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비공처(穿鼻孔處)가 없는 소
절깐에 돌아온 사미는 이 진사의 설화(說話)를 스님들께 여쭈어 보았
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강주 화상께서 아무리 선공부에 열심, 망식(忘食)중이라 해도, 발분(發憤)하여 진리를 고구(考究)하고 계신 중이니 스님께 가서 직접 여쭈어보는 것이 가(可)하다.”
사미 원규는 경허가 폐침망찬(廢寢忘餐) 용맹정진 하고 있는 방 앞에 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용감하게 묻습니다(원규는 훗날 동은화상東隱和尙이라는 큰 스님이 된다).
“천비공처(穿鼻孔處)가 없는 소가 된다, 도대체 이 말이 뭔 뜻이오니이까?”
이 말을 방안에서 듣고 있던 경허! 그 순간이 경허의 진정한 득도의 찰나였습니다. 가장 정통적인 경허행장을 쓴 한암은 이와 같이 이 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 부처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소식이 활연히 눈앞에 드러난다. 대지가 무너지고 물(物)과 아(我)가 다 사라졌다. 옛 부처들이 크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 경지에 곧바로 다다르니 천 가지 만 가지 법문의 무량묘의(無量妙義)가 당장에 얼음 녹듯이 녹아 버리고 모든 의혹이 풀려버렸다.
경허는 꼭꼭 걸어 잠갔던 문짝을 발로 차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천지가 요동치는 듯 웃고 또 웃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스님이 드디어
미쳤나보다 하고 둘러싸도, 웃고 또 웃었지요.
“네 이놈, 지금 분명히 제정신이 아니다!”
만화 스님은 걱정이 되어 미친 듯이 웃어대는 경허에게 주장자라도 내려칠 기세로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하하하하 노여워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스님!”
“무엇이라고?”
대지에 큰 대자로 누워 껄껄거리는 경허는 말합니다.
“저는 지금 제정신입니다.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 아주 맑은 정신입니다. 명경지수처럼, 아니 깨끗한 빈 거울처럼 아주아주 맑은 정신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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