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이와의 설렘 가득한 데이트
2003년 2월 4일(火)
복귀하기 전날, 짜증이 물밀듯이~ 죽겠다. 이런 뭐 같은 기분 늘 있어 왔지만 이번엔 다른 때보다 오히려 더 심했다. 얼마 남지 않음을 알지만 군의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돌아가는 건 꼭 지옥길을 제 발로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다른 정기휴가와는 다른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마지막 날에 홀로 방황하다 들어간 여느 휴가와는 달리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다는 거. 바로 정임이다. 내가 군에 가기 전에 좋아했던 아이. 하지만 지금은 정임이가 더 나에게 열심이다. 편지도 자주 보내주고 휴가 나왔다고 하니깐 만날 기회를 혼자서 제공해주기도 하고 먼저 만나자고 말하는 아이니깐. 이번에 휴가 나와서도 전화를 했더니, “내일보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였다. 난 그게 오히려 부담스러워 나중으로 미웠다가 설이 끝난 어제 전화해보니, 잘 얘기하다가 “나 밥 사줘야 해”라고 먼저 말하지 않은가! 그런 적극적인 태도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지만 어차피 마지막날이 제일 한산하면서도 심난했기에 약속을 정했다. 이제 정임이에 대해 어떤 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만나면 무지 어색할 것 같아 피해 왔는데…… 난 참 이상한 구석이 있다. 내가 적극적인 성격이 못 되기에 여자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데도 막상 여자 쪽에서 그렇게 나오면 오히려 내가 반감이 생겨서 피해 버리게 되니깐 말이다. 그치만 난 조급한 맘에 과외 하러 서학동에 온다는 그 얘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7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무려 20분이나 오버한 시간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나올 때도 데려다 주려고 했으나, 진규네 집에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그건 취소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늘……
04년 04월 02일 수련회에 모인 14기 동기들 모임. 정임이를 좋아했었다.
12시에 만나려 했으나, 형 보건소 심부름 때문에 4시에 만나야 했다. 객사에서 기다렸다. 오는 길이라면 롯데리아 앞이 오히려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녀석의 의중을 알고 보니, 내가 잘 알 수 있는 곳을 정해서 그런 거란다. 예쁜 이정임하고의 데이트는 아마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린 카페에 갔다. 정임이가 상희와 수연이와 자주 왔던 곳이라며 날 데리고 갔다. 난 코코아, 그 얜 딸기 쉐이크를 먹었다. 그 곳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그 녀석이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얘기를 많이 해준 탓에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 아인 10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한단다. 그래서 영화를 볼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기에 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기에 그 녀석을 끌고 갔다. 그 아이도 승낙했기에 6시 표를 끊고 바로 저 때 그 김밥집으로 먹으러 갔다. 하지만 난 배가 부른 터라 그 아이가 사는 것임에도 별로 먹지 못했다. 시간에 쫓겨 많이 먹지 못하고 영화관으로 뛰었다. 이미 영화는 시작되었기에 앞에 비어 있는 아무 자리나 앉았다.
‘클래식’ 난 극장에서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영화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것이다. 순수한 이미지에 감미로운 음악, 정겨운 영상미, 그리고 그 속에 사랑, 갈등, 확신, 떠남, 엇갈림, 다시 엮임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재밌었고 눈물이 나기도 했으며, 따스하기도 했다. 돈이 아깝긴커녕 너무 잘 본 영화가 되고야 만 것이다.
그걸 보면서 정임이가 진짜 내 여자 친구였으면 아마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더욱 커졌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너무 너무 괜찮은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내 생각 같아선 늦게까지 있고 싶었지만, 그 아이의 통금시간이 있었기에 보내야 했다. 그 아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서 버스에 오르는 모습만 보고서 돌아왔다. 그랬더니 왜 인사도 안 하고 그렇게 가냐는 것이다. ‘여운이 남으면 그리워지니까’라는 이상한 소릴하며 전화를 끊었다. 난 솔직히 남녀관계에선 절대 친구가 있을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앞으론 그렇게 데이트할 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 짧았지만 그렇게 긴 여운이 시간의 어둠 속에 고이 묻혀가고 있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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