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
『열하일기 1, 2, 3』 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 / 『열하일기 상, 중, 하』 리상호 옮김, 보리, 2004
『열하일기』 완역본은 ‘돌베개’ 판과 ‘보리’ 판 두 가지다. 후자는 북한판을 보리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것이다. 전자는 명실상부한 완역본이다. 이전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나온 것이 있긴 했지만 한문식 고어투가 많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 ‘돌베개’ 판은 그런 단점을 말끔히 해소한 역작이다. 꼼꼼하고 치밀한 고증으로 기존의 오역을 잡아내고 동시에 문장도 아주 깔끔하고 매끄럽다. ‘보리’판은 북한판이라 일상적 구어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 하』(개정판) 고미숙ㆍ김풍기ㆍ길진숙 옮김, 북드라망, 2013
『열하일기』를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한 책, 「도강록」에서 「환연도중록」에 이르는 연암의 여정 사이사이에 「황교문답」ㆍ「환희기」ㆍ「옥갑야화」 등 연암의 명문장을 선별해 엮어 펴냈다. 18세기 말의 문화적 시각자료를 풍부하게 담았고, 본문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현대어 번역으로 누구나 『열하일기』의 진수에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한문학을 전공한 김풍기, 길진숙 선생을 꼬드겨 2003년부터 5년간 공동작업한 결과물이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개, 1998
연암의 둘째 아들인 박종채가 쓴 『과정록(過庭錄)』을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언어로 번역한 책. 연암의 일상, 문장론, 교유관계 등이 두루 망라되어 있는, 일종의 평전이다. 이 책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에 나오는 ‘삽화’들은 대부분 이 책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읽을수록 계속 새롭게 다가오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 연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태학사, 2000
연암의 산문들은 매혹적인 만큼이나 헷갈린다. 알 수 없는 흡인력에 한참 따라가다 보면, 머리가 띵해지는 게 태반이다. 웬만한 서구식 이론으론 ‘쨉’도 날리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안내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책이 그런 경우다. 연암의 산문 중 에센스만을 모아 해설을 붙였는데, 번역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각 편마다 달린 해설 또한 감동적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나 같은 ‘문외한’ 이 감히 『열하일기』에 대한 책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정민 선생께 깊이 감사드린다. 여기 실린 글들과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김혈조 편역, 학고재, 1997)를 함께 읽으면 연암 산문의 진수는 대략 맛볼 수 있다.
『열하일기 연구』 김명호, 창작과비평사, 1990
『열하일기』에 대한 가장 방대한 연구 성과.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열하일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에 해당된다. 문체에 관한 치밀한 분석 및 『열하일기』 각종 버전들에 대한 섬세한 고증, 텍스트에 대한 풍부한 해석 등, 일일이 주석을 달진 못했지만, 본문의 곳곳에 이 책의 흔적이 담겨 있다. 특히 2부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열하일기』와 문체반정’은 이 책과 「문체와 국가장치: 정조의 문체반정을 둘러싼 사건들」(강명관, 『문학과 경계』 2001년, 가을호)을 참조하였다. 『열하일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홍대용 지음, 김태준 외 옮김, 돌베개, 2001
담헌 홍대용은 연암보다 여섯 살이나 위다. 뛰어난 과학자인 데다 음악, 서예 등 예술방면에도 조예가 깊었다. 지동설, 지전설 및 『의산문답』 등으로 중세를 전복하는 사유의 장을 열었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 들어온 양금의 탄주법(彈奏法)을 하룻밤 만에 터득하여 널리 전파하기도 했고, 풍금의 원리를 수학적 이치에 따라 파악하는 통찰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담헌그룹’이 아니라 ‘연암그룹’이라 하고, 담헌을 연암의 친구들 가운데 하나로 분류하는 걸까? 그게 궁금한 이들은 이 책을 꼭 읽으시라.
담헌은 연암보다 15년이나 앞서 중국을 다녀왔다. 당연히 중국 기행문인 『담헌연기(湛軒燕記)』를 남겼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글판 버전을 동시에 남겼다. 그것이 『을병연행록』(소재영 외 주해, 태학사, 1997)이다. 이게 정말 담헌의 작인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당시 사대부들에게 있어 한글로 된 저작을 남긴다는 게 그만큼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지었든 한글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기 짝이 없다. 한글판이라 만만해 보일 테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정성어린 주석과 해설에도 불구하고, 고어체가 난무하는 원문은 일반독자들에겐 한문 못지않은 ‘외국어’일 뿐이다. 그래서 다시 그것을 한번 더 현대판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전문(全文)이 워낙 방대해 군데군데 살을 좀 빼, 넉넉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만들었다.
아,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 책에는 담헌 홍대용의 성격 및 풍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술을 벗삼아 다닌 연암과는 달리 담헌은 술을 입에도 못 댄다. 그리고 초상화에서도 드러나듯, 연암의 카리스마 넘치는(좀 펑퍼짐하긴 하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단아하고 청초하기 이를 데 없다. 한마디로 담헌은 기질적으로 남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무리를 이끄는 유형의 인물은 아니었던 것. 오히려 뒤에서 지켜보고 받쳐주는 그런 천재 (참, 드문 경우다)였던 것이다. 그렇게 기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연암과 담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절강성의 세 선비(엄성, 육비, 반정균)와 우정을 나누는 대목이다. 담헌과 ‘세 친구’는 유리창에서 만나 필담을 주고받으며 ‘천애의 지기’가 된다. 첫눈에 반해서 애틋한 정을 주고받는 장면하며, 인생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견해들을 토로하다 담헌의 지적 통찰력에 압도되는 장면 등은 당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사유와 감성의 결을 읽기에 충분하다. ‘짧은 만남 뒤의 긴 이별’! 이들의 우정은 이후 평생을 두고 계속되어 수많은 편지와 에피소드를 남긴다. 연암이 쓴 담헌의 묘지명도 그중 하나다.
