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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자람 - 6장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 통일과 분열, 분열과 통일: 떠오르는 별, 노부나가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동양사, 자람 - 6장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 통일과 분열, 분열과 통일: 떠오르는 별, 노부나가

건방진방랑자 2021. 6. 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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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오르는 별, 노부나가

 

하극상의 시대가 한동안 지속되면서 점차 실력의 우열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저마다 대권 후보로 나서겠다고 외쳤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어지러이 벌어졌다. 그 결과 남은 후보들은 센고쿠 다이묘(戰國大名)라는 한 가지 용어로 통일되었다. 센고쿠 다이묘들은 누구나 대권을 꿈꾸었으나 이들 간에도 점차 떠오르는 별이 생겨났다. 가장 빛나는 별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였다.

 

노부나가는 능력도 출중했으나 인재를 보는 안목도 뛰어났다. 그는 고향인 오와리(尾張, 지금의 나고야 동쪽)에서 일어나 인근 미카와(三河)의 다이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를 휘하에 끌어들였다. 그 덕분에 불과 스물여덟 살인 1560년에 도카이(東海) 최고의 다이묘인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를 물리치면서 실력자로 떠올랐다. 계속해서 그는 주변의 경쟁 다이묘들을 차례 차례 쓰러뜨리고 1568년 마침내 교토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중앙 권력을 틀어쥐었다는 대외적 선언이 필요했다. 노부나가는 즉각 현직 쇼군인 요시히데(義榮)를 끌어내리고 그의 동생 요시아키(義昭, 1537~1597)를 새 쇼군으로 옹립했다. 쇼군의 가문인 아시카가는 오래전부터 허수아비였으니, 새 쇼군은 노부나가의 정치적 선언을 대신하는 역할에 불과했다.

 

교토에 입성해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둔 노부나가에게는 세 가지 적이 있었다. 첫째는 대규모 승병대를 거느리고 교토 남쪽에 자리 잡은 대사원인 엔랴쿠사(延曆寺), 둘째는 경쟁 관계에 있는 전국의 다이묘들, 셋째는 오사카의 혼간사(本源寺)를 중심으로 하는 농민 봉기 세력이었다. 그 세 가지 적은 모두 대권 선두 주자인 오다 노부나가를 반대하고 쇼군 요시아키와 결탁했다. 노부나가는 이 세 적을 각개격파하기로 결정했다.

 

1571년에 노부나가는 사원 세력을 공격해 그들의 거점인 엔랴쿠사를 불태워버렸다. 이에 반발해 쇼군인 요시아키가 거병했으나 이미 적수가 아니었다. 노부나가는 저항을 간단히 제압하고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요시아키를 폐위해버렸다. 이로써 두 번째 바쿠후인 아시카가 가문의 무로마치는 130여 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다음에 노부나가는 한때 그에게 패배의 쓴잔을 안겨준 강호 다케다(武田) 세력을 1575년의 나가시노(長條) 전투에서 궤멸시켜 사실상 단일 대권 후보로 등록했다. 마지막 남은 경쟁자인 혼간사는 1570년부터 장기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엔랴쿠사의 몰락으로 대세가 결정되는 것을 본 혼간사는 마침내 1580년 오다 노부나가에게 항복했다. 이로써 노부나가는 한 세기에 걸친 센고쿠 시대를 끝내고 전 일본의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

 

16세기 중엽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철포를 전한 덕분에 당시는 이미 총과 화약이 전쟁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량의 조총과 탄약을 조달할 수 있는 경제력이 전쟁의 관건이었다. 이 점은 노부나가가 승리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또한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들은 대규모 상비군을 필요로 했으며, 군대의 지휘관만이 아니라 하급 무사까지도 농민들로 대충 충당하지 않고 전문 전투 집단으로 충원했다. 조총을 비롯한 무기의 발달, 역사상 최초의 열도 통일, 게다가 전후 남아도는 대규모의 상비군, 이 세 가지 변수는 향후 일본의 거취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난폭한 방식을 통한 대외 진출이었다.

 

 

무장하지 않은 오다 노부나가 센고쿠 시대 최대의 영웅 노부나가의 모습, 세력 가문들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무로마치 바쿠후마저 철폐하는 데 성공했으나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고 통한의 죽임을 당했다. 그의 뒤를 이어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에도 바쿠후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모두 당시 노부나가의 부하였다.

 

 

인용

목차

한국사 / 서양사

그래도 답은 바쿠후

하극상의 시대

떠오르는 별, 노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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