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년을 돌아 다시 시작한 임용 공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보았던 5번의 임용시험에선 1차 합격조차 해보지 못한 채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렇게 5번의 임용시험을 끝으로 더 이상 임용시험은 보지 않겠다고 맘을 먹었고 단재학교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 첫 임용시험을 봤던 때가 2006년이다.
교육과 글쓰기란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단재학교에서의 7년
단재학교에서 생활한 7년이란 시간 동안 임용은 더 이상 꿈꾸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간 생각해왔던 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다 실험해볼 수 있었다. 아이들과 자주 전국 곳곳을 싸돌아다녔고 시를 그림이나 소설 등의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해보는 수업도 했으며, ‘우리끼리 프로젝트’라는 것을 통해 아이들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해 보드게임을 만들어보고 꿈틀이축제에선 발표까지 하며 상을 타기도 했으며, 전주와 부산영화제는 물론 각종 영화제에도 다니며 영화의 흐름을 일별하기도 했고 ‘영원한 사랑’, ‘다름에의 강요’, ‘DREAM’, ‘Fake Book’과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그날의 생존자들’, ‘남한강 도보여행’,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과 같은 리얼버라이어티한 성격의 영상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단재학교에서의 7년은 교육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며 맘껏 좌충우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뿐인가, 이 시간 동안 나 스스로 가장 크게 얻은 건 뭐니 뭐니 해도 글쓰기에 대한 생각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는 점이다. 단재학교는 다음 카페를 통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글을 쓰며 의견을 나누고 그에 대해 교사나 학부모들이 언제든 확인하며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학교였다. 학교에서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카페에서의 활발한 의사소통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낮춰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때부턴 좀 더 자세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의 글들을 쓰기 시작했고 예전엔 일기장에 쓰며 혼자 볼 것도 카페에 공개하며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변화를 더 이상 나만의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당당히 남들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 단재학교에서의 7년은 교육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키우기에 최적의 순간이었다.
7년 만에 다시 임용에 도전하다
그렇게 재밌게 다녔던 단재학교를 2018년 2월부로 그만 두게 되었다. 2011년에 임용시험 공부를 그만두고 나서 한 번도 ‘임용시험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단재학교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며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단재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막막해지더라. 그래서 준규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한문 교사로 현직에 있는 경일이 형을 만나 답답한 심정을 풀어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정확히 결정된 게 없었기 때문에 다시 출판 편집자로 출판사에 문을 두드려볼 것인가, 다른 대안학교를 찾아 교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제3의 길로 갈 것인가 고심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쯤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시 임용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문제가 될 건 없더라. 마치 2011년에 임용공부를 그만둘 때 ‘다시 임용공부를 하게 된다면 그건 내 삶의 철학을 배반한 행동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듯하지만, 그 또한 내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누구도 나에게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더욱이 과거 5년 동안 임용공부를 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모든 조건이 훨씬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돈이 없어 쪼들리는 환경 가운데서 공부를 해야 했고, 학자금 대출 환급일도 다가오고 있어 맘 한 구석에 불안을 가득 안은 채 공부를 해야 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모아둔 돈도 있어 편안하게 공부만 하면 됐었고 학자금도 모두 갚았기에 불안에 떨어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늘 실패로 점철된, 그래서 용기를 내기 힘들었던 임용공부를 다시 해보자는 생각을 굳히게 됐고 7년 동안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전주로 내려온 것이다.
▲ 그만두기로 하고선 많은 사람을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다.
처음으로 이룬 쾌거, 1차 합격
막상 전주로 내려와 공부를 하는 과정 속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7년 만에 다시 본 임용시험에선 합격점수에 근접한 점수를 받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작년 11월에 본 임용시험에선 한 번도 이루어본 적이 없는 1차 합격을 마침내 하게 되었다.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이룬 쾌거이니 합격자 발표가 나오던 날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 ‘1차 1순위(공립)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왜 감회가 없었겠는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하는 마음에 뛸 듯이 기뻤으며, ‘하면 되긴 하는 구나’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렇게 다가온 처음의 기회를 가슴 떨리는 희열로 맛보았고 처음으로 2차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과연 임용 2차 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며 나는 그 안에서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되면서도 기대가 됐다.
▲ 처음으로 해본 1차 합격. 감격스럽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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