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참사에 대해
03년 2월 20일(목) 화창
엊그제 그러니깐 2월 18일에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했다. 내용인 즉은 장애를 비관한 2급 지체 장애인이 물고 늘어지기 심보로 병에 챙겨간 휘발유를 지하철 객실에 뿌리고서 중앙로역의 도착하자마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던 중 실수로 그 용의자 온 몸에 불이 붙어 역으로 하차한 것이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붙은 불을 끄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객실에 피어오른 불꽃은 활활 타올라 객실 전체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때 상행선 쪽에서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는 지하철이 있었으니, 그건 이 참사가 더 재앙이 될 증조였다. 그 차가 중앙로에 진입했는데도 전력 공급이 차단되므로 불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했고 문까지 차단되므로 모든 사람들이 문 앞에 뒤엉켜 죽어가는 참담한 현실이 펼쳐졌다. 안에서 서서히 죽어갔던 영혼들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랄 뿐이다.
이 참사를 대해보노라면 참 참혹하고 답답하여 안타까운 심경 밖에 들지 않는다. 더욱이 죽음의 그 순간에도 전화를 걸어 “잘 될 거야. 빨리 돌아갈게요”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보내며 서서히 죽어갔을 그 사람,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이 앞 너무 어두워. 지금 공기가 너무 탁해서 쉽게 못 말을 것 같아”라고 그 암울한 현실을 얘기하며 죽어갔을 사람들의 통화 내역을 듣고 있으니 너무 안 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번 참사를 대하면서 왜 그 사람이 객실에 휘발유를 뿌리는 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심하게 만류를 하지 않았을까? 그건 요즘 시대에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자기의 일이 많아지고 주위 사람들과의 소통이 적어지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교에서 중시되었던 경노 사실이 경시됨에 따라 누구도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더더욱이 안전불감증, 너무 큰 사건들을 늘 주위에서 대하면서 그런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스스로 무시하면서 이런 일에 대해서도 설마 저 사람이 저럴까? 하는 의구심으로 다들 무관심 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그런 의미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나서야, 다들 자기의 무관심을 탓했겠지.
둘째 왜 용의자는 지하철을 범행 장소로 택했을까 하는 거였다. 그건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엔 자기의 현실을 비관하게 되면 그 요인을 자기에게서 찾아 알콜 중독자가 되거나 자살을 택하게 됐지만 요새 비관 요인을 타인에게 돌리기에 타인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가운데서 화풀이를 합니다.”라는 것이다. 이건 비단 장애인인 용의자를 탓할 수만은 없으리다. 장애인의 생활 여건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나라의 탓이 그들을 그런 궁지로 몬 것이 될 거니깐.
그렇지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인명은 천금보다도 귀하기에 그것도 133명이나 사망케한 이번 사건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건 마치 사형으로도 분풀이가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셋째 왜 차 안에 검은 연기가 자욱했는데도 불구하고 매캐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손수건으로 코를 막을 정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CCTV를 보고서 사람들이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결국은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나도 그 순간에 있었다면 피해 나갔을지 미지수다. 별 일 있겠거니 하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의식 속에 영화가 현실처럼 자리해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부상은 당할지언정 기사회생해서 영웅처럼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것이다. 이런 영화적 현실이 머리속에 있다보니, 모든 불운은 자기를 빗겨나가리란 생각을 무의식 중에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현실은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무의식 속에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이 많았던 거다. 이제 자기가 살기 위해 이런 무의식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천연가스 폭발, 이번의 지하철 참사까지. 앞의 세 사건은 인간의 이익에 의한 사고였고 이번 사건은 한 사람의 비뚤어진 앙심이 불러 일으킨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리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이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태연히 대처하므로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일이 커진 것이 공통점이라 하겠다. 불 붙인지 1분여만에 숯더미가 되버릴 정도의 대비책 미비가 결국은 이런 대형 심사를 불러온 것이다. 유비무환을 되새기며 최악의 사태에 늘 대비하자. 그럼 우리 늘 빡센 훈련 준비만을 해야 하려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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