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걸음걸이에 어린 행복으로 천안에 오다
임용 2차 시험은 이틀에 걸쳐 실시된다. 하루는 면접을 보며, 하루는 수업실연을 한다. 그런데 예년과 달라진 게 있다. 그건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수업실연을 첫째 날에 하고 면접을 둘째 날에 했었는데 올해부턴 어떤 이유에선지 면접을 첫째 날에 하고 수업실연은 둘째 날에 하도록 바뀐 것이다. 순서가 바뀐 것에 따른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나의 입장에선 이번처럼 바뀐 게 더 낫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 이유는 충남에선 이번에 11명의 한문교사를 선발한다. 그래서 모두 1차에 뽑힌 인원은 18명(1명은 장애)이나 된다. 그러니 18번째까지 수업실연을 하려면 4~5시에나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처럼 수업실연을 첫째 날에 한다면, 거의 마지막 번에 배정된 사람은 면접시험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채 면접을 봐야만 하니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 올핸 특이하게 면접부터 본다.
임용시험을 위해 다시 천안에 올라오다
시험은 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실시되니 월요일엔 천안에 올라가야 했다. 이미 1차 시험을 볼 때도 왔던 곳이긴 하지만 2차 시험을 보러 한 달 보름만에 다시 올라가니 기분이 남다르더라. 그땐 복장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가방만 챙겨 가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정장을 챙겨 가야 하니 오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가방엔 교과서 한 권과 두꺼운 면접책과 태블릿과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가니 1차 시험을 보러 올라갈 때보다 짐은 더 많았고 그만큼 더 무거웠다. 이런 느낌은 마치 국토종단을 하러 떠날 때와 같은 느낌이다. 배낭 가득 짐을 한가득 싣고 목포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릴 때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기분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길을 나선다.
▲ 짐을 쌌다. 짐을 싸고 보니 시험을 본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천안에 도착하자마자 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1차 시험을 봤던 학교보다 2차 시험을 보는 학교가 터미널에서 더 멀리 있더라. 그래서 버스는 돌고 돌아 학교 근처에 정차했고 드디어 내렸다. 시험장은 사거리에 있는데 이곳 사거리는 매우 특이했다. 사거리에 횡단보도는 없이 모두 육교를 통해서만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거리 위엔 원 모양의 육교가 있어 올라가선 원을 따라 걸어가 내려가야만 했다. 그러니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보다 여러모로 시간이 더 걸리고 에너지가 더 드는 곳이었던 거다. 그런 특이한 육교를 건너 내려왔고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까스로 찾았다. ‘2020학년도 충청남도 중등교사 임용(제2차) 시험장’이란 현수막이 반갑게 맞아주더라. 2차 시험을 봤던 사람이라면 이 현수막을 보면서 마음을 다독였을 것이다. 나도 이 순간 ‘드디어 실전에 놓였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생각을 다듬었다.
▲ 학교로 가는 사거리엔 이처럼 동그란 육교가 놓여 있다. 이곳을 건너야만 고사장을 둘러볼 수 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내일은 걸어서 학교에 갈 생각이기에 거기서부턴 걸어서 숙소까지 가봤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와 숙소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더라. 거리상으론 멀지 않은데 신호등을 여러 번 건너야 하니 신호 사정에 따라 시간은 더욱 길어질 게 뻔한 거리였다. 정장이 든 가방과 짐이 한껏 든 책가방을 매고 터벅터벅 걷고 있으려니 절로 도보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걷는 걸 무지 좋아한다. 초등학생 땐 교회에 다녔었는데 집에서부터 교회까진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아침에 갈 땐 당연히 버스를 타고 교회에 갔지만 예배가 끝난 후 올 땐 선택의 기로에 놓여 고민하곤 했었다. 그때의 선택이란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갈 것인가? 새우깡을 먹으며 걸어갈 것인가?’하는 거였는데, 버스비와 새우깡의 가격이 같았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주 새우깡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새우깡을 사서 1시간 30분 거리를 걸어오곤 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처럼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국토종단도 할 수 있었고 사람여행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걸으니 힘이 들긴 해도 절로 기운이 샘솟았다. 뭐든 부딪혀서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처음 보는 2차 시험도 맘껏 해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 막막한 현실에 숨고만 싶을 때 이처럼 걸어볼 일이다. 걷다보면 열망이 피어오르고 희망이 어린다. 희망을 간직한 채, 열망을 안은 채 이제부터 본격적인 2차 시험 후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 처음으로 2차 시험을 보니 매우 당연하게도 2차 시험장 현수막을 보게 됐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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