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년을 돌아 다시 시작한 임용 공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보았던 5번의 임용시험에선 1차 합격조차 해보지 못한 채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렇게 5번의 임용시험을 끝으로 더 이상 임용시험은 보지 않겠다고 맘을 먹었고 단재학교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 첫 임용시험을 봤던 때가 2006년이다.
교육과 글쓰기란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단재학교에서의 7년
단재학교에서 생활한 7년이란 시간 동안 임용은 더 이상 꿈꾸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간 생각해왔던 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다 실험해볼 수 있었다. 아이들과 자주 전국 곳곳을 싸돌아다녔고 시를 그림이나 소설 등의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해보는 수업도 했으며, ‘우리끼리 프로젝트’라는 것을 통해 아이들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해 보드게임을 만들어보고 꿈틀이축제에선 발표까지 하며 상을 타기도 했으며, 전주와 부산영화제는 물론 각종 영화제에도 다니며 영화의 흐름을 일별하기도 했고 ‘영원한 사랑’, ‘다름에의 강요’, ‘DREAM’, ‘Fake Book’과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그날의 생존자들’, ‘남한강 도보여행’,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과 같은 리얼버라이어티한 성격의 영상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단재학교에서의 7년은 교육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며 맘껏 좌충우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뿐인가, 이 시간 동안 나 스스로 가장 크게 얻은 건 뭐니 뭐니 해도 글쓰기에 대한 생각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는 점이다. 단재학교는 다음 카페를 통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글을 쓰며 의견을 나누고 그에 대해 교사나 학부모들이 언제든 확인하며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학교였다. 학교에서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카페에서의 활발한 의사소통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낮춰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때부턴 좀 더 자세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의 글들을 쓰기 시작했고 예전엔 일기장에 쓰며 혼자 볼 것도 카페에 공개하며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변화를 더 이상 나만의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당당히 남들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 단재학교에서의 7년은 교육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키우기에 최적의 순간이었다.
7년 만에 다시 임용에 도전하다
그렇게 재밌게 다녔던 단재학교를 2018년 2월부로 그만 두게 되었다. 2011년에 임용시험 공부를 그만두고 나서 한 번도 ‘임용시험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단재학교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며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단재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막막해지더라. 그래서 준규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한문 교사로 현직에 있는 경일이 형을 만나 답답한 심정을 풀어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정확히 결정된 게 없었기 때문에 다시 출판 편집자로 출판사에 문을 두드려볼 것인가, 다른 대안학교를 찾아 교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제3의 길로 갈 것인가 고심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쯤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시 임용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문제가 될 건 없더라. 마치 2011년에 임용공부를 그만둘 때 ‘다시 임용공부를 하게 된다면 그건 내 삶의 철학을 배반한 행동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듯하지만, 그 또한 내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누구도 나에게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더욱이 과거 5년 동안 임용공부를 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모든 조건이 훨씬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돈이 없어 쪼들리는 환경 가운데서 공부를 해야 했고, 학자금 대출 환급일도 다가오고 있어 맘 한 구석에 불안을 가득 안은 채 공부를 해야 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모아둔 돈도 있어 편안하게 공부만 하면 됐었고 학자금도 모두 갚았기에 불안에 떨어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늘 실패로 점철된, 그래서 용기를 내기 힘들었던 임용공부를 다시 해보자는 생각을 굳히게 됐고 7년 동안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전주로 내려온 것이다.
▲ 그만두기로 하고선 많은 사람을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다.
처음으로 이룬 쾌거, 1차 합격
막상 전주로 내려와 공부를 하는 과정 속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7년 만에 다시 본 임용시험에선 합격점수에 근접한 점수를 받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작년 11월에 본 임용시험에선 한 번도 이루어본 적이 없는 1차 합격을 마침내 하게 되었다.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이룬 쾌거이니 합격자 발표가 나오던 날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 ‘1차 1순위(공립)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왜 감회가 없었겠는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하는 마음에 뛸 듯이 기뻤으며, ‘하면 되긴 하는 구나’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렇게 다가온 처음의 기회를 가슴 떨리는 희열로 맛보았고 처음으로 2차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과연 임용 2차 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며 나는 그 안에서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되면서도 기대가 됐다.
▲ 처음으로 해본 1차 합격. 감격스럽다.
2. 걸음걸이에 어린 행복으로 천안에 오다
임용 2차 시험은 이틀에 걸쳐 실시된다. 하루는 면접을 보며, 하루는 수업실연을 한다. 그런데 예년과 달라진 게 있다. 그건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수업실연을 첫째 날에 하고 면접을 둘째 날에 했었는데 올해부턴 어떤 이유에선지 면접을 첫째 날에 하고 수업실연은 둘째 날에 하도록 바뀐 것이다. 순서가 바뀐 것에 따른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나의 입장에선 이번처럼 바뀐 게 더 낫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 이유는 충남에선 이번에 11명의 한문교사를 선발한다. 그래서 모두 1차에 뽑힌 인원은 18명(1명은 장애)이나 된다. 그러니 18번째까지 수업실연을 하려면 4~5시에나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처럼 수업실연을 첫째 날에 한다면, 거의 마지막 번에 배정된 사람은 면접시험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채 면접을 봐야만 하니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 올핸 특이하게 면접부터 본다.
