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의 철학, 철학의 해체
결국 니체의 계보학은 푸코에게 새로운 두 권력 개념을 제공한 셈입니다. 지식-권력과 생체권력이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생체권력 개념은 또 하나의 변환을 야기합니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푸코가 도달한 또 하나의 중요한 결론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책임있는 주체, 법적인 주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요, 기능이란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공장에서, 감옥에서, 군대에서 생체권력을 통해 개개인은 사회적으로 받이들여질 수 있는 주체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은 ‘생산적인 권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푸코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개개인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체가 되는 데 권력의 작동이 필수적이라면, 이제 권력 없는 주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권력은 영원하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치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 없는 주체는 없고,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고 했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푸코는 또 한번의 커다란 전환을 합니다. 권력 없는 주체가 있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권력을 통해서 각자가 어떻게 자아를 구성해 가는가가 문제가 되고, 권력을 통한 자기와의 관계가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권력을 통해 자아를 구성하는 기술에 관심을 돌리게 되고, 이러한 그의 작업은 ‘윤리학’이란 이름을 얻습니다.
이런 전환은 이제까지 그의 작업 전체를 이끌어온 비판적인 기획 자체가 중단되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비판적 문제설정 자체가 해체되고 마는 것입니다. 듀스(P. Dews)는 이를 니체적인 권력 개념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라고 비판합니다(『해체의 논리』), 니체에게 권력은 지배/저항의 대립이 중요하기보다는, 모든 개체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권력의지로서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면 타당한 평가입니다. 그러나 사실 좀더 니체의 사상에 충실했던 들뢰즈는 유사한 경로를 거치지만, 푸코와는 다른 귀착점에 이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그는 철저하게 니체적인 출발점을 가지며, 니체적 입장에 지속적으로 충실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공언하는 비판적 지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푸코의 입장은 니체의 개념에 의존하나 결코 ‘충분히’ 의존하지 않습니다. 니체에게는 작용적 힘과 반작용적 힘, 긍정적 의지와 부정적 의지가 언제나 공존하며 대립투쟁합니다. 이는 ‘생성’을 중심에 두고 파악하는 그의 사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푸코는 아마도 니체의 긍정적 의지나 작용적 힘이 생물학적인 권력의지로, 결국 형이상학적 실체를 가정하는 결과에 빠질 위험에 주의했던 것 같습니다. 유명론적 입장이 강했던 그로선 아마 이런 선택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니체가 보기엔 반작용적 힘, 부정적 의지에 불과한 요인이 권력개념을 일면적으로 정의하게 됩니다. 푸코가 말하는 생체권력 개념이 바로 그렇습니다.
반면 들뢰즈에게는 일차적이고 작용적인 힘이, 긍정적 의지 개념이 ‘욕망하는 생산’(desiring production)이란 개념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것이 자신을 통제하려는 코드화된 힘과 권력(의지)에 저항하고 대립합니다. 따라서 주체는 단지 생체권력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수동적 생산물로 전락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것은 끊임없이 코드화하려는 힘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근대철학의 한계를 넘어 새로이 ‘주체’의 생산을 파악하는 탁월한 유물론적 관점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마지막으로 푸코와 근대철학의 연관이라는 우리의 본래 주제로 잠시 돌아갑시다.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려는 푸코의 기획은 사실 근대적인 이성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고, 근대적인 문제설정 자체를 상대화하고 넘어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푸코를 들뢰즈와 함께 포스트구조주의의 중심에 자리잡게 한 요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허무는 작업을 통해 근대 내부에서는 사고되기 힘들었던 새로운 영역이 나타났습니다. 푸코의 연구대상이 갖는 ‘특이함’이 바로 그 사례겠지요. 나아가 그 경계선에 작용하며 그것을 유지하는 권력을 드러냄으로써, ‘진리’란 동일자 자신이 발행하는 동일자의 보증서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즉 그것은 지식에게 권력을 제공하고 권력을 통해 지식이 작동하도록 하는 지식-권력의 접착제인 셈이지요. 그럼으로써 근대적인 진리 개념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지식을 재는 ‘참된 지식’이란 잣대는 부러지고 맙니다. 정신병리학이나 임상의학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리고 결국은 지식에 대한 고고학적이고 계보학적인 비판을 통해 ‘과학’이란 이름의 정당화주의 또한 해체합니다.
다른 한편 인간이란 범주가 근대라는 시기의 산물임을 밝힘으로써, 근대철학의 지반을 근대철학의 역사성 속에서 볼 수 있게 재배치합니다. 이로써 주체철학은 그 근대적 성격이 명확해집니다. 주체를 파악하는 새로운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인 관점을 제시한 것 역시 이러한 작업의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것이 윤리학으로 전환되는 아이러니와 한계는 망각할 수 없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