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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역사상 가장 강했던 제국: 슈퍼스타의 등장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동양사,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역사상 가장 강했던 제국: 슈퍼스타의 등장

건방진방랑자 2021. 6. 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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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1. 역사상 가장 강했던 제국

 

 

슈퍼스타의 등장

 

한족의 송 제국을 강남으로 밀어내고 화북을 지배한 거란의 요나 여진의 금은 예전과 같은 유목 국가가 아니었다. 예전의 북방 민족들은 힘이 강성해지면 중국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데 그쳤지만, 요와 금은 아예 중원에 들어앉아 중국 대륙을 공동 명의로 하자고 나섰던 것이다. 그래서 흔히 이전의 유목 국가들을 침투 왕조라고 부르고, 요나라 이후의 유목 국가들을 정복 왕조라고 부른다정복 왕조라는 용어는 20세기의 경제학자인 카를 비트포겔(Karl August Wittfogel)10세기 이후 크게 달라진 유목 국가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용어다. 사실 이 용어는 문제가 있다. 중국의 한족 국가들을 기준으로 중국 역사를 볼 뿐 아니라, 남북조시대 화북에 자리 잡았던 북방 민족 계열의 국가들을 포함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세기 이후의 유목 국가들은 한 왕조가 수백 년씩 지속적으로 중원을 지배하면서 한족과 본격적인 패권 경쟁을 벌이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이전과는 다른 성격을 부여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강남 지방이 한족 문화권에 포함된 뒤부터 한족은 중원 북부와 만주, 몽골,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에 사는 다양한 유목민족에게 오랑캐라는 낙인을 찍고 자신들과 확실히 구분했다. 오랑캐라는 낙인이야 옳은 표현일 수 없겠지만, 문명적으로 보면 그 구분 원래부터 중원 문화권이 아니더라도 중원의 본래 한족처럼 농경 생활을 영위한 데 반해, 북방 지역은 반농반목 또는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들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생활 방식의 차이만큼 큰 차이가 또 있을까?

 

물론 한족이 북방 민족을 미개하게 여긴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가의 성립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최초의 유목민족 국가가 생긴 것은 한족 최초의 통일 국가가 생기는 것과 때를 같이한다. 진 제국이 중국을 통일했을 무렵, 그 북방에서도 강력한 흉노 제국이 탄생했다. 4장에서 본 것처럼, 흉노는 한 제국 초기까지만 해도 한의 조공을 받을 정도로 세력이 강성했으나 기원전 2세기 중반 한 무제의 공략에 밀려나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이로 인한 도미노 같은 민족이동은 5장에서도 본 바 있다). 그 후 1세기 무렵에 이르면 중국 주변에서 흉노는 이리저리 갈라져 본래 형체를 찾을 수 없게 되지만, 유럽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북방 민족의 고향 중국의 중원을 위협하고 멀리 서방 세계에 이르는 민족이동으로 세계사의 무대에서 큰 몫을 한 흉노, 돌궐, 몽골 등은 모두 이 몽골 초원에서 발흥한 유목민족이다. 특히 흉노는 서방의 고대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에게서 금속 문화를 전래받아 일찍부터 막강한 물리력을 보유했다.

 

 

동유럽에 자리 잡은 흉노(훈족)5세기 중반 신의 재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아틸라(Attila)의 지휘 아래 유럽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로마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과 반달족 등 이미 적잖은 유목민족들의 침탈을 받은 일이 있었지만 동방에서 온 흉노는 전혀 다른 막강한 상대였다. 흉노의 최대 무기는 말과 활이었다. ‘그들은 말 등에서 밥을 먹고 밤에는 말의 목덜미에 엎드려 잠을 잤다.’ 이런 로마 장군의 말처럼 흉노는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또한 짐승의 뿔과 나무를 덧대어 만든 흉노의 활은 길이가 짧으면서도 힘이 좋았다. 이 말과 활의 무기는 훗날 몽골에까지 이어지는 전통이 된다.

 

흉노 이후 북방 민족들은 516 시대와 남북조시대에는 번갈아 중원을 지배하며 중국 역사의 주요한 일부로 참여했다. 그러다 한족의 통일 제국 수가 들어서면서 중원에서는 쫓겨나지만, 북방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었다. 이 시대에는 돌궐이 강성해져 랴오둥과 황하 이북,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돌궐 제국을 세웠다.

 

 

몽골의 기병 몽골군은 유목민족답게 말을 다루는 기술이 능했다. 그들은 말 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고 한다. 중국의 전통적인 병법에는 보병과 기병이 분리되어 있는 데 반해, 몽골군은 모두가 기병이었으므로 뛰어난 기동력을 전투에 활용할 수 있었다.

 

 

이후 돌궐은 수 문제의 분열책으로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뉘었고, 서돌궐은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해 튀르크 제국을 세웠다. 흉노와 돌궐 등 고대 북방 민족들의 성장과 발전은 유럽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니, 가히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흉노와 돌궐이 세계사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은 한족의 통일 제국들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북방 민족의 세력이 한족에 밀려나지 않을 만큼 강했다면? 그 가정에 대한 현실의 답이 바로 요와 금이다. 이들은 한족의 통일 제국을 남쪽으로 밀어낸 다음 한족 문화권의 중심지인 중원을 차지하고 직접 지배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밀려나지 않을 만큼 강했기 때문에 고대 북방 민족들처럼 민족이동으로 세계사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등장하는 북방 민족 국가는 요와 금처럼 중국을 지배하면서도 흉노나 돌궐처럼 세계사를 쥐고 뒤흔든 슈퍼스타였다. 바로 몽골 제국이다.

 

 

배를 대신한 배다리 드넓은 초원에서 성장한 탓에 몽골군에는 수군이 없었다. 일본과 자와를 정복하지 못한 것도, 일본 정벌을 계획할 때 고려에 선박을 만들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대륙에는 바다에 못지않은 큰 강이 있었는데, 이 강들을 건너기 위해 몽골군은 배들을 묶어 배다리를 만들었다. 그림은 배다리를 건너 남송을 공략하는 몽골군의 모습이다.

 

 

인용

목차

한국사 / 서양사

슈퍼스타의 등장

불세출의 정복 군주

몽골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중국식으로 살자

동서 문화의 교류

깨어나라, 한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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