임용시험을 위해 다시 천안에 올라오다
시험은 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실시되니 월요일엔 천안에 올라가야 했다. 이미 1차 시험을 볼 때도 왔던 곳이긴 하지만 2차 시험을 보러 한 달 보름만에 다시 올라가니 기분이 남다르더라. 그땐 복장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가방만 챙겨 가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정장을 챙겨 가야 하니 오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가방엔 교과서 한 권과 두꺼운 면접책과 태블릿과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가니 1차 시험을 보러 올라갈 때보다 짐은 더 많았고 그만큼 더 무거웠다. 이런 느낌은 마치 국토종단을 하러 떠날 때와 같은 느낌이다. 배낭 가득 짐을 한가득 싣고 목포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릴 때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기분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길을 나선다.
▲ 짐을 쌌다. 짐을 싸고 보니 시험을 본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천안에 도착하자마자 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1차 시험을 봤던 학교보다 2차 시험을 보는 학교가 터미널에서 더 멀리 있더라. 그래서 버스는 돌고 돌아 학교 근처에 정차했고 드디어 내렸다. 시험장은 사거리에 있는데 이곳 사거리는 매우 특이했다. 사거리에 횡단보도는 없이 모두 육교를 통해서만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거리 위엔 원 모양의 육교가 있어 올라가선 원을 따라 걸어가 내려가야만 했다. 그러니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보다 여러모로 시간이 더 걸리고 에너지가 더 드는 곳이었던 거다. 그런 특이한 육교를 건너 내려왔고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까스로 찾았다. ‘2020학년도 충청남도 중등교사 임용(제2차) 시험장’이란 현수막이 반갑게 맞아주더라. 2차 시험을 봤던 사람이라면 이 현수막을 보면서 마음을 다독였을 것이다. 나도 이 순간 ‘드디어 실전에 놓였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생각을 다듬었다.
▲ 학교로 가는 사거리엔 이처럼 동그란 육교가 놓여 있다. 이곳을 건너야만 고사장을 둘러볼 수 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내일은 걸어서 학교에 갈 생각이기에 거기서부턴 걸어서 숙소까지 가봤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와 숙소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더라. 거리상으론 멀지 않은데 신호등을 여러 번 건너야 하니 신호 사정에 따라 시간은 더욱 길어질 게 뻔한 거리였다. 정장이 든 가방과 짐이 한껏 든 책가방을 매고 터벅터벅 걷고 있으려니 절로 도보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걷는 걸 무지 좋아한다. 초등학생 땐 교회에 다녔었는데 집에서부터 교회까진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아침에 갈 땐 당연히 버스를 타고 교회에 갔지만 예배가 끝난 후 올 땐 선택의 기로에 놓여 고민하곤 했었다. 그때의 선택이란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갈 것인가? 새우깡을 먹으며 걸어갈 것인가?’하는 거였는데, 버스비와 새우깡의 가격이 같았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주 새우깡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새우깡을 사서 1시간 30분 거리를 걸어오곤 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처럼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국토종단도 할 수 있었고 사람여행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걸으니 힘이 들긴 해도 절로 기운이 샘솟았다. 뭐든 부딪혀서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처음 보는 2차 시험도 맘껏 해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 막막한 현실에 숨고만 싶을 때 이처럼 걸어볼 일이다. 걷다보면 열망이 피어오르고 희망이 어린다. 희망을 간직한 채, 열망을 안은 채 이제부터 본격적인 2차 시험 후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 처음으로 2차 시험을 보니 매우 당연하게도 2차 시험장 현수막을 보게 됐다.
3. 임용 면접을 보러 오다
오늘 드디어 면접을 보는 날이다. 처음 보는 면접시험인데다 10분이란 짧은 시간 안에 4문제에 대한 답을 구상하고서 면접장에 들어가 10분 만에 구상한 내용을 답해야 하는 특이한 방식 때문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 2차 시험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면접일 새벽의 풍경
그래서 잠을 설치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긴 했는데 11시에 자서 4시 41분에 눈이 떠졌으니 잠은 충분히 잔 상황이었다. 컨디션은 괜찮나? 몸이 부대끼거나 정신이 흐리멍덩하지 않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다고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은 경부선 철도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여객선이나 화물선은 물론이고 1호선 전철도 지나다닌다.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굉음이 엄청난데 솔직히 이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예전에 세종 조치원에서 묵었을 때도 철도 바로 옆에 있는 모텔이라 꽤 시끄럽긴 했는데 그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여기엔 기차를 좋아하는 나만의 기호가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기차가 옆을 지나갈 때면 창문을 열고 어떤 기차가 지나가나 바라볼 정도였고, 새벽에도 운행하는 화물열차를 보며 ‘기관사는 얼마나 피곤할까?’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할 정도였다.
