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무의식 상태로 면접을 보다
사람이 어느덧 많이 빠져나갔다. 지금은 8명 정도가 남아 있는 상태다. 내 차례가 멀지 않다고 느껴지니 화장실을 다녀와야 할 것 같더라. 그래서 손을 들어 화장실에 가겠다는 표시를 했다. 여긴 화장실에 갈 때 함부로 갈 수가 없다. 아마도 화장실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한 번씩 차례를 배정받아야만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화장실에서 나오며 복도에 있는 감독관에게 시간을 물으니 글쎄 10시 40분이란다. 세상에 면접이 시작되고 고작 1시간 40분 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은 건데도 체감적인 시간으론 3시간 정도 흐른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시간 안 가더라.
○ 구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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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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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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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시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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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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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위원 책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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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소지품 책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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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책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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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책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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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층면접(평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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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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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책걸상 |
책상 앞 가림막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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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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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시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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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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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용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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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위원 책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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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소지품 책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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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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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 |
(폐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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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상실과 면접실은 이런 분위기로 생겼다.
시험의 중압감에 한껏 눌린 구상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감독관은 곧 내 차례임을 알려주러 내 자리에 왔다. 차례임을 알게 되면 자신의 모든 짐을 꾸려야 한다. 가방에 모든 짐을 넣고 외투까지 손에 든 상태로 일어나니 아직 차례가 되지 않았는지 입구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더라. 잠시 앉아 있었더니 출입문이 열리며 나오라고 하더라. 가방과 외투를 들고 보무당당하게 교실 문을 나섰다.
지금이야말로 실전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그렇기 때문에 해온 그대로 맘껏 풀어내야만 하는 실전인 것이다. 솔직히 대기할 땐 너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떨릴 겨를 자체가 없었고 막상 이렇게 실전에 놓인 지금도 어안이 벙벙한 까닭인지 떨리기보다 어리둥절한 기분이 컸다. 구상실 앞에 가방과 외투를 내려놓으니 복도에 계신 안내자가 교실에 들어가도 된다고 알려주더라.
구상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간을 체크하는 계측관 한 분의 자리와 교실 한 복판에 시험지가 놓인 나의 자리 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이 넓은 공간이 이 순간만은 나만의 공간이 된다. 자리에 앉아 내가 가져온 볼펜을 써도 되는지 묻자, 계측관은 그래도 된다고 알려줬다. 펜을 꺼내고 쓸 준비를 마치니 계측관이 “시작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묻더라. 그래서 괜찮다고 대답을 하니 바로 시계의 타이머를 누르더라.
시험지를 뒤집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10분이란 시간 동안 문제 파악 및 답변의 구상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상형 3개의 문제와 즉답형 1개의 문제는 B4의 용지를 가득 채운 채 나를 반기고 있었고 역시나 시험의 중압감 앞에 한껏 억눌린 채 시험을 압도하려 하기보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갔다. 제대로 문제를 읽고 나서 답안을 구성하려 하기보다 ‘대충 이걸 묻나봐’라고 판단되면 그에 따라 무작정 써내려가기 바빴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네 문제를 다 풀고 나니 시간이 꽤나 남은 상황이라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을 좀 더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롭게 쓰며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자면 10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만큼 좀 더 신중하며 유연하게 대처했어도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럴 때 보면 시험이란 무게 앞에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올해 1차 시험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압감에 정신도 못 차린 채 헤맸고 ‘참 버겁기만 하다’는 절망을 한가득 느꼈었기 때문이다.
▲ 구상실의 분위기. 가운데 있는 책상에서 10분 동안 구상을 한다.
나 지금 뭘 말하고 있지
구상을 10분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은데 곧바로 면접장에 들어가 쓴 답을 토대로 말을 해야 한다. 구상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을 다듬는 것일 뿐 실제 채점이 되는 곳은 면접실에서의 나의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구상실을 나와 그 앞에 놨던 가방과 외투를 챙기고 면접실로 이동했다. 그곳에 가방과 외투를 놓으니, 들어가도 된다고 알려주더라. 가볍게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다섯 명의 채점관이 앞에 앉아 있고 원랜 교탁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책상과 의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더라. 아침에 면접실의 분위기를 봤기 때문인지 긴장은 그렇게 되진 않았다. 다른 곳은 3명의 채점관이 있는 교육청도 있고 서로 붙어 앉는 게 아니라 멀찍이 앉는 교육청도 있다고 하는데 여긴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마치 가족 같은 친근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들어가며 목례를 했고 자리에 서서 인사를 한 후에 “관리번호 14번입니다.”라고 말하고선 앉았다. 그랬더니 가운데 계신 감독관(임용에선 이 분이 전체적인 것을 조율하시는 분이다)이 “준비됐으면 시작하세요.”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이 있고 조금 텀이 있고서야 계측기가 눌려졌다. 그때부턴 정신없이 준비해간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연습할 때 강조했던 것처럼 최대한 앞을 보며 이야기를 하려 노력했고, 몇 가지를 뽑아야할 경우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첫째’, ‘둘째’를 강조하여 말했으며, 시선을 최대한 고르게 분산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한 분만이 고개를 든 채 나를 볼 뿐 나머지 분들은 채점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그만큼 나를 볼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
구상형 답변을 모두 마치고 잠시 기다렸다. 기다린 이유는 ‘즉답형 문제를 보세요’라는 지시가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기에 책상 위에 표창장 같은 틀에 들어 있는 즉답형 문제를 펼쳐 들었다. 이미 구상실에서 즉답형 문제의 내용은 파악한 터라 거기에 제시된 두 가지 답변 내용을 정리한 후에 신중하게 답변을 했다.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2분 정도나 시간이 남았다. 그만큼 시간 안배는 전혀 신경도 쓰지 못한 채 내가 준비한 것만 하기에 바빴다는 뜻이다. 연습할 때는 상황을 보며 느긋하고 천천히 말하던 습관을 들였었는데 막상 현실에선 그러질 못했던 것이다. 이래서 연습조차도 늘 실전처럼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말고 하라는 말이 있는 것이겠지.
모든 시간이 끝나고 나오니 신기하게도 딱 12시였다. 마음은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 뭔가를 크게 잘못한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이미 흘러버린 것을. 그리고 내일은 더욱 중요한 수업실연이 있는 것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놔두고 맞닥뜨릴 현실을 성심껏 대비해야 한다.
▲ 면접실의 분위기. 다섯 명의 채점관이 붙어 앉아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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