『열하일기』와 함께 읽을 만한 여행기라면 나는 단연 이 책을 꼽을 것이다. 연암의 가장 친한 친구의 것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국경을 가로지르는 지성사의 교유라는 측면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협객 백동수』 김영호, 푸른역사, 2002
연암의 지기들 가운데 한 사람인 백동수의 일대기다. 백동수가 무인이기 때문에 협객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이 실려 있다.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박지원 등과 특히 가까웠기 때문에 연암그룹에 관련된 자료도 꽤나 보인다. 박지원에게 연암협을 안내해주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학민사, 1996)도 번역, 출판되었다. 창검술에 대한 자세한 그림과 사진도 실려 있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며 조선의 무예를 익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아울러 다음의 책들을 섭렵하면, 연암 시대의 사상사적 지형도가 대략 잡힐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인용문들은 모두 이 책들에 의거했다.
• 이옥, 『이옥전집 1,2』,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역주(소명출판, 2001)
• 이옥,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심경호 옮김 (태학사, 2001)
• 채운,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북드라망, 2013)
• 박제가, 『궁핍한 날의 벗』, 안대회 옮김(태학사, 2000)
• 정약용, 『뜬세상의 아름다움』, 박무영 옮김(태학사, 2001)
•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박석무 편역(창작과비평사, 1991)
• 정약용, 『다산문학선집』 / 다산논설선집』, 박석무 정해렴 편역(현대실학사, 1996)
• 이덕무, 『한서이불과 논어병풍』, 정민 편역(열림원, 2000)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 2, 3』 김용옥, 통나무, 2002
아는 사람들은 알 터이지만, 달라이라마는 내 마음의 스승이다. 영적 인도자일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일종의 화두다. 제국주의도 아니고 민족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의연하게 갈 수 있는 그 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자비가 한 국가의 정치이념이라는 게 대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등등, 그의 글을 볼 때마다 내게는 경이에 찬 물음들이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김용옥 선생님이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정리한 것이다. 1, 2권은 인도문화 답사기쯤 될 것이고, 진짜 만남은 3권에서 이루어진다. 도올 선생 특유의 박학과 재기발랄함,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유머와 자비가 어우러져 멋진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위에다 연암과 판첸라마의 만남을 ‘오버랩’시키면 감동과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노마디즘 1, 2』 이진경, 휴머니스트, 2002
우리 연구실이 정말 ‘수유리’에 있을 때 처음 개설한 강좌가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이었다. 당시 수강생은 주로 국문학 전공자들이었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천의 고원』은 사실 한 페이지는 고사하고, 두세 줄을 연달아 읽기가 힘든 책이다. 그럴 경우, 대개 덮어버리면 그만인데, 뭔가 끌리는 게 있어 쉽게 덮어버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강사와 학생들이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사실 뭘 배웠는지는 도통 생각이 안 난다. 그냥 매번 즐거웠다는 것밖에는). 그때의 성공을 발판으로 동숭동으로 진출했다. 와이 빌딩에 있을 때 다시 또 강좌를 열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왔다. 역시 궁합이 잘 맞았다. 다시 대학로 한복판, 석마 빌딩으로 옮긴 뒤, 다시 한번 시도했다. 역시 반응이 뜨거웠다. 그리고 마침내 강의록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 책에는 연구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가? 좀 두껍다. 두 권 합해 무려 1,550페이지나 되니. 다행히도 아주 쉽고 재밌다.
유목, 유목민(노마드), 리좀, 수목, 표현기계, 배치, 계열, 탈영토화, 재영토화 등등 본문에 나오는 좀 낯설고 특이한 개념들은 모두 이 책에서 배운 것이다.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고미숙, 북드라망, 2013
역설적이게도 나는 『열하일기』를 통해 다산을 만났다. ‘실학자’라는 이름으로 한통속으로 묶어놓았던 연암과 다산, 그들이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라는 반전을 보여준 것은 『열하일기』였다. 그래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말미에 이 둘을 다룬 짧은 글을 실었고, 언젠가 이들의 차이가 연출하는 ‘평행선의 지도’를 그려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임꺽정』을 만나고, 『동의보감』을 만나느라 바로 이 작업에 착수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2012년 여름, 『열하일기』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연암과 다산의 평전을 쓰겠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된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평전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하여, 평전이되 평전이 아닌 책을 쓰고자 했다. 두 사람은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물과 불, 『열하일기』와 『목민심서』, 노마드와 앙가주망(engagement, 정치참여), 패러독스와 파토스 - 두 사람의 운명과 사유와 글쓰기가 갈리는 지점에서 탄생되는 사건들을 추적하다보니 전혀 예기치 못한 ‘생의 지도’가 그려졌다. 게다가 그 지도를 손에 쥐게 되자 나도 모르게 담대해졌다. 연암과 다산뿐 아니라 이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해서도 좀더 조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다산과 연암이라는 두개의 별 외에 이탁오, 이토 진사이, 스피노자, 볼테르라는 별들이 각축을 벌였던 18세기 지성사 전반을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이 책 두개의 별 두 개의 지도가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이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앞으로 2탄, 3탄도 탄생될 것이라는 의미다. 10년 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초판에서 ‘두별’의 탄생을 약속했듯이, 이제 개정신판에서 ‘두별’ 이후를 독자들께 약속드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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