▲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열차와 전철. 계속 사진을 찍으며 열차를 배웅했다.
아침은 어제 사온 샌드위치와 작은 컵라면을 먹었다. 충남에선 1차에 18명의 합격자가 있는 만큼 만약 뒷 번호에 배정되면 그만큼 늦은 시간에 면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업실연(개인당 총 40분의 시간이 걸림)에 비하면 20분 정도의 시간만 걸리기에 좀 더 빨리 끝난다는 장점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내가 10번 후반대의 번호를 뽑진 않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쌓여 있는지라 아침도 간단하게 먹었고 간식도 그렇게 많이 챙겨가지 않았다.
▲ 아침치곤 조촐하지만 과하지 않아 좋다. 늦게까지만 면접을 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포근한 날씨에 면접을 보다
숙소에선 7시 15분에 나왔다. 학교엔 8시 20분까지 도착하면 된다고 하기에 여유롭게 걸어서 갈 생각으로 말이다. 올해 2차 시험일엔 날씨가 무척 포근하다. 영상 7도의 기온으로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날씨이기 때문에 추위로 인해 몸이 움츠러드는 일은 없는 것이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거리를 정장을 차려 입고 걷고 있으니 불안은 순식간에 가시고 맘껏 부딪혀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난다. 막상 고사장에 들어가 같은 수험생들을 보는 순간 맘은 요동칠 테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 춥지 않는 새벽 길을 걸어 간다. 발걸음마다 꽃이 핀다.
학교엔 7시 39분에 도착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수험생들과 가족들이 보이더라. 함께 서 있는 가족들도 수험생만큼이나 엄청 떨릴 테지. 그리고 고사장에 들어간 수엄생을 언제 나올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수험생도 가족도 모두 모두 고생이 이만저만이다. 입구에 설치된 고사장 배치도를 보니 우리 고사장은 3층에 있더라. 들어가려 하니 입구에 서 계시던 선생님이 수험표를 보여 달라고 하더라. 이게 바로 1차 시험 때와는 완벽히 다른 점이었다. 1차 때는 입구에서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심지어는 누구나 고사장까지 들어가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니 말이다. 그에 반해 2차 때는 입구에서부터 출입자를 제한한다.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수험표를 확인하여 들여보내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는 이유는 ‘공정성’이란 잣대, 일말의 부정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으리라. 거기에 마련된 덧신을 신고 고사장으로 올라갔다.
▲ 우리 고사장은 3층에 있다. 여긴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타고 올라가면 된다.
4. 정적이 흐르던 대기실에서 관리번호를 뽑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왔다. 한문 교과 대기실은 오른쪽 가장 끝 반에 배치되어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보니 구상실이나 면접실의 분위기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더라. 늘 어떤 환경에서 2차 시험이 실시되는지 궁금하긴 했는데 여기선 개방되어 있으니 좋긴 하더라.
▲ 우리 대기실은 복도 끝에 있어 환한 느낌이 든다.
대기실에 흐르는 긴장감
7시 49분에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18개의 책걸상이 배치되어 있고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은 와서 앉아 있더라. 이렇게 직접적으로 1차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만약 최종 합격을 한다면 이 사람들 대부분이 동기가 되는 셈이니 매우 행복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대기실엔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견제심리도 읽힌다. 감독관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마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듯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분명히 이 많은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한두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조용한 이유는 어쨌든 지금은 경쟁자이자 누구도 나는 꼭 합격한다는 확신이 없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여기선 그런 수험생의 마음을 헤아린 듯 스피커에선 지브리 스튜디오의 경음악들이 흘러나온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메인 테마곡인 ‘Spiriting Away’가 피아노 반주곡으로 나오니 반가운 마음과 함께 한껏 짓누르던 긴장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 2차 시험을 보러 오니 또 내 자리가 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다.
관리번호를 뽑다
8시 20분이 되니 감독관 2명이 입실했고 25분엔 스마트폰을 내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스마트폰에 이름을 적어서 수거함에 넣고 왔다.
8시 30분이 되니 관리번호를 뽑는다고 하더라. 예전에 관리번호를 뽑는다는 말을 합격생들에게 들었을 땐 모두 앞으로 나와 번호가 적힌 공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뽑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더라. 주머니엔 관리번호가 적힌 명찰이 있었고 앞에 함께 모여 뽑는 게 아니라 앞 번호부터 돌아가며 뽑는 방식이었다. 나의 수험번호는 5번이었는데 1번과 2번 수험생도 1차에 합격했기 때문에 나는 세 번째에 뽑으면 됐다. 두 사람이 차근차근 뽑는 광경을 보며 ‘과연 몇 번을 뽑았을까?’ 궁금해 하고 있으니 마침내 내 자리로 오며 주머니를 내밀더라. 그때까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손에 바로 잡히는 걸 뽑는다 VS 뒤적이다가 뽑는다’라는 고민 말이다. 1차 합격생이 많지 않다면 이런 고민 자체를 하지 않을 텐데 무려 18명이나 되다보니 ‘제발 뒷 번호만 안 뽑혔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이런 하찮으면서도 매우 실제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맘을 정하지 못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손에 바로 잡히는 걸 여러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뽑았다. 명찰이 눈에 보이기까지 얼마나 맘 졸였는지 모른다. 제발 앞 번호여라, 제발 앞 번호여라. 주머니를 빠져나온 명찰의 뒷면이 보였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뒤집어보니 ‘아뿔사!’ 내가 그토록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무려 관리번호 14번을 뽑았으니 말이다.
