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기간에 생긴 두 가지 사건
01년 4월 29일(일) 7시 24분
지난주엔 대기기간이 풀려서 본격적으로 근무를 서게 되었다. 전령(傳令)에서 근무자라는 직책의 변화와 대기기간과 대기기간 해체라는 상황의 변화는 날 심하게 흔들고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현실에 대해 저자세로 대응하는 게, 나의 대응 자세인데 이번에도 그러한 나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맘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새로운 현실, 상황에 대한 기대감과 그에 따른 행복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건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는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가지고 지난주를 맞이했던 것이다. 가만히 한 가지 자세로 서있어야만 한다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의지한 채, 한 가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선 동질감과 함께 인간미가 느껴졌다. 나 혼자만이 아닌 나의 힘듦에 동참해 줄 고참들이 있고 설마 적응하지 못할까 염려해서 신경 써주고 좋은 말을 해줄 고참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삶의 축복인가!
분대장님인 지해식 병장님과 함께 근무를 서면서, 근무에 대한 일반적인 상황을 들은 것은 물론, 우리 근무지 내의 주요 요소들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앎에 대한 기본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었다. 내가 활동해야 할 장소에 대해 알아가고 선임분대장님 앞에서 그걸 일일이 말할 수 있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희열이었다.
그런 앎의 충족 외에도 이번 주엔 참으로 다채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혹 무료하고 지루해지기 쉬운 근무 환경에 활력소를 제공해 줄 양인지, 그런 게 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처음으론 이번 주 내에 끊임없이 났던 DMZ내 산불이다. 다른 때는 아주 먼 GP 쪽에서 불이 났기에, 그다지 현실감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그렇다 해도 하나의 긴 띠를 형성한 불길이었기에 장관이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는 볼거리였음을 부인할 여진 없다), 어제 났던 3P 전방 쪽 불은 현실감을 제대로 높여줬다. 타는 그을음 때문에 방독면까지 준비할 정도였으니 그 심각성을 굳이 표현할 필욘 없을 것 같다. 그 장대한 광경을 보면서 있으니 ‘이런 놀라운 광경을 군대가 아니면 언제 맛보냐?’하는 뿌듯함이,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들었다. 분명 그건 긴급 사항이었고 3P 사람들에겐 꽤나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3P는 맞불작전(DMZ내 산불 예방 대책)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거대한 불길의 띠가 새벽하늘을 밝히고 있는 걸 보니,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라. 그건 특별성을 포함한 신선한 볼거리였으며 그에 따라 우리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이중성을 가진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7연대 쪽에서 한 이등병이 탈영한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밤을 지새게 될 줄 몰랐던 우리들은, 후반야(後半夜)였기 때문에 옷을 그다지 두껍게 입고 나가질 못했다. 그렇게 찬 바람을 맞으며 있노라니, 나와 함께 해주는 지해식 병장님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저녁부터 새벽 내내, BMNT 철수 때까지 함께 있으려니 생각도 할 수 없는 전우애가 느껴졌다. 이게 군대 생활의 큰 기쁨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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