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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수양록, 상병 - 02.03.07(목) 철수의 순간을 기록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상병 - 02.03.07(목) 철수의 순간을 기록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6. 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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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의 순간을 기록하다

 

0237() 맑음

 

 

후반야 근무자와 비번자들은 대기막사에서 쉬면서 7중대 아저씨들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도착하면 바로 탄띠를 바꾸고 군장끈을 결속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하면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반야들은 여전히 상황에 상관없이 근무에 투입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들의 기분은 한결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기에 보통 때 근무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들떠서인지 시간이 무지 더디게 갔다. 원랜 여섯 타입 근무제지만 오늘은 22시까지 근무하고 그 뒤로 A형 근무였기에 세 타임 근무만을 서면 되었다.

 

마지막 근무지인 대공에 올라갔더니 벌써 2대대 사람들이 입성했댄다. 다른 때는 전혀 볼 수 있던 거무스름한 무리떼가 신3번 도로로 북상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이미 왔다고 하니 아쉽더라. 과연 우린 어떻게 근무를 서다가 어떻게 철수 준비를 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런 걱정을 뒤로 하고 근무 교대자들이 올라왔다.

 

교대를 하고 우린 뛰어서 내려갔더니, 역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7중대 아저씨들이 A형 투입을 위해 군장 검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린 철수와 함께 A형 투입을 위해 마지막까지 빈틈 없이 점검하고 있었다. 철이와 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탄을 인수인계 해주고 탄띠를 인수인계 받았다. 모두의 군장을 등에 짊어지고서 투입로까지 이동했다. 그곳에 군장을 놓고 소총만 가지고 투입하므로 A형 투입 철수와 함께 바로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 A형 투입진지는 B3조답게 68초소였다. 가서 보니 이미 중대 아저씨들은 투입해 있었다. 그 아저씨들하고 이러쿵 저리쿵 얘기하면서 앞으로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1130분이 되자마자 일제히 철수했다. 이젠 영영 안녕이다. 7중대 아저씨들은 오늘 새벽 내내 한숨도 자지 못하고 A형 투입이란다.

 

그래서 우리 중대만 철수해서 탄약고 앞에 잡합했다. 이미 내려져 있던 군장을 매고 그 위에 총을 얹은 뒤에 우리 중대원들은 전망대 앞에 도열했다. 기다리던 순간에 왜 그리도 추웠는지 오히려 빨리 철수하고플 뿐이었다. 드디어 행군 시작! 당연히 신3번으로 남하할 줄 알았다. 그렇게 말해왔고 그 길은 잘 닦여진 길이었기에 걷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모든 예상과 구설수를 깨고 전혀 아닐 거라 생각했던 구3번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비포장 도로길을 따라 가다니, 전혀 생각지 못한 만큼 더 힘들게 느껴졌다. 10kg에 육박하는 군장을 메고 그 위에 K3까지 얹고 걸어가는 길은 조금의 굴곡에도 쉽사리 흔들렸으며 움푹 들어간 곳이 걷다 보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다. 역시 힘들다. 신교대 때 행군을 하면서 힘들었던 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1년 만에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가다가 총 두 번 쉬었다. 첫 번째는 대대 CP 후방에서였고 둘째는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그곳이자 고등학교 졸업 여행에서 왔었던 폭파된 철원 노동당사에서였다. 두 번 쉬는 동안 한결 같았던 건 움직이는 동안엔 땀이 날 정도로 더웠지만 그렇게 쉬는 동안은 매서운 칼바람에 등골이 오싹해져 오히려 쉬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꼭 행군하는 게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행군 자체도 힘들었지만 특히 왼쪽 군장끈이 자꾸 미끄러져 풀리는 바람에 계속 그걸 조절하며 걷느라 그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노동당사에서 쉴 때 대대장님의 훈시(訓示)가 있었다. GOP에선 순찰자로만 보여 좀 요원해 보이던 그분이 막상 이 자리에 서서 훈시를 하고 있으니 꼭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더욱 맘에 드는 건 다른 지휘관들에 비해 우리들에게 지시하는 투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경어를 써서 충분히 우리를 예우해주는 듯한 말투로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런 아주 사소한 예우가 그 사람을 더욱 존귀해 보이도록 했다. 아무래도 이런 이유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예우하면서 살라고 하는 거겠지.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둠을 뚫고서 여전히 똑같은 배경의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진짜 수면 중에 걷는다는 게 뭔지를 체험해 볼 수 있었고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사단장님이 있다던 율지리 삼거리에 드디어 도착했나 보다. 앞에선 군악대의 군악이 새벽의 적막함을 깨며 연주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사단장, 연대장을 비롯한 예하 참모들이 우리를 환대하고 있었다. 새벽 잠도 쫓아가면서 우리들을 그렇게 맞이해야 하는 그네들의 입장도 참 가련할 뿐이었고 그만큼 GOP 순환은 사단 내의 중요한 일정임을 알 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간에 동병상련을 느끼는 걸 테니 말이다.

 

거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무려 30분이나 더 걸어서 율지리 대대에 입성하고 나서야 끝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내무실도 좋았고 대대 전경도 좋았다. 특히 우리 중대 뒤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왜인지 맘이 놓이더라. 이제 새로운 군 생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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