▲ 운동장을 보니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다들 얼마나 떨릴까.
14번이 호명 되려면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로, 무념무상의 상태로 있어야만 한다. 이러다 정말 점심까지 먹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욱 걱정이 된다. 앞 번호가 될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요기가 될 만한 건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업실연에 비해 면접은 빨리 진행되기에 14번이라 할지라도 엄청 늦게 하진 않는다는 것이겠지.
9시부터 관리번호 1번이 호명되며 면접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거의 10분마다 한 명씩 나가고 있는데 어찌나 내 번호는 요원하게만 느껴지던지. 14번이 불리려면 우리 반에 5명만이 남은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게 보이더라. 더욱이 시계도 가져오지 않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를 모르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충남에선 대기실에 있는 동안엔 종이로 된 모든 책은 볼 수 있으니, 두꺼운 면접책을 한 번씩 훑고 작은 소리로 모의면접을 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 18명이 앉은 한문과 대기실에서.
5. 무의식 상태로 면접을 보다
사람이 어느덧 많이 빠져나갔다. 지금은 8명 정도가 남아 있는 상태다. 내 차례가 멀지 않다고 느껴지니 화장실을 다녀와야 할 것 같더라. 그래서 손을 들어 화장실에 가겠다는 표시를 했다. 여긴 화장실에 갈 때 함부로 갈 수가 없다. 아마도 화장실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한 번씩 차례를 배정받아야만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화장실에서 나오며 복도에 있는 감독관에게 시간을 물으니 글쎄 10시 40분이란다. 세상에 면접이 시작되고 고작 1시간 40분 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은 건데도 체감적인 시간으론 3시간 정도 흐른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시간 안 가더라.
○ 구상실
| 칠 판 | 복 도 | ||||||||||||||||||||
| 앞문 | |||||||||||||||||||||
| ▣전자 시계 |
□ 복도감독 | ||||||||||||||||||||
| 진행위원 책걸상 |
○ | 수험생 소지품 책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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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험생 책걸상 |
수험생 책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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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뒷문 | (폐쇄) | ||||||||||||||||||||
| 여 | 유 | 분 | 책 | 걸 | 상 | ||||||||||||||||
○ 심층면접(평가)실
| 칠 판 | 복 도 | ||||||||||||||||||
| ○ | |||||||||||||||||||
| 수험생 책걸상 |
책상 앞 가림막설치 |
앞문 | |||||||||||||||||
| 전자 시계 |
□ 복도감독 | ||||||||||||||||||
| 회수용상자 | ▣ | 진행위원 책걸상 |
○ | 수험생 소지품 책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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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평가위원 | |||||||||||||||||||
| 뒷문 | (폐쇄) | ||||||||||||||||||
| 여 | 유 | 분 | 책 | 걸 | 상 | ||||||||||||||
▲ 구상실과 면접실은 이런 분위기로 생겼다.
시험의 중압감에 한껏 눌린 구상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감독관은 곧 내 차례임을 알려주러 내 자리에 왔다. 차례임을 알게 되면 자신의 모든 짐을 꾸려야 한다. 가방에 모든 짐을 넣고 외투까지 손에 든 상태로 일어나니 아직 차례가 되지 않았는지 입구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더라. 잠시 앉아 있었더니 출입문이 열리며 나오라고 하더라. 가방과 외투를 들고 보무당당하게 교실 문을 나섰다.
지금이야말로 실전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그렇기 때문에 해온 그대로 맘껏 풀어내야만 하는 실전인 것이다. 솔직히 대기할 땐 너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떨릴 겨를 자체가 없었고 막상 이렇게 실전에 놓인 지금도 어안이 벙벙한 까닭인지 떨리기보다 어리둥절한 기분이 컸다. 구상실 앞에 가방과 외투를 내려놓으니 복도에 계신 안내자가 교실에 들어가도 된다고 알려주더라.
구상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간을 체크하는 계측관 한 분의 자리와 교실 한 복판에 시험지가 놓인 나의 자리 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이 넓은 공간이 이 순간만은 나만의 공간이 된다. 자리에 앉아 내가 가져온 볼펜을 써도 되는지 묻자, 계측관은 그래도 된다고 알려줬다. 펜을 꺼내고 쓸 준비를 마치니 계측관이 “시작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묻더라. 그래서 괜찮다고 대답을 하니 바로 시계의 타이머를 누르더라.
