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의 용맹정진과 이 진사의 문안
그리고 강원의 강백으로서의 자기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전국 각지에서 스님에게 경전을 배우겠다고 몰려든 학인들에게 강원의 폐쇄를 선포합니다. 만화 스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강원을 폐쇄하고 학인들을 다 흩어지게 하였으니, 만화 스님으로서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더니 내가 왔는데도 나오지 않겠는가?”
“죄송하옵니다. 스님.”
“강원을 폐쇄하고 학인들을 다 흩어지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죄송한 일이오나 그렇게 했습니다. 스님.”
“네 이놈! 감히 누구 맘대로 강을 폐하고 학인들을 내보낸단 말이냐?”
“죽은 문자에만 매달리고 경구에만 눈이 멀어 더 이상 허튼소리를 지껄일 수 없습니다. 스님!”
확철하게 깨닫기 전에는 일체 세간에 나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허벅지에 송곳을 들이대고 턱 밑에 칼을 대고 졸음을 쫓으며 용맹정진, 석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긴 머리와 수염으로 몰골이 휘덮이고 닦지 않은 몸에서는 냄새가 펄펄 났으나 두 눈에서는 광채가 불을 뿜었지요.
경허에게 공양을 가져다주던 원규(元主)라는 사미승이 있었습니다. 원규의 속성(俗性)은 이씨였는데, 그의 부친이 상당히 지체가 높은 사람으로 왕실과도 친분이 있었고, 학식이 풍부하였고, 불교의 가르침을 깊게 터득한 바 있어 사람들이 그를 ‘이 진사’ 또는 ‘이 처사’라고 불렀습니다. 이 진사는 동학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원규가 집에 돌아와 아버지 이 진사와 이야기하는 중에 이 진사가 물었습니다.
“스님은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가?”
“예, 그럭저럭 지내시고 계십니다.”
“아 이놈아 그럭저럭이라니, 강주 스님은 뭘 하시고 계시냐 말
이다.”
“방안에서 소처럼 앉아계시기만 합니다.”
“허허 중노릇 잘못하면 다음 생애에는 소가 된다는 것도 모르시는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공양만 받아처먹으면, 다음 생에서는 소가 되어 죽도록 일을 해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그 말씀이신가요?”
“허어! 절깐에 가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 사문이 겨우 그렇게 밖에 풀이를 못해?”
“그럼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인가요?”
“소가 되더라도 천비공처가 없는 소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이 정도는 풀이를 해야하지 않겠느냐[何不道, 爲牛, 則爲無穿鼻孔處]?”
“천비공처가 없는 소라니요, 도대체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 이놈아 훌륭한 강주 스님에게 배우라고 절깐에 보냈거늘, 아직도 이것 하나 해석 못하느냐? 응당 강주 스님께 여쭈어서 제대로 풀어야 할 것 아니냐? 그러하지 아니한고?”
인용
'고전 > 불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성우(惺牛)로 다시 태어나다 (0) | 2021.07.12 |
---|---|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천비공처(穿鼻孔處)가 없는 소 (0) | 2021.07.12 |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말로 설파한 생사일여, 정말 생사일여냐? (0) | 2021.07.12 |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동학 전도의 비결: 콜레라 (0) | 2021.07.12 |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해월과 경허, 그리고 윤질 콜레라 (0) | 2021.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