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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휩쓴 공간을 찾아 - 1. 여는 글: 평범한 삶을 꿈꾸며, 부속품이 되길 희망하다 본문

연재/배움과 삶

자본이 휩쓴 공간을 찾아 - 1. 여는 글: 평범한 삶을 꿈꾸며, 부속품이 되길 희망하다

건방진방랑자 2019. 4. 2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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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는 글: 평범한 삶을 꿈꾸며, 부속품이 되길 희망하다

 

 

최근까지 난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편모슬하 가정에서 어머니는 가족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고 형은 가장 역할을 대신하며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해야만 했다. 넉넉하진 못했지만, 어머니와 형이 열심히 일해서 그나마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삶이란 목표

 

하지만 돈이 없어 쩔쩔 맬 때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 교복을 사려면 14만원이 필요했는데, 그 돈이 없어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학비를 낼 수 없어서 근로 장학생이 되어야 했다. 등교하자마자 소각장에 가서 각 학급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분류해서 태우는 게 내 임무였다. 아이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교에 와서 0교시 자습을 할 시간에, 난 쓰레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걸 치우고 있는 나를 보며, ‘난 왜 이리 살아야 하나?’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런 환경 탓에 난 안정적이며 평범하게 살길 바랐다. 그건 정해진 길만 따라가면 되는 거였다. 학교에서 원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쌓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직장을 얻으려 시험공부에 매진하는 것이다. 내 코가 석자였기 때문에 사회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타인에 대해 마음을 쓸 까닭도, 큰 시스템이 만든 부조리한 현실을 고찰할 여유도 없었다. 나의 목표는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정해진 것만을 따라 사는 삶이 성실하고 정직한 삶일까? 그게 시작이었다. 임용시험에서 수없이 떨어지며 모든 가능성이 막힌 그 자리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서 이렇게 답답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세상이 이상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하는 생각 말이다.

궁하면 통한다窮則通고 했던가. 내 삶의 가능성이 막힌 그 자리에서, 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었다. 전공 서적 외엔 보지 않던 내가 이런 저런 책을 사정없이 읽기 시작했으며, 신문을 통해 사회에 관심 갖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세상을 유아론적인 시각(세상은 아름답다, 사필귀정)’으로 보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 내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없었고 왜 하는지도 모르는 공부를 하며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예근성이야말로 죄악이다라고 말이다.

 

 

악은 의외로 평범하다.

 

 

 

악은 의외로 평범하다

 

실제로 이 말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한 말이다.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누가 뱉어낸 말인지도 모르는 것을 자신의 말 인양 반복하며 사는 사람들을 이라 표현한 것이다. 왜 생각하지 않음이 악이 될 수 있을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선 이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었던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의 재판 내용을 다루고 있다. 대량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누가 봐도 유죄가 명백한 사람이다. 대량학살을 명령하고 그런 일처리를 한 사람이니, 얼핏 사악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한나 아렌트도 그런 상상을 하며, 재판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녀의 상상과는 달리 아이히만은 평범한 이웃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성실한 생활습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재판장이 아이히만에게 유태인을 학살한 장본인이 맞냐고 질문하자, “그렇다, 하지만 난 상부의 지시를 받았을 뿐이다.”라는 대답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르는 채, 상부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일을 했다는 말이다. 이를 보고 아렌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런 상황을 정리했다.

악은 나쁜 생각에서가 아니라 생각없음에서 나온다.”

 

 

아이히만은 1급 전범자로 재판정에 올랐지만, 그의 발언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세상을 열린 눈으로, 생각으로 보자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은 확실히 피곤한 일이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면, 답답할 이유도 괴로울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새에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현실을 묵인할 순 없었다. 그건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는 말로 치장될 수 있을 진 모르지만, ‘널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전장의 논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하며 고민하는 게 피곤할지라도 그게 나의 숙명이라 여기며 살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은 고민으로 살던 때, 그러니까 MB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에 두 가지 사건이 공교롭게(?) 터졌다. 120일에 6명의 사망자를 낸 용산참사8월의 땡볕 더위에 토끼몰이식 진압을 당한 쌍용차 사태가 그것이다. 이 사건들은 나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줬고, 인간이 다수의 이익이란 명분으로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알게 한 사건이었다.

 

 

자율경쟁이란 신화는 너의 죽음 위에 나를 세우려는 헛 희망에 불과하다.

 

 

 

부속품이 되길 희망하는 자

 

이런 사태는 모두 MB정권의 막가파식 개발정책의 소산임이 분명하다. 자본의 소리만 들을 뿐, 그 안에서 울부짖는 사람의 소리는 듣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욕망이 우리 안에는 없다고 자신할 사람이 있을까? 우리도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으면 그게 남에게 피해를 주던 말던 하고 말며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부동산을 소유하려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가. , 어떤 개인의 부정이나 거대 시스템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을 되돌아보는 작업도 뒤따라야만 한다.

 

 

찰리 채플린의 희화화.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 사람의 가치까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다. 그러니 모든 것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평가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살게 되었다.

이젠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선 몇 점을 올리면, 뭘 사줄게하는 식으로 꾀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만 것이다. 이런 사회엔 이나 인심, 안타까움, 측은한 마음 따위의 정념적인 감성은 들어설 공간이 없다. 그런 것을 지닌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어찌하여 이런 사회가 된 것일까?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획득한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 관계를 종식시켰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을 그의 타고난 상전들에게 묶어놓았던 잡다한 봉건적 끈을 갈기갈기 찢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거벗은 이해와 냉혹한 현금계산이외에는 다른 어떤 연줄도 남지 않게 했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열광, 기사도적 열정,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물속에 집어던졌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가치로 해소시켰으며, 특허를 통해 얻은 최소 될 수 없는 무수한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상거래의 자유를 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에 의해 가려진 착취를 벌거벗고 후안무치하며 직접적이고 잔인한 착취로 대체되었다.

-마르크스 노동당 선언

 

 

부르주아지(자본가)는 봉건적 질서를 일거에 없애버린 혁명가(?)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 교환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상거래의 자유를 껴 넣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위 내용은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말엔 위의 메시지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가 만들고자 한 세상이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이며, 이 때문에 용산참사쌍용차 사태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는 이런 문제 의식에서 같은 해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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