시험지를 뒤집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10분이란 시간 동안 문제 파악 및 답변의 구상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상형 3개의 문제와 즉답형 1개의 문제는 B4의 용지를 가득 채운 채 나를 반기고 있었고 역시나 시험의 중압감 앞에 한껏 억눌린 채 시험을 압도하려 하기보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갔다. 제대로 문제를 읽고 나서 답안을 구성하려 하기보다 ‘대충 이걸 묻나봐’라고 판단되면 그에 따라 무작정 써내려가기 바빴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네 문제를 다 풀고 나니 시간이 꽤나 남은 상황이라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을 좀 더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롭게 쓰며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자면 10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만큼 좀 더 신중하며 유연하게 대처했어도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럴 때 보면 시험이란 무게 앞에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올해 1차 시험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압감에 정신도 못 차린 채 헤맸고 ‘참 버겁기만 하다’는 절망을 한가득 느꼈었기 때문이다.
▲ 구상실의 분위기. 가운데 있는 책상에서 10분 동안 구상을 한다.
나 지금 뭘 말하고 있지
구상을 10분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은데 곧바로 면접장에 들어가 쓴 답을 토대로 말을 해야 한다. 구상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을 다듬는 것일 뿐 실제 채점이 되는 곳은 면접실에서의 나의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구상실을 나와 그 앞에 놨던 가방과 외투를 챙기고 면접실로 이동했다. 그곳에 가방과 외투를 놓으니, 들어가도 된다고 알려주더라. 가볍게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다섯 명의 채점관이 앞에 앉아 있고 원랜 교탁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책상과 의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더라. 아침에 면접실의 분위기를 봤기 때문인지 긴장은 그렇게 되진 않았다. 다른 곳은 3명의 채점관이 있는 교육청도 있고 서로 붙어 앉는 게 아니라 멀찍이 앉는 교육청도 있다고 하는데 여긴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마치 가족 같은 친근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들어가며 목례를 했고 자리에 서서 인사를 한 후에 “관리번호 14번입니다.”라고 말하고선 앉았다. 그랬더니 가운데 계신 감독관(임용에선 이 분이 전체적인 것을 조율하시는 분이다)이 “준비됐으면 시작하세요.”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이 있고 조금 텀이 있고서야 계측기가 눌려졌다. 그때부턴 정신없이 준비해간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연습할 때 강조했던 것처럼 최대한 앞을 보며 이야기를 하려 노력했고, 몇 가지를 뽑아야할 경우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첫째’, ‘둘째’를 강조하여 말했으며, 시선을 최대한 고르게 분산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한 분만이 고개를 든 채 나를 볼 뿐 나머지 분들은 채점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그만큼 나를 볼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
구상형 답변을 모두 마치고 잠시 기다렸다. 기다린 이유는 ‘즉답형 문제를 보세요’라는 지시가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기에 책상 위에 표창장 같은 틀에 들어 있는 즉답형 문제를 펼쳐 들었다. 이미 구상실에서 즉답형 문제의 내용은 파악한 터라 거기에 제시된 두 가지 답변 내용을 정리한 후에 신중하게 답변을 했다.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2분 정도나 시간이 남았다. 그만큼 시간 안배는 전혀 신경도 쓰지 못한 채 내가 준비한 것만 하기에 바빴다는 뜻이다. 연습할 때는 상황을 보며 느긋하고 천천히 말하던 습관을 들였었는데 막상 현실에선 그러질 못했던 것이다. 이래서 연습조차도 늘 실전처럼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말고 하라는 말이 있는 것이겠지.
모든 시간이 끝나고 나오니 신기하게도 딱 12시였다. 마음은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 뭔가를 크게 잘못한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이미 흘러버린 것을. 그리고 내일은 더욱 중요한 수업실연이 있는 것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놔두고 맞닥뜨릴 현실을 성심껏 대비해야 한다.
▲ 면접실의 분위기. 다섯 명의 채점관이 붙어 앉아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6. 두 번째 오니 훨씬 편안해진 대기실
면접이 끝나고 햄버거를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수업실연 준비는 작년엔 1차 시험이 끝나자마자 스터디를 하게 되어 4번을 해볼 수 있었지만 올핸 1차 시험이 끝나고 나선 준비를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1차 합격자 발표가 나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했었다. 처음에 차려진 스터디가 있었지만 나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와해되었고 날마다 한 번씩 수업실연을 해보는 것으로 방법을 바꾸고서 남은 기간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총 13번의 수업실연을 했으니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할 수 있으리라.
