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런 마음으로 소대에 복귀하다
01년 7월 11일(수)
꿈만 같던 그림 그리기 작업은 6월 25일(월)~7월 6일(금)까지 2주간 진행되었다. 그래서 7일(토)엔 소대에 복귀해서 낱발실셈을 실시했다. 그림 그리는 시간과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해야 하기에 버럭 겁이 났다. 왜 이런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뒤따른 걸까?
그건 소대 사람들이나 소대 일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 자신의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열심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은 필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자대에 와서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만큼 고참들이 많이 풀어주는 것이 있었기에 생활 자체도 편해졌을 뿐 아니라, 후임병들이 많아져서 내가 해야 할 일도 적어졌으며, 근무 여건도 매우 편해져 누구 말마따나 근무 설 때가 가장 편한 순간이기에 혼자만의 생각에도 맘껏 빠져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가운데 날 더욱 기쁘게 한 일이 있다. 이른바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림 그리기에 대한 포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을 맞이하고 보니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접때 광석이가 그런 말을 장난 삼아 했었는데, 그 장난이 이제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바로 윗 선임들도 포상 휴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제 백일휴가를 갔다 온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단 사실이 겸연쩍으면서도 행복한 일인 양 느껴졌다. 이게 바로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아주 적절히 잘 표현한 예라고나 할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거려가며 지금은 소대생활에 다시 적응하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 갑자기 중대장님께서 부르시더니, 철책이력카드 마무리 작업을 하라고 한다. 그 순간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그 마무리 작업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하루만에 다 끝낼 수 있는 소일거리였다. 하지만 그거라도 어디인가? 스스로 기뻐하며 마무리 작업을 했고 어제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중대 본부에서 잠을 잤고 오늘에서야 소대로 영영 복귀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일상에서 간혹 벗어나 일탈적인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경험해본 사람이면 충분히 알리라. 나에게 이러한 축복을 준 것이야말로 예기치 못한 행복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다시 복귀할 생각을 하니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면승부하며 회피하진 않을 것이다. 내 자신을 믿고 축복하며 성실히 살아가리라. 그러면 어떤 기회든 찾아오겠지. 아주 가까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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