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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이등병 - 01.07.02(월) 그림 작업에 투입된 행복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이등병 - 01.07.02(월) 그림 작업에 투입된 행복

건방진방랑자 2022. 6. 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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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업에 투입된 행복

 

0172() 어두움

 

 

요즘은 그 어느 때와 비교(比較)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幸福)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저저번주 토요일에 갑자기 소대장님 순찰조(巡察組)가 되므로 약간의 기쁨을 줬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의 순간(瞬間)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저번 주 주일에 전원투입(全員投入)을 준비(準備)하고 있는데, 분대장님께서 갑자기 나보고 내일부터 넌 그림 그리는 인원에 포함될 거니깐, 그렇게 알도록 해!”라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난 그 말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그건 바로 강정명(姜正明)씨 외의 인원이 그리고 있던 철책 정밀그림을 내일부턴 내가 그려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난 불현듯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K-3를 맡는가 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빠지게 된 것이며, 난 그런 세밀한 그림에 자신이 없을뿐더러 그 길다란 종이 가운데 한 군데라도 틀리면 모두 다 다시 해야 했기에 긴장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난 난공불락(難攻不落)이나 사면초가(四面楚歌) 같은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긴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이기에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싫은 마음 가운데, 즐거운 맘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맘가짐을 이른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심리라 하는 것인가? 이렇게 급격히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기에 이래서 사람의 마음은 자기도,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 하는 거겠지. 그런 마음이 드는 까닭은 누가 뭐라 해도 투입에서 열외되었다는 특별한 기분 때문일 것이다. 저번에 아팠을 때, 그리고 백일휴가에서 복귀했을 때도 저만치서 들리는 낭랑한 군장검사의 관등성명을 들을 수 있었다. 멀찍이서 들리는 관등성명의 소리, 난 그걸 힘껏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열외의식이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만큼은 그림 작업을 하며 자연스레 열외될 테니 말이다.

 

그런 무의식적인 행복 속에서 시작된 그림 그리기는 내가 생각한 만큼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월자(越者, 군대에선 무언가를 하지 않는 상황을 월 때린다는 표현을 쓴다)’라는 별명이 제법 잘 어울릴 정도로 나름대로 재밌었고 맘 또한 한없이 편했다.

 

처음엔 진규처럼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서 과연 잘 그릴 수 있을까?’ 걱정하긴 했는데 막상 하게 된 작업은 개인의 그림실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철조망의 위치와 그 번호를 실측하고서 그걸 전지에 표시하면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작업엔 그림실력보단 얼마나 세밀하고 정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지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첫날엔 조금 헤매긴 했지만 어렵지 않은 작업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무엇보다 맘에 드는 점은 주작야숙(晝作夜宿, 낮엔 그리고 밤엔 잔다)할 수 있다는 점이고 비 오는 날에도 비를 뚫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GOP에선 전혀 꿈조차 꿀 수 없는 이러한 생활방식을 누리고 있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자랑이지만 많이 잘 땐 11시까지도 잘 수 있을 정도다. 비가 올 땐 어떤가? 비가 와도 GOP 근무는 빈틈없이 서야 한다. 그러니 비를 당연히 맞고 다니게 되며 전투화는 젖게 마련이다. 그러니 비오는 날에 철수를 하고 나면 누구 할 것 없이 새앙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데, 지금만큼은 그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좋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왠지 지금은 군대에 온 게 아니라, 야영에 온 것만 같아서 마음이 한결 편안하기만 하다. 내게 생각지도 못한 이런 특혜를 주신 주님께 한없이 감사드리며 언제나 감사함에 기도드릴 뿐이다. ‘내게 음악주신 분, 내 사라으이 노래, 그 노래 가운데 영원히 함께 할 그 사랑 노래해. 할렐루야~ 찬양을 드리세…… 내 몸 다해 찬양~’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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