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과 도보의 차이
03년 1월 19일(일) 맑음
지난 17일 저녁 7시에 시작한 행군이 18일 새벽 4시 30분이 되어서야 끝을 맺고 말았다. ‘작계시행훈련’과 ‘매달 30km 행군’이라는 사단장 지시 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 훈련이 없는 달임에도 우린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뛰게 된 것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눈은 점심이 되어선 아예 함박눈으로 변해서 펄펄 내리고 있었다. 원래 군에서의 눈이라 하면 치를 떨며 짜증이 나야 맞는데 이번 눈은 왠지 나를 기쁘게 있다. 그 이유인 즉은 폭설로 인해 훈련이 중단될 수도 있고 30km 행군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훈련이 급해도 실질적으로 중요하 건 제설작업이었기에 나는 그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런 불행으로 조기철수 행군을 하게 되었다.
저녁 23시에 철수하지 않고 6시에 철수하게 된 것이다. 이미 도로는 눈범벅이어서 한 발자욱, 내딛기가 무서울 정도로 미끄러웠다. 하지만 우린 그런 길을 군장을 메고서 걸었다. 산길에서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될 때마다 조심스레 걸어야만 했기에 시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눈이 내린 길을 향할 땐, 발목과 허벅지에 힘을 준 상태에서 걸어야만 했기에 그냥 길을 향할 때 발바닥 전체가 무리한 충격에 까지던 것이 눈길에서 발 전체의 무리 때문에 다리 전체가 욱신욱신 했다. 그렇게 무리수를 던진 이번 행군은 짜증이 한가득 났다. 도저히 군대를 증오하지 않으려야 잃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참고 또 참고 왼쪽 발목이 삐끗삐끗함에도 계속 참으며 걸었더니 어느덧 대대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색적인 건 GOP 철수할 때의 감회를 새삼 느끼게 해준 군악대의 군악 연주이다.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 연주를 들으며 연대장에게 일제히 경례를 하니 뿌듯함과 함께 감상에 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군대식의 행군을 하면서 평소 걷는 걸 좋아하는 내가 느낀 게 있다. 걸음, 사회에서의 걸음은 앞 사람의 템포에 맞춰 걸을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남보다 더딜지라도 자기 스타일로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속에서 역전의 묘미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군대의 걸음은 참 단순무식하다. 무조건 목표만을 생각에 둔 나머지 중간 중간에 느낄 수 있는 생동감 따위, 감상 따위에 젖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무조건 앞 사람의 템포에 뒤질새라 그 템포에 맞춰서 걷는 것이며 고통과의 싸움일 뿐이다. 여기엔 결국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뿌듯함이 자리하고 있다.
난 솔직히 군대의 행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고(忍苦)이 과정 끝에 느끼게 되는 승리감 따위 때문에 그 순간순간 몸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나 감상 따위와 바꾸고 싶지 않다. 한비야씨가 말한 ‘한 걸음의 철학’도 굳이 말하자면,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인한 것이지 결코 타인의 강압에 의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이 뭐냐고? 군대의 행군이 맘에 안 드니깐 절대 하지 말자! 뭐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건의를 하려는 게 아니다. 같은 한 걸음씩의 걸음이지만 그 한 걸음씩의 걸음이 군과 사회가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이며 그 철학적 의미를 되새겨 보므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 속에도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플 뿐이다. 나도 이제 승리감을 위해 참고 또 참는 고통이 아닌, 내 의지와 생각에 따른 자유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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