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노래
01년 4월 11일 폭우
철원에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철원엔 눈만 내리는 줄 알았기에 비가 온다는 게, 왠지 평범한 일임에도 특별한 일인 양 느껴진다. 비가 오니깐, 정말 삶의 짐이 무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무거워 봐야 일기에 의한 단순한 의욕 저하일 뿐일 텐데 말이다.
비가 오면 모든 활동은 제약된다. 적어도 비가 내리면 야외활동이 주를 이루는 군생활엔 치명적이란 얘기다. 민간인들이야 우산, 차 등을 이용해서 비라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을 테고 거기에 덧붙여 뛰거나 대피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군인은 절대 뛸 수 없을 뿐더러, 불가피할 경우에는 우산은커녕 판초우의 만을 걸치고 비에 저항해야 한다. 두 손은 언제나 자유로워야 총기를 사용하거나 지뢰매설이 가능하니 우산을 써선 안 된다. 그렇게 일기(日氣)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정신 말이다.
하지만 그나마 우린 낫다고 할 수 있다. 밥 먹으러 가는 동안 잠시만 비에 맞서면 그만이지만 우리보다 일주일 늦은 주황색 표딱지 아이들은 오늘부터 숙영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숙영을 우리가 할 땐, 날씨가 그다지 춥지도 덥지도 않았기에 이불만을 꼭 덥고 자면 그만이었다. 그에 반해 다음 기수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기에, 비를 하루종일 맞아야 하기에 훈련은 더욱 빡실 것이다. 그 아이들 중엔 학과 선배인 하경문 형이 있기에 왠지 더욱 신경이 쓰이는 거다.
비가 내린다는 게 적어도 나에겐 커다란 아픔이었다. 비가 언젠가는 기쁨게 느껴질 날도 오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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