 아이이기도 하다)이가 한 말처럼 저는 걸을래요.”라는 말 속엔 내 경험과 비슷한 어떤 정감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다음 날 새벽엔 엄청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건 다음 후기에 쓸 예정).

 

 

다음 날 새벽엔 이런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후기에.

 

 

사족이지만, 조카는 태어난 지 19개월이 되었는데 얼마 전부터 걷기 시작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번쩍 일어서더니 곧잘 계단까지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점은 늘 기어 다니며 그만큼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던 아이가 일어서며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자 아주 활발하게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에너지가 넘쳐나니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가며 한 순간도 쉬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맘껏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신날 것이고, 기어 다니며 보던 세상과는 서서 보는 세상이 다르기에 신기해서 그럴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게 인간에게 걷는 것이 갖게 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걷는 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활동이며 그로 인해 삶을 깨우쳐 가는 과정 말이다. 그런데 사회화 되며 걷는 것을 차츰 멀리하게 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오는 길엔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언제 그렇게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나 싶다.

 

 

인용

목차

사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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