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자』를 읽는 이유와 그 의미
1. 고전과 조우하여 전혀 다르게 생성되기 위해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책만큼 시간과 생성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없다. 지금 내 앞에 방금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 있다고 해보자. 이 책은 우리에게는 미래의 시간이자, 나를 이러저러하게 다르게 생성시킬 수 있는 잠재성이다. 이 책의 20페이지를 읽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 책을 통해서 이미 읽은 19페이지들이라는 과거와 지금 펼쳐져 있는 20페이지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그 많은 미래가 생성된다. 그러나 사실 이미 읽었다는 이 19페이지들도 흘러간 과거라기보다는 어느 때이든 미래로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읽었던 앞 페이지들도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책이 열어 주는 다층적인 시간 속에서 자라왔고, 또 자라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자라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이 이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책들은 그저 한 장 한 장 넘겨지고는 끝내 잊혀지게 되는 운명에 빠져 있다. 이렇게 책에는 다시 넘겨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한 번 넘겨지면 잊혀져 버리고 마는 책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매번 넘기고 다시 넘기는 책, 나아가 세대를 거쳐서 다시 또 넘겨지는 책을 고전(古典)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고전은 덧없는 세상에서 영원성을 획보한 행복한 책이다.
고전의 이런 힘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여러 세대를 걸쳐서 우리들을 다르게 생성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다르게 변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다르게 변함에 따라 고전의 의미도 다르게 변하게 된다. 어릴 적에 읽었던, 그래서 자신을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시켰던 동일한 고전을 어느 날 문득 낡은 책장에서 꺼내 읽는 순간, 우리는 그 고전에서 전혀 다른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 새로움의 의미를 되물으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어린 시절에 읽었던 의미와 지금 나이 들어 읽고 있는 의미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나아가 앞 세대가 읽었던 의미와 지금 세대가 읽고 있는 의미 중 어느 것이 옳은가? 그러나 이런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고전을 통해 매번 다르게 생성될 것이고, 또 그렇게 생성될 때마다 고전은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의미라는 것 자체가 아주 때늦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나 사랑해서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만들었던 모든 사건들에 대해 아름다운 의미를 사후에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어떤 고전에 대해 그것의 의미를 알았다고 말할 때, 이것은 그 고전과 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의미는 항상 결별의 절차와 동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고전은 영원히 늙지 않는 여인이 기다리는 주막집처럼 항상 결별의 장소다. 우리는 고전으로 매번 돌아갈 수 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번 다르게 생성되어 떠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장자』라는 고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별하기 위한 만남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자』라는 책의 의미는 우리의 앞 세대들 혹은 그 이전의 사람들이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만의 『장자』로부터의 결별 의식이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결별 의식을 수행해야만 한다. 오직 이런 결별 의식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또 그만큼 『장자』의 의미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장자』라는 고전과 조우해서 우리는 전혀 다르게 생성되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하는 셈이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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