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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태 - 표상행(漂商行)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최승태 - 표상행(漂商行)

건방진방랑자 2021. 8. 17.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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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 잡혔다가 조선에 표류한 바다 상인들의 이야기

표상행(漂商行)

 

최승태(崔承太)

 

可憐漂海商 九十有五人 가련쿠나. 바다에 표류하는 상인 95.
自言泉漳客 生少居海濱 스스로 말하네. “천주와 장주[각주:1]의 나그네로 어려서부터 바닷가에 살았죠.
每憤中土裂 天步方艱屯 매번 중국의 찢어짐 분개하였고 한 나라의 운명이 곧 고난에 시달렸지요.
販貨充軍儲 徇國不爲貧 재화를 벌어 군인의 창고 채우니 나라에 다한 것이지 가난을 위한 건 아니었죠.
五月辭鄕土 遙向日東垠 5월에 고향에서 인사하고 아득히 일본의 가장자리로 향했어요.
張帆拂烟瘴 捩柁淩波臣 펼쳐진 돛은 장기(瘴氣)를 떨쳐버리고 휘두른 키에 파신[각주:2]을 두렵게 하죠.
層飈激陽侯 驚濤噴嶙峋 겹겹이 쌓인 태풍이 양후[각주:3]를 격동시키니 놀란 파도가 드높이 내뿜어지네.
日月蕩洶湧 天地入渾淪 해와 달은 세찬 용솟음 속에 움직이고 천지는 흐릿함 속에 들어가죠.
危命寄一葉 萬死喪我神 위태로운 목숨 한 잎사귀에 붙어 만 번 죽을 지경에 나의 정신은 아득해지죠.
浮沉到此境 永擬歸鄕隣 떴다 잠겼다 하다가 이 땅에 이르렀으니 길이 고향 이웃에 귀의했다 생각했어요.
豈料免鯨鯢 復入犬羊倫 어찌 헤아렸겠으리오? 고래밥 면하자 다시 오랑캐 무리[각주:4]에게 잡혀갈 걸.
昔日死爲懼 今日生苦辛 옛날엔 죽을 게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살아서 괴롭고 힘겹다오.
蹈海悔不死 苟活恥帝秦 바다를 밟았지만 죽지 못함 후회스럽고 구차하게 살아 남아 진나라 황제에 부끄러웠죠.
人生抵險艱 懷抱向誰陳 인생이 험난함과 가난함에 던져져 회포 품었지만 누굴 향해 진술하리오.
故鄕隔雲海 擧目無六親 고향은 운해로 떨어져 있으니 눈을 들어도 친척도 없지요.
北風吹朔雪 流淚濕行塵 북풍에 눈을 불어오니 흐르는 눈물에 날리던 먼지 적시네요.”
聞此感我心 髮立衝冠巾 이것을 듣고 내 마음에 느꺼움이 있어 머리칼 곤두서 망건 닿는 듯했다.
皇朝三百年 四海同王春 명나라 300년에 사해는 하나의 정월을 보냈는데
孰非吾兄弟 癢痾皆切身 누가 나의 형제가 아니겠는가? 가려움과 아픔 모두 몸에 절실한데
况當死生際 豈可徒嚬呻 하물며 죽고 사는 즈음에 당해 어찌 다만 찡그리며 읊조리기만 하는가?
雖非我殺汝 計拙活窮鱗 비록 내가 너를 죽인 게 아니지만 곤궁한 그대[각주:5] 살리려 해도 계책 졸렬하다네.
上負神宗恩 下忘經理仁 위로는 신종의 은혜[각주:6]를 저버리고 아래론 양경리의 어짊[각주:7]을 잊었는가?
楊碑不再讀 媿汗發顔新 삼전도비 다시 읽질 못하겠으니, 부끄러움에 땀이 얼굴에 나서 반들거리네.雪蕉遺稿

 

 

 

 

인용

목차

해설

 
  1. 천장(泉漳): 중국 복건성(福建省) 동남쪽 해안에 있는 항구를 말한다. [본문으로]
  2. 파신(波臣): 어류의 수중 세계에 군신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상정하여 말한 것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我, 東海之波臣也. 君豈有斗升之水而活我哉"라고 했다. [본문으로]
  3. 양후(陽侯): 신(海神), 또는 파도신(波濤神)을 말한다. 원래 바다에 인접한 능양국(陵陽國)의 제후였는데, 물에 빠져 죽은 뒤에 큰 파도를 일으켜 사람을 해치는 악귀(惡鬼)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초사(楚辭)』 九章 哀郢註 [본문으로]
  4. 견양륜(犬羊倫): 중국의 변방 민족을 얕잡는 말이다. [본문으로]
  5. 궁린(窮鱗):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수레바퀴로 패인 웅덩이 속에서 헐떡이며 물을 조금이라도 부어 달라고 애원하는 붕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본문으로]
  6. 신종은(神宗恩): 명의 13대 황제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구원병을 보내줬다. [본문으로]
  7. [경리인(經理仁): 정유왜란 때 원군을 거느리고 온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의 직책이 경리조선군무(經理朝鮮軍務)였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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