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과 철학이 입맞추는 순간
현대인은 ‘달콤한 심리 치유 에세이’나 ‘스파르타식 자기계발서’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철학은 심리 치유 에세이처럼 친절하게 위로해주지도 않고, 자기계발서처럼 손쉽게 성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철학은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 저마다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는다. 나는 철학의 그 가차 없음, 인정사정없음이 마음에 든다. 철학의 무대 앞에 서는 순간, 우리들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조건’들은 잠시 사라지고, 우리는 무장해제 상태로 평등해진다. 니체의 말처럼 철학은 ‘모두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비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의 마음의 귀가 얼마나 열려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냐에 따라, 철학의 메시지는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영화와 철학의 만남만은 아니다. 영화와 철학을 핑계로 우리가 이 광막한 혼돈의 세계를 견디기 위해 필요로 했던 삶의 에너지를 찾는 과정의 이야기다. ‘개념의 명료성’으로 다가온 철학자들이 아니라 ‘기이한 파동’으로 내 심장을 고동치게 했던 철학자들이 내게 걸어온 ‘말 밖의 말(言外言, 언외언)’의 메시지를 들을 담고 싶었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주요개념 총정리와는 아무 인연이 없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굳이 ‘철학책’을 뒤져 개념 정리를 하지 않더라도, 도저히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미션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사랑에도 일에도 인생에도 실패한 것만 같을 때, 내가 사랑한 철학자들의 문장들을 안락의자 삼아 잠시 삶의 질주를 멈추고 몽상과 휴식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나는 철학적 개념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의 삶과 철학이 아슬아슬하게 입 맞추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나는 『시네필 다이어리』가 단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생활의 연료가 아니라, 때로는 인생 전체에 잠시 ‘인터미션’을 가지면서 처음부터 삶을 리모델링하는 인생의 쉼표가 되기를 빌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되고 싶은 책,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되고 싶은 책, 다이어리라기보다는 러브레터처럼 읽히는 책이 되고 싶어 한다. 당신이 가장 외로울 때, 당신이 가장 힘겨울 때, 이 사랑스런 철학자들의 독백은 오직 당신의 심장에만 남모르게 꽂히는, 유독 당신에게만 다른 아픔으로 꽂히는 달콤한 불화살이 될 것이다.
P.S. 눈 밝은 독자는 내가 철학과 영화 사이의 미팅을 주선한답시고 불쑥불쑥 꿈보다 해몽식의 각종 ‘오버’를 감행하고 있음을 눈치 챌 것이다. 그 난데없는 오버액션은 바로 영화나 철학을 핑계로 내가 꿈꾸는 우리의 미래를 살짝 끼워 팔기(?)하는 것이다. 우리 함께 이런 꿈을 꾸어보지 않겠냐고 유혹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꿈을 꾸어도 되겠느냐고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쁘고 힘든 시간에도 내 블로그에 ‘마실’을 와준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용기를 내어 감히 꿈꾸고 감히 사유할 수 있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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