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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아마추어 사회학 - 15. 사회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 본문

연재/배움과 삶

아마추어 사회학 - 15. 사회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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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회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

 

 

이전 후기에서 사람들이 사회의 언어를 쓰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면서도 오해가 생기고 그걸 다시 해석하려다 보니 많은 왜곡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학자들은 사회의 언어를 말과 뜻이 1:1로 완벽하게 대응되어 오해의 소지가 없는 과학의 언어로 바꾸려 한다는 말을 했었다.

 

 

위 그림은 토끼인가, 오리인가? 이런 두루뭉실함을 싫어하는 학자들은 '과학의 언어'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한다. 

 

 

 

사람들이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것, 미지의 것, 미묘한 것, 어중간한 것을 싫어하고 확실한 것, 알고 있는 것, 분명한 것, 논지가 세워진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삶이란 게 불확실하고 미묘하며 어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매번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뭘 먹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이때 의견을 물어보면 꼭 한 명쯤은 아무 거나~”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때 주의 사람들은 우레같이 화를 내며 제발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말고, 니 생각을 말해라고 말한다. 또한 예전에 어머니 생신 때 어머니 뭐가 필요하세요?”라고 물으니, “~ 필요한 거 없다. 그저 니가 건강하게 잘 살기만 하면 된다.”라고 답했다. 그때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 어머니는 선물 같은 거 필요 없나봐라고 생각하여 정말 아무 선물도 안 준다면, 그 후로 몇 날 며칠 싸한 눈칫밥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잘못 공부한 민속방법론'이란 말이 신경 쓰인다. 동섭쌤은 '꼬투리 사냥꾼'이라 표현하며, 미지의 것을 혐오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이처럼 우린 일상생활에서 생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 말을 쓰거나, ‘거시기와 같이 문맥으로만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말을 쓰거나, 좋으면서도 싫다고 하는 청개구리 어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여 수많은 오해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박대통령은 두 번이나 사괴를 했다. 그런데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말만 있는 게 아니라, 문맥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세상을 만들겠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처럼, 수학처럼 하나의 분명한 답이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왜 저리도 흐리멍덩한 표현을 써서 오해를 일으키지?’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며, ‘왜 사람이 일관성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지?’라고 비난한다. 그러니 그들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언어를 버리고 과학의 언어만을 써서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되는 세상을 좋은 세상이라 여기며, 그런 세상을 만들려 하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진규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진규는 과학이 좀 더 발전하여 속마음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면, 더 이상 서로 오해를 하거나 상처주거나 하진 않겠지라는 말을 했었고, 나는 기계가 아무리 발전된다 해도 내 속마음을 100% 완벽하게 알려주진 못할 거야. 그건 내 마음이란 게 하나의 고정된 상이 있는 게 아니라 들쭉날쭉 하니 말야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진규는 과학의 언어만을 쓰는 세상을 바라고 있었고, 난 그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었다.

 

 

'과학의 언어'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공식은 신의 언어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외계어일 뿐이다.  

 

 

 

과학의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얘기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1898~1956)가 인용한 내용을 통해서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조종사는 비둘기들이 나는 것을 보다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비둘기들이 잘못 날고 있는 것이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비행 물체는 몸을 날아가는 방향으로 수평화, 유선형화해야 한다는 것이 비행의 제일 원칙이다.

그런데도 비둘기들은 몸체를 한껏 세우고 날개깃을 전진 방향으로 잔뜩 치켜세웠다가 뒤로 젖히며 날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공기의 저항을 흘려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자 하는 동작과도 같았다. 말하자면 비둘기들은 지금 비행의 제일원칙을 무시하며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비행하는 순간 비둘기들이 불쌍해졌다. 이 원칙을 알지 못해 비둘기들은 그 조상들부터 얼마나 부질없는 수고를 해왔으며 하고 있는가.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 사실을 비둘기들에게 알려주고 학습시킬 방도는 없는가. 어떻게 저 어리석은 비행의 방식에서 저들을 해방시킬 것인가.

 

 

비행기가 날게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론을 다듬었고 위험천만한 실험을 해야만 했다. 하늘 높이 뜬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땅으로 곤두박질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실험의 데이터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맘껏 누빌 수 있는 인류의 꿈이 실현되었다.

 

 

카자흐스탄에 갈 때 탔던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 비행기는 인류의 꿈을 이루게 도와줬다. 

 

 

그러니 비행기 하나를 띄우기 위해 그때까지 쌓인 데이터는 어마어마했다. 그건 과학적인 이론임과 동시에 이미 현실에서 증명해보인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종사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비행 물체는 몸을 날아가는 방향으로 수평화, 유선형화해야 한다는 것이 비행의 제일 원칙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비행의 원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인정하고 있는 내용이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조종사가 그런 원리를 맹신한 나머지 이미 잘 날고 있는 새들에게도 적용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하늘에서 본 비둘기는 지금껏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해왔던 비행의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힘겹게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부질없는 수고를 해왔다고 안타까워하며, ‘비둘기들에게 알려주고 학습시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과학의 눈으로 새가 나는 것을 보면 덜 힘들게 날 수 있는데도, 더 힘들게 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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