▲ 2차 준비를 위해 수업실연을 참 많이도 했다. 나의 창조적 착각 '난 수업을 좋아하니까'
2차 시험 마지막 날의 시작
드디어 대망의 수업실연을 해야 하는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5시 밖에 되지 않았다. 사위엔 어둠이 한가득 내려앉아 있기에 한 시간 정도 더 자고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하면 딱일 텐데, 긴장되어서인지 잠은 오지 않더라. 그래서 바로 씻고 짐을 챙긴 후 라면과 김밥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1차 시험을 볼 때도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어쩌나 걱정하긴 했었다. 작년 시험에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시험을 보러 가는 바람에 거의 비몽사몽인 채로 시험을 봤었다. 그만큼 긴장이 될 땐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터라 걱정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 면접을 볼 때나 오늘이나 이틀을 묵는데도 잠이 어찌나 잘 오던지 잠을 못 자서 흐리멍덩할 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제 시간에 일어나졌고 5시간 이상은 푹 잤으니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 보자면 1차 시험 때나 2차 시험 때나 컨디션은 최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어쨌든 오늘은 짐을 모두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정장을 차려 입고 짐을 꾸렸다. 올 때보다 지금은 짐이 더 늘어난 상황이다. 모텔에서 제공한 물들도 챙겼고 오늘은 늦게까지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점심과 간식도 넉넉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오늘은 걷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기에 7시 10분쯤에 모텔을 나섰다. 가방은 군장처럼 무거웠고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길은 어떻게 될지 모를 앞날을 예견하기라도 하듯 어둡기만 했다. 그나마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전혀 춥지 않은 날씨여서 다행이라나 할까.
▲ 아침을 간단히 먹고 모든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익숙해진 천안과도 잠시 후 안녕.
이틀째 오는 고사장, 왠지 친숙하다
버스 타는 곳을 검색해보니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곳과는 다른 곳에 있더라. 모텔에서 조금만 걸으면 되는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1번 버스를 타면 바로 학교로 가는데 정류장으로 한참 걸어가고 있는데 내 앞으로 1번 버스가 획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마치 작년에 102번 버스를 눈앞에서 두 번이나 놓친 상황처럼 말이다. 전주야 너무도 익숙한 지리에 버스를 놓친다 해도 걱정이 별로 되진 않았는데 이곳은 버스체계를 알지 못하다 보니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카카오맵을 켜고 검색을 해보니 길 건너편 정류장으로 버스가 5분 후면 도착한다고 되어 있더라. 부리나케 길을 건넜고 늦지 않게 버스가 와서 중학교 근처에 편안하게 도착했다. 걸으면 30분이나 걸릴 거리가 버스를 타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학교 앞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있더라. 그 중 매우 낯설지만 보기 좋은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한 커플의 모습인 듯 보였는데, 그들은 출입문 앞까지 같이 와서 여자친구를 배웅해주다가 들어가기 전에 함께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시험의 중압감이 강하게 느껴졌지만 이 커플에겐 중압감보단 이 순간을 즐기려는 풋풋한 마음이 느껴져 보기에 좋았다.
▲ 엄청난 육교를 건너 학교에 간다. 출입문엔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
모든 게 어제와 똑같다. 출입문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그리고 구상실과 수업실연실이 개방되어 있던 것도,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경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말이다. 이미 익숙해진 광경이란 생각 때문인지 그곳이 정말 나의 자리처럼, 그리고 늘 보아오던 광경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뿐인가, 더 재밌는 사실은 어제 얼핏 얼핏 봤다는 이유만으로 1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새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어젠 이 사람들을 볼 때 어마어마한 사람처럼 보이며 주눅이 들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동병상련의 감정을 지닌 동지처럼 느껴진다. 아마 이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나 보다. 어젠 몸서리 칠 정도의 정막이 감돌아 긴장감을 한껏 느끼게 만들었다면 오늘은 같은 학교에서 온 사람들끼리 속삭이듯 이야기하기도 하고 화장실에도 함께 가기도 했다.
2차 시험을 보기 위한 이 장소는 나에겐 기회의 장이자, 임용을 준비하던 내내 한 번 정도 꼭 오고 싶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하긴 이런 말 자체가 우문이겠지. 모든 임용 준비생들에게 이 자리는 당연히 와보고 싶은 자리일 테니 말이다. 그런 자리에 기어코 오고야만 것이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어떻게든 나온 결과는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 어제와 같은 배치의 자리들. 그새 친숙해졌다.
7. 면접보다 수월했던 수업 구상기
8시 40분쯤엔 드디어 관리번호 추천이 들어갔다. 어젠 앞에서부터 뽑아 3번째에 뽑을 수 있었지만 오늘은 뒤에서부터 뽑는다. 그러니 내가 뽑을 땐 세 개의 명찰만 남는 것이다.
▲ 어제보타 맘이 편안해지니 대기실에 있어도 절로 즐겁다.
마음 졸이던 관리번호 추천
어제도 잠시 고민하긴 했다. 손에 바로 잡히는 걸 뽑을까, 뒤적인 다음에 뽑아볼까 하는 고민. 그러나 막상 순서가 됐을 땐 손에 잡히는 걸 바로 뽑았고 그래서 결정된 번호가 14번이다. 그래도 면접은 수업실연에 비해 빨리 진행되기에 괜찮을 줄만 알았는데 막상 3시간 여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죽겠더라.
