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명나라 멸망 시에 표류하던 중국인들
이 시는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우리 땅으로 표류해왔던 중국인들의 말을 듣고 감회를 표현한 내용이다. 그네들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몰래 무역을 하러 나섰다가 표류한 것이다. 그들의 말인즉 단순한 생업이 아니고 조국의 회복을 위한 자금 마련이 목적이라 한다. 그런데 이조 정부는 이들을 청국으로 강제 송환하는 것이다. 작중의 현재가 곧 그들이 억지로 끌려가는 상황이다. 지금 그들은 “진작 바다에 빠져나 죽을 것을 / 구차히 살아서 되놈 세상에 치욕을 당하게 되다니[蹈海悔不死 苟活恥帝秦]”라고 하며 바다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오히려 통한하는 것이다.
『설초집』에서 「표류한 상인들의 노래」은 정미, 즉 1667년(현종 8년, 중국은 강희 6년)에 쓴 것으로 밝혀져 있다. 시인 자신의 직접적 견문을 근거로 쓴 것이라 여겨진다. 당시 청조는 중국 전역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한족의 저항이 남방의 각처에서 아직 완강하였다. 정성공(鄭成功)의 활약은 그 무렵이며, 오삼계(吳三桂)가 반기를 든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의 일이었다. 청조는 해금(海禁) 조처를 취해 무역을 일체 금지했다. “배 타고 장사를 다녀 군량을 조달”한다는 그네들의 술회는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충분히 있을 법하다.
지금 시인은 송환당하는 그들의 처지를 몹시 안타깝게 바라보며 당국자의 처사에 분노한다. 이러한 시인의 정서 속에 명에 대한 회고적ㆍ명분론적 의식이 깃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누군들 나와 형제 아닐까 / 남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지[孰非吾兄弟 癢痾皆切身]”라고 인도주의적 정신이 들어 있으며, 다른 한편 민족적 입장에서의 애국심이 드러난다. 특히 끝맺는 구절에서 삼전도의 사적을 은근히 쳐들어 각성을 요망하는데 집권세력이 주창하는 북벌론의 허위성을 암시한 것도 같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8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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