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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휩쓴 공간을 찾아 - 5. 쌍용차 사태: 강경진압과 베스트 처리사건 본문

연재/배움과 삶

자본이 휩쓴 공간을 찾아 - 5. 쌍용차 사태: 강경진압과 베스트 처리사건

건방진방랑자 2019. 4. 2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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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쌍용차 사태: 강경진압과 베스트 처리사건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77일간의 투쟁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이 그곳에 들어갈 땐, 비장한 각오보다는 단지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을 것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시름을 앓던 여름날 사측은 단전단수를 한다. 철판으로 둘러싸인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쪄 죽고, 갈증 나 죽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부의 자원봉사자들은 생수를 공장 안으로 반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사측은 정문을 컨테이너로 막고 공장 안에 생수가 차고 넘친다며 거부했다.

 

 

 

정문앞에 생수는 차고 넘쳤으나, 공장 안엔 마실 물이 없었다.

 

 

 

점거농성에 돌입한 사람들을 말라죽이다

 

또한 인도적인 차원에서 의료진 5명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 치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사측은 가로 막았다. 모든 것을 끊고 가로 막은 것이다.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더위와 갈증,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었다는 고립감에 극도의 불안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단순히 회사:노동자의 대립구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는 노동자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노동자 편가르기를 통해, 자신들은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겠다는 것이다.

투쟁이 진압되기 15일 전엔 회사가 정리해고 되지 않은 동료에게 새총을 쏘게 하고, 쇠파이프를 들게 했다. 10년 이상을 함께 지낸 동료들이 어느 순간, ‘같은 노동자임에도 자신은 살기 위해 동료를 죽이려는 적이 된 것이다. 회사는 저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너도 쫓겨 날 수 있다고 불안감을 조성하며 압박했다. 이런 상황이기에 형은 안에서 점거 농성을 하는데, 동생은 새총으로 형을 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형제라는 혈연도 자본 앞에서는 이상한 관계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문앞에 생수는 차고 넘쳤으나, 공장 안엔 마실 물이 없었다. 심지어 의사들도 진입이 차단당했다.

 

   

 

테러진압을 위해 용산을 거쳐, 평택에 왔수다

 

용산참사는 좁은 공간에 우발적으로 많은 병력이 진입한 것임에 반해, 쌍용차는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싸우던 장소였기에 경찰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테이저건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테이저건은 전기충격을 주는 총기로 테러 진압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실제로 노조원들은 테이저건의 바늘이 방패를 뚫고 들어와 맞았다고 증언했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진압 무기인지 알 만하다.

그리고 용산에서와 같이 컨테이너에 병력을 태워 옥상 진입을 수월하게 했다. 용산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작전이 쌍용차 사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토끼몰이식 강경진압을 하고 있는 장면. 그곳은 아수라장이었다.

 

 

난 이런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왜 경찰이 그렇게 테러 진압을 하듯이 밀어붙였는지 물었다. 지부장님은 아마도 용산 사태로 경찰특공대는 선례를 얻었을 거라 말씀하셨다. 용산사태를 통해 강경진압을 해도 일반 국민들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참사는 경찰이 강경진압을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예이며, 인명 피해 없이 해결되면 과정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안일함을 알려준 예였다는 것이다.

왜 정부는 그렇게까지 사측의 편을 들며, 노조원들을 강경 진압 했을까? 그건 아마도 사사건건 어떤 정책에 발목을 잡는 금속노조를 쓰러뜨리기 위한 밑그림에서 그런 게 아닐까 의심하셨다. 얼렁뚱땅 봐주면 나중엔 온갖 요구 조건을 내걸 것이기에 아예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였다는 거다.

 

 

 

영상에도 제대로 그때의 상황이 담겨 있다. 

 

 

 

실패할 줄 알지만, 싸우다

 

20122월에 수사경찰관을 대상으로 3년간 수요 사건 중 ‘Best 10 & Worst 10’ 후보를 공모했다. 그 설문에서 평택 쌍용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 해결을 베스트 5위로 선정하였단다.

우수 사례로 뽑은 이유가 아주 가관이다. 이유인 즉은, 신속하게 처리했음에도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아마도 용산 참사도 화재가 나지 않아 인명 피해가 없었다면, Best 10 안에 들었을 것이다.

김정우 지부장님은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지만 해결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신단다. 평택 공장 앞에서 아무리 외쳐 봐야 어떠한 변화의 낌새도 없었기에, 사대문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파란 기와에 있는 사람이 들어줄 리도 없지만,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가볼 생각이라고 하셨다.

왠지 이런 모습을 보니, 차디찬 크레인에 올라 309일을 버텨낸 김진숙 위원장이 생각났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시는 분들이다. 어떻게 그들을 보며 쌩떼쓴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더욱이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되어본 적도 없는 내가 말이다.

국가가 나 몰라라 책임을 방기하는 사이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셨고, 23번째 희생자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셨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울분이 치밀었다. 우리는 멍울 하나씩을 가슴에 안고 합동분향소를 나왔다.

 

 

우린 가슴 한 곳에 '멍울' 하나를 가지고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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