그런 경험이 있던 탓에 오늘은 더욱 더 앞 번호가 나오길 바라게 됐다. 수업실연은 충남의 경우 작년까진 지도안이 있고 수업실연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올해부턴 바뀌었다. 20분 구상을 한 후에 20분 수업실연을 바로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교육청마다 아직 지도안을 작성하는 곳이 몇 군데 남아 있지만 점차 지도안 없이 수업을 바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지도안을 작성하는 것에 비해 시간은 대폭 단축되었다 해도 이번처럼 18명이나 수업을 해야 하는 이상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오늘은 5시에 일어난 탓에 조금씩 졸음이 밀려오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최근의 생활패턴으로도, 수업실연을 아침에 연습했던 리듬으로도 아침에 수업실연을 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과연 이 바람이 진짜로 이루어질까?
뒷 번호부터 돌고 돌아 마침내 내 차례가 됐다. 명찰은 고작 3개만이 남은 상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손에 잡히는 걸 바로 뽑겠다고 맘을 먹은 터라 주머니에 손을 넣자마자 명찰을 바로 뽑았다. 주머니에서 빼내는 그 순간에도 ‘제발’이라 연거푸 외칠 정도로 잔뜩 긴장하며 말이다. 그래서 뽑고 번호를 확인할 때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더라.
그런데 막상 번호를 확인하고 나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무려 4번이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최상의 번호가 뽑혔기 때문이다. 솔직히 1번이면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처음에 들어가는 만큼 긴장은 될 테지만 빨리 하더라도 내가 해온 것들을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4번이 뽑히고 보니 최상의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4번 정도면 마음도 충분히 추스를 수 있고 정신도 가다듬을 수 있어 최상의 컨디션에서 수업실연을 하게 되니 말이다.
○ 구상실
| 칠 판 | 복 도 | ||||||||||||||||||||
| 앞문 | |||||||||||||||||||||
| ▣전자 시계 |
□ 복도감독 | ||||||||||||||||||||
| 진행위원 책걸상 |
○ | 수험생 소지품 책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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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험생 책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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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뒷문 | (폐쇄) | ||||||||||||||||||||
| 여 | 유 | 분 | 책 | 걸 | 상 | ||||||||||||||||
▲ 구상실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구상실에서
드디어 한 시간이 흘러 내 차례가 되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짐을 모두 챙겨서 나갔고 구상실 앞에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당당히 내가 준비해온 검은색과 빨간색 펜을 모두 꺼내 놨다. 구상실에 앉아 있던 선생님은 “준비됐으면 시작할까요?”라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지를 펼쳐 확인해보니 본문은 ‘借鷄騎還’이었고 시험지는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더라. ‘借鷄騎還’은 이미 수업실연을 해봤던 거라 조금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앞쪽엔 조건이나 수업에 대한 내용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고 두 번째 장엔 본문 내용, 그리고 네 컷 만화로 구성된 이야기 흐름, 재치 있는 문장을 택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적도록 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장엔 지도안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채워져 있지만 학습목표 1과 학습목표 3번만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어 ‘학습목표1=수업실연1’이라 되어 있고 ‘학습목표3=수업실연2’라고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을 보며 열심히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구상해놨었는데 세 번째 장에 쓰여 있는 지도안을 보는 순간 멍해졌다. 지도안에선 학습목표 1과 3만을 수업실연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늘 수업실연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문법적인 설명⇒내용이해⇒가치관 학습’을 수업했던지라, 그 방식과는 다른 시험 문제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작년과는 달리 문법을 세 가지나 설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자의 여러 쓰임에 대해선 ‘善’을 가지고 설명해야 했고 ‘蔬菜’는 단어의 짜임에 대해, ‘騎何物而還’은 문장의 유형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마치 2018년 문제로 회귀한 듯이 문법을 여러 가지나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3번이나 수업실연을 하며 문법 설명에 대한 기본 틀을 만들었기 때문에 전혀 걱정이 되진 않았다. 그래서 넉넉하게 시간까지 체크하며 지도안을 구성했고 수업할 내용을 머릿속에서 다시 갈무리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 확실히 20분은 좀 더 넉넉하게 느껴진다.
