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볼 만한 이유
01년 5월 7일(월) 구름 낌, 오후 6시 25분에 씀
재밌다.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더 자세히 말하면 군생활 하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들이 분명 살아온 과정이나 가치관이 다름에도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거, 그렇게 하므로 서로를 자세히 알아간다는 거, 그게 바로 행복한 것이다. ‘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곳에서만은 그게 예외적인 발언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 우리 소대만 해도 38명이나 있고 우리 분대엔 10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분대장님하곤 같이 근무 서기에 대할 기회가 많고 그 외의 분대원들도 다른 소대원들에 비해 친근감이 느껴진다. 비록 한 가족은 아니지만 자주 대할 수 있는 친근감 때문인지 한 가족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안락함과 친근함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고, 그러므로 더욱 가까워져서 전역 후에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으로 재밌는 순간은 BMNT(Begin Morning Nautical Twilight) 전원 투입이 끝날 무렵, 해가 점차 떠오름에 따라 환해짐은 물론, 그 전에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새들의 지저귐, 그건 흔히 평화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곤 하는데 그런 상징은 진실이었다. 동이 틈과 동시에 산새들이 지저귄다는 거, 땅거미가 짙게 깔린 대지를 보았을 때의 막막함과 무기력해짐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원동력이었다. 방벽 상에 서서 산새의 지저귐과 함께 동이 트는 걸 보고 있으면 말로는 미쳐 표현할 수조차 없는 행복이 밀려온다. 이런 행복이야말로 우릴 살아가게 만드는 기쁨이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이유 외에도 많은 즐거움들이 많다. 그렇기에 우린 군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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