8. 모든 경험은 발판이 된다
최악의 수업실연을 올해 경험했었다. 첫 수업실연을 하던 날 열심히 준비한 지도안에 따라 실연했었는데 그때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던 것이다. 수업을 보고 있던 사람은 불만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가득 담아 수업을 구성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수업의 기본 방침은 ‘문제가 될 만한 건 하지 말자’는 주의였는데 그것에 위배된 지도안을 구성했고 수업을 했으니 그런 반응을 봐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평가자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음에도 수업을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거였다. 그건 그저 벽을 보고 수업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에 대해 반감이 가득한 존재를 앞에 두고, 전혀 들을 맘이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수업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업실연(평가)실
| 칠 판 | 복 도 | ||||||||||||||
| 수험생 | |||||||||||||||
| 교탁 | 앞문 | ||||||||||||||
| ▣전자 시계 |
□ 복도감독 | ||||||||||||||
| 회수용상자 | ▣ | 진행위원 책걸상 |
○ | 수험생 소지품 책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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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평가위원 | |||||||||||||||
| 뒷문 | (폐쇄) | ||||||||||||||
| 여 | 유 | 분 | 책 | 걸 | 상 | ||||||||||
▲ 차계기환은 수업실연을 연습하며 이미 했었다.
경험은 디딤돌이 된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겪는다는 건, 오히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위로가 되긴 한다. 적어도 이곳 수업실연장에선 나에 대해 그렇게 반감을 가진 사람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소에 준비한 대로, 그리고 구상실에서 수업을 구상한 대로 흐트러짐 없이 해나가면 된다.
교육청마다 면접 채점관과 수업실연의 채점관이 다른 곳도 있지만 충남은 같았다. 어제 면접시험 때 뵈었던 다시 보니 그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 혼자는 왠지 모를 반가운 마음이 생기더라.
수업은 거의 패턴화된 방식대로 진행했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수업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수시로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이 대답했다고 가정을 하고 “맞아요. 우리가 저번에 했던 문장의 유형엔 바로 그런 것들이 있었죠.”라고 피드백을 해주며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문법을 세 개나 설명하려니 시간 배정이 애매하긴 했다. 연습할 땐 문법은 하나 정도만 건들고 내용 이해나 가치관 함양과 같은 활동을 위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번 수업실연을 하며 문법에 대한 수업을 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기본틀을 갖춰 놓아 설명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단지 시간을 평소와는 다르게 배정해야 된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지혜의 이해’에 관해선 모둠별로 토의하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의견을 모아 재치가 담겨져 있는 문장을 고르고 해석을 하게 한 후 왜 그런 문장을 골랐는지를 물어봤다. 원래의 구상은 ‘當斬吾馬’, ‘借鷄騎還’, ‘大丈夫不惜千金’ 세 가지를 고르고 그 이유를 말한 후에 세 가지 중에 좀 더 핵심적인 내용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했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할 땐 시간이 촉박할 것도 같고 너무 수업 자체가 늘어지는 것도 같아 ‘大丈夫不惜千金’은 제시하지 않고 세 번째 모둠도 ‘借鷄騎還’을 선택한 것으로 가정을 하고서 수업을 진행했다.
배웠던 내용을 다시 회상해보고 이 수업을 통해 전해주고 싶은 내용까지 전해주고 마쳤을 땐 1분 정도 남은 시간이더라. 김상곤 교감 선생님의 특강을 들었을 때 교감선생님은 20분을 딱 맞춰 끝내길 신신당부했었다. 그 이유는 막상 현장에서 수업을 하면 수업이 빨리 끝났다고 교사가 나가는 경우는 없듯이 수업실연이라 해서 조금이라도 대충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건 결점의 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하긴 했다. 1분을 “질문 있나요?”라고 하며 시간을 끌어볼 것인가, 그냥 여기서 마칠 것인가를 말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시간을 끄는 것도 같고 19분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시간인 것도 같아서 그냥 거기서 수업을 마치며 “이상으로 수업실연을 마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전북의 경우엔 수업 판서에 대해 수업에 대한 평가 중 판서를 보며 평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수업실연을 할 때에도 판서를 최대한 많이 하려 노력했었는데, 충남은 전북과 달랐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채점관 한 분이 나오시더니 순식간에 지워버렸으니 말이다. 그건 충남은 충남만의 채점기준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 수업실연장의 분위기. 어제 비슷하지만 교탁이 있고 보드마카가 갖춰져 있어 좋다.
마치고 나오니 축하해주듯 눈이 내리네
수업이 끝나고 나니 아무래도 좋았다. 막상 실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이렇게 남 앞에 서서 나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1차 합격자 발표가 나오던 날에 ‘1차만 합격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2월 7일에 최종 결과발표가 나올 때까진 당당하면서도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순간 뭔가 빠뜨린 듯한 묘한 기분은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잘 마쳤고 2주 정도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며 보내면 되니 말이다.
다시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한날 한 시도 편안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힘든 나날들을 보냈었다. 그런데 지금부턴 어쨌든 모든 것을 마쳤으니 그런 불안감 따위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면 그뿐이다. 내가 이루어낸 것들에 대해, 그리고 이 순간이 드디어 왔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며 푹 쉬어도 된다. 오전에 수업실연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마치 그걸 축하해주기라도 하듯 끝나고 나오는 길에 눈이 내리는 것도, 그 모든 게 마치 축복처럼 느껴졌다.
▲ 터미널에 도착하니 눈이 내리네. 이틀 동안 잘 있다가 갑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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